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병재 교수의 군과 영화

전장 속에서 핀 전우애 피보다 진하다

입력 2016. 01. 2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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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블랙 호크 다운


 




애국심은 교육을 통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전우애는 교육을 통해 완성되진 않는다. 전우애는 실전 체험에서 생겨난다. 동고동락했던 전우가 적군의 총탄에 죽음을 맞을 때 느껴지는, 피가 거꾸로 치솟는 분노와 울분이 전우애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쓰러진 전우를 등에 업고 쏟아지는 적의 총탄을 피해 폐허가 된 건물 한구석으로 달려간다. 절망감에 젖어 있을 시간도 없이 적들이 좀비처럼 달려든다. 다시 대열을 갖추고 정조준해 방아쇠를 당긴다. 한 놈, 한 놈 차례로 쓰러뜨린다. 그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가득하고 분노가 이글거린다. 역설적이지만 전우애는 극한 상황에서 꽃을 피운다.

미군-소말리아 민병대 전투 영화화



영화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은 고립된 미군들이 아프리카 소말리아 민병대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이야기다. 1993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실제 전투를 영화화했다. 당시 소말리아 민병대는 오랜 내전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양민들에게 배급하는 식량 등을 중간에 약탈하고 살인을 일삼았다. 영화는 수적으로 절대 열세인 미군이 긴박한 상황에서 벌이는 눈물겨운 투혼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관객들은 보는 시간 내내 전쟁터 한복판에 있는 듯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Only The Dead Have Seen The End of War)'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미 육군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유격부대 레인저 등 최정예 미군들이 구호물자를 강탈하는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악독한 민병대 대장 모하메드 파라 에이디드의 최측근 두 명을 납치하는 작전을 펼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작전시간은 단 30분. 에이디드 민병대의 회의가 열리는 건물로 쳐들어가 델타포스가 표적을 확보하는 동안 헬기와 험비로 투입된 레인저 부대가 최측근들을 납치해 본부로 귀환하면 작전 끝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무적의 전투 헬리콥터인 '블랙 호크' 두 대가 잇따라 격추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급기야 미군들의 미션은 '납치'에서 '탈출'로 바뀐다.



고립된 젊은 유격부대원들과 베테랑 델타 부대원들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18시간 동안 폐허가 된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부상한 채 적들과 사투를 벌인다. 시 전체가 소말리아 민병대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도 극도의 긴장감과 전우를 잃어버린 허탈감을 극복해가며 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이 긴박하고 절박해질수록 전우애는 더욱 빛을 발한다.


절박한 상황 극복하게 한 전우애

 


영화는 군사작전에서 지나친 낙관주의가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그로 생긴 위기를 타개·만회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미군 작전책임자는 30분이면 작전 완료된다고 호언장담하고, 일부 미군은 수통에 물을 채우지도 않고 야간 고글과 여분의 탄약도 챙기지 않는다. 에이디드 군벌 세력과 그의 민병대를 훈련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오합지졸쯤으로 치부한 자만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적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예상치 않게 헬기에서 밧줄을 타고 하강하던 병사는 실수로 떨어지고 블랙호크도 잇따라 추락하자 작전은 한순간에 엉망이 된다. 일부는 헬기에 탄 생존자와 시신을 찾고자 추락 지점으로 달려가야 했고, 인해전술로 물 밀듯 쳐들어오는 민병대의 총공격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전열을 가다듬을 겨를조차 없이 부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쪼개져 사실상 지휘가 불가능한 상태가 된 것이다.



이 같은 막다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전우애뿐이다. 서로의 눈빛으로 명령과 수행이 이뤄지고 동료 병사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달려나가 적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한다. 고립무원 상황에서 서로서로 의지한 채 훈련 시엔 느껴 보지 못한 기운에 서로가 전율한다. 그리하여 부상한 전우를 등에 업고 무사히 부대에 복귀한다.


톱스타 없이 전투 자체 돋보이게


감독은 '글래디에이터'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리들리 스콧. 그는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전투장면을 다큐멘터리처럼 사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한두 명의 톱스타를 내세워 이야기를 펼쳐가지 않고, 여러 명의 주·조연급 연기자들을 캐스팅해 전투 자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실제로 소말리아 측은 민병대를 비롯해 1000명 넘게 숨졌다. 미군은 19명이 전사했는데 전사자가 육군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유격부대 레인저 등 정예부대원이었다는 점에서 질타가 쏟아졌다. 현지 지리에 밝은 민병대를 얕본 데다 소말리아 내전을 빨리 종식시키려는 조바심 때문에 무리한 작전을 감행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여론이 크게 나빠지자 1994년 소말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켰다.



이 같은 실제 정세에도 불구하고 영화 말미에 살아남은 주인공 병사(조시 하트넷)와 전장에 다시 나가는 선임 병사(에릭 바나) 간의 짧은 대화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또 (전투에) 가려고요?"



"대원이 남아 있잖아. 고향 사람이 묻더군. '그 짓을 왜 해? 전쟁이 그리 좋아?' 그땐 대꾸를 안 했지. 아무도 이해 못 해. 우리가 싸우는 게 전우애 때문이란 걸. 그게 전쟁인데."



그는 실탄과 총을 집어 들고는 전우를 구하려고 다시 출격한다. 이 같은 군인이 있기에 미국이 초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병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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