기획 완결 신종태 교수의 태평양전쟁 전사적지를 찾아서

피아 뒤섞인 백병전, 산을 이룬 시체… 아~이오지마

입력 2016. 09. 0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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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괌·이오지마 ③


1945년 2월 한 달 이상 혈투

일본군 96%인 2만129명 전사

 

미 해병 6821명 전사·2만1865명 부상

악전고투 끝에 성조기 게양 성공

 

미 고교 학군단 후보생·해병유년대

매년 전적지 찾아 전쟁 교훈 되새겨

 

 

 

괌의 일본군 오바다 중장의 동굴 전투지휘소 입구.

 

 



괌에서 해마다 열리는 미국 태평양전쟁 전적지 답사 행사! 참전용사, JROTC(고교 학군단) 후보생, 미 해병유년대 청소년들의 참석으로 행사장 열기는 뜨거웠다. 과거 전쟁교훈을 통해 후세에게 애국심과 상무정신을 고양하려는 미국인들의 열정이 한껏 느껴졌다.


 


 

 

 

마리아나제도의 일본군 최후전투

1944년 8월 10일, 미 상륙군단장 가이거(Geiger) 해병소장은 괌을 완전히 점령했다고 발표했다. 바로 이 시간 일본군 제31군 사령관 오바다 중장은 대본영에 ‘괌 방위는 이제 희망이 없음. 내일 미군 진지에 돌격 예정임’이라는 최후 전문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8월 11일 미군 정찰대에 의해 사살되면서 일본군은 괌에서 소멸했다. 괌전투에서 미군은 2124명이 전사했고 5676명이 상처를 입었다. 일본군은 1만8500명이 전사했거나 포로로 잡히면서 사이판·티니언·괌의 전투는 끝났다.

한인 운전기사 K씨와 같이 괌 북쪽 밀림 속의 일본군 최후 지휘소를 찾아갔다. 작은 숲속 길을 따라 들어가니 곳곳에 폐기된 동굴 입구들이 보였다. 그곳에는 일본군 오바다 장군의 최후를 기록한 표지판만이 외롭게 서 있었다. 또한, 동굴진지 언덕 위의 전몰자 추모공원에는 애써 그날의 비극을 잊고 싶은 듯이 일장기가 쓸쓸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미 해병대 수난의 섬 이오지마(유황도)

괌 전쟁박물관에는 태평양전쟁 중 미 해병대가 가장 큰 피해를 보았던 이오지마전투 전시물들이 많았다. 현재 이 섬은 일본 해상자위대가 주둔하며 일반인 방문이 제한된다. 마리아나제도와 일본 본토 사이에 있는 이오지마(Iwo Jima·유황도)는 백령도의 절반 크기(19㎢)에 불과하다. 사이판 북쪽 1150㎞, 일본 남쪽 1080㎞ 사이의 이곳은 당시 미군·일본군 모두에게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1945년 2월 16일, 미 해병 제3·4·5사단 병력 약 7만 명이 상륙하면서 시작된 이오지마전투는 3월 26일까지 계속됐다. 그 결과 일본군은 수비 병력의 96%인 2만129명이 전사했고, 미 해병대는 6821명의 전사자와 2만186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전투의 처절함을 참전자들은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 중대는 100m를 전진하는 데 94명이 전사했다. 일본군 참호선에 도달해서는 피아가 뒤섞인 백병전이 벌어졌다. 교통호에서 가장 유용한 전투장비는 야전삽이었다. 즐비하게 널려 있는 시체를 불도저가 밀어붙이고 전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런 악전고투를 극복하고 미 해병대는 3월 23일 이오지마 수리바치 산 정상에 성조기를 게양할 수 있었다.


 


 



미 청소년들의 태평양전쟁 전적지 답사

‘전적지 현장답사 여행’에 미 본토에서 온 많은 해병유년대(Young Marine System) 대원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괌 전적지를 돌아본 후 참전용사들과 이오지마 현지에도 간다. 학생들의 수업결손은 학교에서 ‘사회봉사’ 시간으로 정리하고 여행경비 전액을 미 정부가 지원한다고 했다. 전국 학교에 조직돼 있는 해병유년대 대원(만 8세부터 입단 가능)은 약 5만 명. 이들은 매주 2시간의 군사교육을 받고 방학 때 단체훈련과 전적지 답사로 심신을 단련하며, 졸업 후 군 복무 의무는 없다.

행사 기간 중 ‘참전용사 격려 만찬’ 시간에는 괌 고등학교 해군 JROTC 후보생 기수단이 등장했다. 현역 해군 장병들의 행사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 대학 ROTC에 입단하려면 고교 시절부터 JROTC를 거친 학생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초등학교 때부터 국방문제에 관심을 두도록 유도해 우수 인재를 군 간부로 영입하려는 미국의 체계적인 국방인력정책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국제공항청사의 전사자 영정사진

괌 국제공항 터미널에는 10여 명의 미군 전몰장병 영정이 여행객들이 잘 볼 수 있는 벽면에 붙어 있다. 아프간·이라크전에서 희생된 마리아나제도 출신 군인들이다. 사진 하단에는 전사자 추모 문구가 큼직하게 적혀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처절했던 과거와 현재의 전쟁역사를 두고두고 후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통, 그리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신세대에게 교육하면서 미국은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었다.



TIP - 수백 명의 한국인 징용자, 이오지마 진지 구축에 동원돼

1943년 3월부터 이오지마에서는 구리바야시 중장 지휘하에 2만2500여 명의 일본군과 강제징용자들이 지하요새진지를 구축했다. 당시 수백 명의 한국인 징용자들도 진지 구축작업에 동원됐으나 생존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이 섬은 유황 가스 때문에 방독면을 쓰고 참호를 파야만 했고, 가스와 더위로 지하작업장에서 탈진해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이오지마전투가 끝난 후 일본군 포로 중에 일부 한국인 징용자들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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