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맹수열 기자의 조리병과 함께 쿡

'할 수 있다' 정신으로 軍 마스터 쉐프 됐죠

맹수열

입력 2016. 05. 2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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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육군30사단 홍해성 병장 - 부추무침을 곁들인 닭다리살 스테이크와 김치·발사믹 소스?


방송 요리경연대회 출연 9000명 중 40등 차지…중2때부터 끊임없이 연구한 ‘김치소스’ 일품

 

 

 

 



“아이 캔 두(I can do) 정신은 제가 요리사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습니다. 큰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절대 포기하지 말자’를 바탕으로 한 노력의 결실이죠.”

지난 15일 육군30사단 본부대에서 만난 조리병 홍해성 병장은 ‘타고난 요리사’였다. 푸근한 덩치와 선한 미소를 가진 홍 병장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과연 잘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기자의 걱정은 기우였다.

“홍 병장은 군 생활 중 방송 요리경연 대회인 ‘마스터 쉐프 코리아 시즌4’에 출연해 9000명 중 40등 안에 들었던 실력자입니다. 오늘 만드는 요리도 당시 대회를 위해 준비했던 것이고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기자를 안내한 공보장교는 이렇게 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하기 전 순식간에 생닭을 해체해 다리살을 발라내는 모습부터 이미 ‘프로’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무심한 듯 툭툭 던지지만 정확히 간을 맞추는 솜씨,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닭다리살 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해 섬세한 불 조절을 하는 모습 등에서 ‘고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재료: 닭다리살, 부추, 양파, 대파, 마늘, 올리브오일, 파프리카, 깻잎, 소금, 후추, 고춧가루, 깨, 참기름, 설탕, 식초, 파슬리가루, 로즈메리, 김치, 발사믹 식초


무심한 듯 정확한 손길…‘요리 고수’ 비결은 연구

“오늘 준비한 메인 요리는 ‘부추무침을 곁들인 닭다리살 스테이크와 김치·발사믹 소스’입니다. 대부분의 재료들은 부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죠. 없는 재료들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요리를 하면서 차근차근 알려드릴게요.”

홍 병장은 능숙한 솜씨로 순식간에 요리를 만들어나갔다. 먼저 손질한 닭다리살을 올리브오일을 이용해 마리네이드(조리하기 전 재료를 부드럽게 하거나 맛을 들이기 위해 각종 양념·향신료에 재워두는 것)한 뒤 부추무침을 만들었다. 이때 기자의 눈에 낯선 풀 조각(?)이 보였다. “이건 뭔가요?” 기자의 질문에 홍 병장은 이렇게 말했다.

“로즈메리라는 허브입니다. 사실 보급품으로 나오지는 않죠. 저는 취미 삼아 화분에 심어 키우고 있는데 가끔 요리할 때 조금씩 뜯어 첨가하면 독특한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넣은 줄 모르는 전우들이 가끔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있는데 반응이 참 재미있습니다.”

요리 중간중간 홍 병장은 닭다리살은 처음에는 센 불에 겉만 익혀 바삭바삭한 맛을 낸 뒤 약한 불로 서서히 속까지 익힌다는 등 여러 가지 소소한 팁들을 알려줬다. 또 발사믹 소스가 없을 경우 포도주스와 사과식초, 설탕을 넣고 졸이면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정보였다. 무심한 것 같지만 조리 하나하나에 그의 섬세한 연구 결과가 담겨 있는 듯했다.

이 요리는 홍 병장이 처음 칼을 잡은 중학교 2학년 때 스스로 연구해 만든 것이다. 그의 자부심이 가장 많이 담겨 있는 부분은 바로 ‘김치소스’. 그는 이 소스를 처음 개발한 뒤로도 꾸준히 연구와 개량을 해 지금의 맛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요리는 하나 만들었다고 해서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계속 먹어보고 부족한 점을 찾아내 고쳐나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김치소스의 풍미와 부드러움을 살리기 위해 군에 와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홍 병장은 뿌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고급 플레이팅 속 토속적인 맛…“군대 요리 맞아?”

드디어 요리가 완성되고 기다리던 시식 시간. 이날 본부대 식당에는 홍 병장의 요리를 참관하기 위해 정비대대 조리병 임재민·전진혁·황현상 일병이 함께했다.

흰 접시에 뿌려진 검은 발사믹 소스와 그 위에 놓인 먹음직한 닭다리살 스테이크. 홍 병장의 ‘역작’인 김치소스와 색감이 뚜렷한 부추무침이 한데 어우러진 완성작은 말 그대로 ‘작품’이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내놓았다고 해도 믿을 만큼 완벽한 플레이팅(요리를 예쁘게 담는 기술)이 돋보였다.

“제가 참가한 대회에서 김소희 셰프가 심사위원을 맡으셨는데 ‘모양은 고급스러운데 맛은 참 토속적이라 인상적’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의도한 부분이어서 참 기분이 좋았죠.”

홍 병장의 요리는 그저 ‘보기 좋은 떡’이 아니었다. 스테이크를 잘라 김치소스·채소와 함께 입에 넣는 순간 딱딱한 군 식당이 레스토랑으로 변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기자만이 아니었다.

“김치소스가 참 인상적입니다. 오늘 좋은 레시피를 배워갑니다.”(임재민 일병)

“닭다리살이 정말 맛있게 구워졌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구울 수 있을까요?”(전진혁 일병)

“끊임없는 연구의 결과라 더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해야겠습니다.”(황현상 일병)

홍 병장의 요리를 앞에 두고 모인 기자와 조리병들은 쉴 새 없이 젓가락을 놀렸고 요리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홍 병장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만든 레시피만 벌써 160여 개…“군 생활은 인생 성공의 발판”

“사실 저는 좀 게으른 편입니다. 하지만 30사단에서 ‘아이 캔 두’ 정신을 배운 뒤로 많이 바뀌었죠. 이곳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홍 병장은 지금의 자신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30사단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사단이 강조하고 있는 ‘아이 캔 두’ 정신을 배우며 더 적극적이고 부지런해졌다”고 말했다. “경례 구호 자체가 ‘필승! 아이 캔 두!’ 아닙니까? 하루에 수십 번씩 ‘할 수 있다’라고 말하다 보니 자신감이 절로 생겼습니다. 또 완벽한 요리를 위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자기개발을 위해 틈틈이 요리책도 보게 됐고요. 군 생활이 저에게는 인생의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된 것 같습니다.”

전역을 한 달여 남긴 홍 병장은 이미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푸드트럭을 운영하면서 전국 이곳저곳에서 여러 가지 식재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홍 병장은 이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외국 요리학교에 유학을 갈 것이라는 계획을 세웠다.

“이미 160여 개의 레시피를 만들었고 60개 정도는 바로 푸드트럭에서 쓸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푸드트럭으로 경험을 쌓고 유학을 다녀온 뒤로는 ‘한식 하면 떠오르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군 생활을 통해 체득한 ‘아이 캔 두’ 정신만 있다면 분명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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