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을 그린 화가들

‘꽝!’

로이 리히텐슈타인

입력 2016. 01. 18   14:52
업데이트 2019. 09. 0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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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결말,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 

긍정적으로 바라본 시각…거장 반열 우뚝

  

1963년, 캔버스에 아크릴, 172.7x421.6㎝, 출처=위키아트
1963년, 캔버스에 아크릴, 172.7x421.6㎝, 출처=위키아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1923∼1997)이라는 작가를 아시나요? 


작가의 이름은 잘 몰라도 얼마 전 수백 억 원을 호가한다며 언론에 오르내리던 '행복한 눈물'은 많이들 기억하실 겁니다. '행복한 눈물'이 바로 그의 작품이지요. 


리히텐슈타인은 팝아트(Pop Art)를 대표하는 작가로 미국의 대중적인 만화, 특히 연애와 전쟁을 주제로 작업을 했죠. 리히텐슈타인이 활동한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등장한 이 새로운 경향의 작가들은 '반예술'이란 기치 아래 신문의 만화, 상업 디자인, 영화의 스틸 사진 등 인기 매스미디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중 리히텐슈타인은 특히 만화 이미지에 주목합니다. 그가 만화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바로 그의 하나뿐인 아들 때문이죠. 어느 날 리히텐슈타인의 아들이 아빠를 향해 미키마우스 만화책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장담하건대 아빤 이것만큼 잘 그리지 못할 거야!" 아들의 말에 자극을 받은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적 요소를 작품에 끌어들이며 그동안 자신이 추구했던 작품의 경향까지 바꾸게 됩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출처=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단
로이 리히텐슈타인. 출처=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단


인기 전쟁만화 한 장면을 발췌, 유화로 그려


그럼 이제 '꽝!'이라는 작품을 살펴볼까요? 

'꽝!'은 제2차 세계대전의 한 장면을 만화적인 이미지로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제목이 참 특이합니다. 제목만 들어서는 "뭐지?" 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작품을 같이 보면 이해하기 쉽죠. 리히텐슈타인은 특이하게 의성어를 작품의 제목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작품 오른쪽 중앙 윗부분에 'WHAAM!'이라는 글자 보이시나요? 우리가 "꽝!"이라고 쓰는 의성어입니다. 작가는 전투기가 충돌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꽝!'이라는 한마디로 명쾌히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당시 미국을 휩쓴 인기 전쟁만화 '전쟁에 동원된 미국 남자들'의 한 장면을 발췌해 유화로 크게 그린 것입니다. 당시 만화계는 2차 대전 중 일어난 영웅적인 사건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작품을 살펴보죠. 전투기와 조종사 그리고 공중전 묘사 등 금방 눈에 들어오지요? 작품에서는 2차 대전을 암시하는 모티프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공중전은 2차 대전 중 빈번히 나타난 전투 형태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항공기는 당시 최강의 공격용 무기였기 때문이죠. 


작품의 왼편에는 전투기를 몰고 있는 조종사가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조종사는 북미 원주민 혈통의 조니 클라우드(Johnny Flying Cloud)로 만화 속 등장인물입니다. 그가 몰고 있는 전투기는 그 유명한 P-51 머스탱이고요. 이 전투기는 2차 대전 중 유럽 전선에 투입돼 다양한 작전을 수행하는 강력한 기종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리히텐슈타인은 '꽝!' 외에도 여러 전쟁 만화를 패러디합니다. 당시 상당수의 만화가 전쟁을 주제로 한 것도 이유이기는 하지만 그가 전쟁을 직접 체험한 작가라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죠. 


대학생이던 리히텐슈타인은 2차 대전이 일어나면서 징병됩니다. 그는 기본훈련 기간 동안 대공훈련을 받았고 조종사 훈련도 받을 예정이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조종사 훈련이 취소되면서 파일럿이 되지는 않았죠. 미시시피주의 캠프 셸비(Camp Shelby)에서 복무할 때는 전공을 살려 '성조기 만화'를 확대하는 업무를 하기도 했답니다. 


복무 중 그는 유럽으로 파병돼 정비대대로 보내졌는데 맡은 일이 그런 만큼 실제 전투현장을 보지는 못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1943년부터 2년 동안 경험한 군 생활은 리히텐슈타인이 전쟁을 자신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보다 가까운 것으로 인식하게 했음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전쟁을 바라보는 새롭고 중립적인 시각

그런데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전쟁을 그린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뭔가 다르다고 느껴지진 않으시나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전쟁의 참상이나 그로 인한 아픔을 표현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반면 리히텐슈타인은 전쟁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을 보다 멋지게 표현하거나 중립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이 점은 이전과 달리 전쟁을 바라보는 화가의 새로운 시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전과 달리 전쟁을 중립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마 팝아트라는 미술 경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팝아트가 반예술적인 가치를 내세웠음을 언급했는데요. 팝아트 작가들은 현대 문명을 찬양하는 동시에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미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추상표현주의가 고급예술로서 삶의 고단함에서 벗어나려는 양상을 보였던 것과 정반대죠.

리히텐슈타인은 기본적으로 그가 발 딛고 있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었습니다. 처참한 전장, 전쟁의 비극적인 결말보다는 영웅적인 이야기를 찾아 그린 것은 그동안 저급예술로 취급받던 만화를 자신의 작품으로 가지고 와서 그 경계를 허무는 작업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평 속에서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예술가


'헬조선'이란 말이 모든 세대, 모든 계층을 강타하는 요즘, 삶이 고단하고 팍팍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요즘처럼 힘든 시대에는 리히텐슈타인처럼 다른 각도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색다른 시각, 끊임없는 도전은 언젠가 분명히 정당한 대가를 받기 마련이니까요. 저급 예술이라는 혹평 속에서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았던 리히텐슈타인이 훗날 최고의 예술가 반열에 오른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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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 기획 '전쟁을 그린 사람들' 2016년 1월 19일자 

로이 리히텐슈타인 '쾅'

로이 리히텐슈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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