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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 '부모'

케테 콜비츠 기사입력 2016. 01. 05   10:21 최종수정 2019. 09. 09   13:54

비통한 심정과 전쟁의 참상 고발한 '모정의 외침'

전쟁 겪은 화가로 사건·문제 그린 리얼리스트

목판 특유의 거친 질감·단순한 흑백 대비는

절망적 상황에서 부모의 슬픈 감정 극대화

자신의 작품 통해 사회에 경종 울리기도

  

▶ 케테 콜비츠 作 '부모'


"탯줄을 다시 끊는 심정"… 아들 잃은 '엄마 화가'의 절규

전쟁을 직접 겪은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들은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과 표현 방식에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전쟁을 직접 겪은 작가들의 경우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는 것에 비해 그렇지 않은 작가들은 이미 역사가 된 전쟁의 의미와 그로 인한 성과를 드러내는 것이 대부분이죠.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1867~1945)는 여성 화가입니다. 콜비츠는 위에 언급한 두 부류의 화가 가운데 전자, 즉 전쟁을 직접 겪은 부류에 속합니다. 그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사건을 그린 리얼리스트(Realist)로 독일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작가로 유명하지요. 


콜비츠가 살았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중반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제1·2차 세계대전과 독일 내전, 좌파와 우파의 첨예한 대립, 나치에 의한 제3국가와 같은 세계사적 사건이 이어지던 시기였죠. 또 18세기 계몽주의의 유산이 유럽 사상의 근간을 흔들던 때이기도 합니다.

콜비츠는 당시 흔치 않은 여성 화가로서 시대의 아픔을 그려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과 전쟁의 참상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들은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독일의 실제적인 삶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특유의 여성적인 시각으로 '엄마들'이 느꼈을 공포와 안타까움, 슬픔을 표현하고 있지요.

1923년 작품 '부모'는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제작한 판화 '전쟁 시리즈' 중 하나로 서로 끌어안고 있는 부모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직조공의 봉기' '농민전쟁' 등의 작품을 통해 사회적 발언을 시도했던 콜비츠는 전쟁을 겪게 되면서, 구체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둘째 아들 페터가 딕스뮈덴에서 전사하면서 '전쟁'이란 주제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해 10월 10일 장교로 임관해 어머니인 콜비츠의 품을 떠난 페터는 20일 만인 10월 30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달랑 한 장짜리 전사통지서를 받아 든 콜비츠가 큰 충격과 상실감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죠. 


콜비츠는 이때부터 전쟁을 겪는 어머니의 마음을 작품에 반영하게 됐죠. 이는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특징입니다. 여성이란 존재에 대한 주체의식과 모성의 감정이 작품에 담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콜비츠는 30년 이상 빠짐없이 적어 내려가던 일기에 페터를 보내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 들여다볼까요?

"아기의 탯줄을 또 한 번 끊는 심정이다. 살라고 낳았는데 이제는 죽으러 가는구나."

작품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고발했던 리얼리스트 콜비츠는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평범한 엄마로서 느낀 아픔을 작품에 투영하기 시작합니다.

'전쟁 시리즈'는 페터가 죽은 지 8년이나 지난 1922년부터 1925년 사이에 만들어집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콜비츠가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지요. 


그는 전쟁이 끝난 1919년부터 다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 시절 많은 화가가 전쟁으로 인한 충격으로 현실을 외면한 채 모더니즘(Modernism)이라고 불리는 표현양식의 변화에만 몰두할 때 콜비츠는 현실을 관찰하고 이를 작품으로 옮긴 점을 주목할 만합니다.

개인적 아픔을 예술로 승화… "전쟁은 모두가 겪는 비극"

다시 '부모'를 살펴보죠. 작품은 페터의 전사통지서를 받은 콜비츠 부부를 연상시킵니다. 부모로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식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의 가슴에 머리를 묻은 어머니와 한 손으로 어머니를 안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감싸 쥔 아버지의 모습은 전쟁이 이 부부에게 얼마나 귀중한 것을 앗아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판 특유의 거친 질감과 단순한 흑백 대비는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더욱 증폭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지요.

콜비츠는 작품에 슬픔의 감정을 단순화시켜 담아내면서도 그 크기는 극대화했습니다. 배경을 없애고 인물의 구체적인 묘사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탄식하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단순한 윤곽의 형상으로 표현했음에도 거친 목판의 선들은 그가 느낀 슬픔을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전쟁은 아들을 빼앗긴 아픈 기억이었습니다. 동시에 그가 이전부터 그토록 애정 어린 눈으로 그려온 현실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콜비츠는 자신의 작품이 개인적인 의미에만 머물러 있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전쟁 시리즈'를 비롯해 그가 그려온 작품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문제점을 다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또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사회에 울림을 주려고도 했고요. 그 가운데 '부모'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 콜비츠는 '부모'를 통해 그 비통한 심정을 전하면서 동시에 전쟁의 참상을 고발합니다.

연재의 시작을 콜비츠의 작품으로 시작한 것은 전쟁이 비단 국가와 국가, 군인과 군인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위해 총을 든 장병 여러분 역시 혼자가 아닙니다.

오늘 콜비츠의 작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매일 여러분들 생각에 잠 못 이룰 어머니가 떠오르시진 않았나요? 지금이라도 부모님께 건강한 목소리를 들려드리면 어떨까요? 부모님의 전화기는 24시간 켜져 있을 테니까요.

글 = 김 윤 애  문화역서울 284 주임연구원


■ 기사 원문 
    국방일보 기획연재 '전쟁을 그린 화가들' 2016년 1월 6일자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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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김윤애 연구원이 국방일보 기획연재 '전쟁을 그린 화가들'을 시작하면서 첫 회분에 함께 게재된 내용으로 기획 및 집필 의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전쟁을 그린 화가들'의 연재를 맡게 된 김윤애입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여자고요. 당연히 군대는 안 다녀왔습니다. 이쯤 되면 "여자가 전쟁 얘기를 얼마나 할 수 있겠어?"라는 반응이 나올 법도 한데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화가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붓이나 잡던 화가들이 전쟁을 알아?" 이런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죠.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얼마 전 돌아가신 천경자 화백은 1972년 베트남 전쟁 당시 종군화가단에서 맹활약합니다. '목적'(1972)과 같은 명작이 탄생한 것도 이때입니다. 여자·화가 역시 전쟁과 무관할 수 없다는 얘기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전쟁은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동·서양의 오랜 역사 속에서 무수히 많은 전쟁이 있었고 안타깝게도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전쟁이 진행 중이죠. 전쟁은 국가·사회·개인의 삶에 많은 변화를 불러오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또 전쟁을 통해 인식도 변화하게 되지요.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대중과 소통합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전쟁을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했을까요? '전쟁을 그린 화가들'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됩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화가들은 전쟁을 어떤 감정과 메시지, 의미로 화폭에 담았을까요? 지금부터 그림 속에 담긴 전쟁과 화가의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케테 콜비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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