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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고 빛나는 한국 역경을 딛고 희망을 품고 힘차게 도약하라 2016

이영선 기사입력 2016. 01. 01   17:00

빈곤의 상징에서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발전사는 그 자체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성공의 역사였다.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일어나 경제발전과 민주화란 기적을 이뤄냈다. 사진은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 모습으로 어둠을 밝히는 수많은 불빛이 새해의 희망찬 내일을 비추는 듯하다.  연합뉴스

 



역사는 흐름이다. 파고가 있고 부침이 있다. 수많은 국가가 장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 주변부를 맴돌며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1945년 대한민국이 세계무대에 독립국으로 이름을 내밀었을 때 오늘날의 발전을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미래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과 70년 만에 우리는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2차 세계대전 후 140여 개 독립국가 중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거의 유일한 나라가 됐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모범국이 됐다.



● 경제발전과 민주화 동시 달성 '세계사적 사건'



광복 후 70년 동안 한국이 보여준 발전은 경이 그 자체다. 흔히 독일의 '라인 강의 기적'에 빗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린다.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 시카고 대학의 로버트 루커스 교수는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약소민족도 국제사회의 치밀한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가 됐다. 고도의 압축성장을 통해 선진국 수준으로 도달한 흔치 않은 사례로 개발도상국들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대내외적으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선진국 수준으로 발돋움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은 광복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40달러에도 미치지 못한 변방의 최빈국이었다. 광복 후 불과 5년 만에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여기에 6·25전쟁 이후에도 지속된 남북 분단 상황은 국가자산의 효율적 분배와 투자를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70년 만에 국민소득이 약 2만5000달러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광복 당시에 비해 500배 가까이 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달성한 부분은 세계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1950년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영국 신문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뤄냈다. 지속적 경제성장이 중산층의 확대를 가져왔고 이 부분이 자연스럽게 민주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한국의 발전을 세계사적 사건으로 간주하는 전문가도 있다.



지난해 12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아우렐 크로시안트(Aurel Crossiant)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는 이 같은 우리의 성장에 대해 "한국 현대사를 보면 민주화가 가장 큰 업적이라고 생각한다"며 "경제발전에 의해 진정한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한국이 이러한 사례를 더욱 홍보하고 확산시킨다면 글로벌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 세계 석학들의 농업 우선 경제 조언 대신 공업화 전략으로 성공



동일한 조건이라도 항상 결과가 같은 것은 아니다. 공통된 근대화의 조건에 있더라도 나라마다 발전이 똑같은 형태로 구현되지 않는다. 한국의 발전은 공업화 전략의 성공에 기인한다. 국가지도자와 국민이 힘을 더해 이룩한 결과다. 하지만 세계 전문가들 진단은 정반대였다. 6·25전쟁 직후 유엔한국위원단이 한국의 전후 부흥을 위해 미국 네이산 협회에 의뢰해 만든 한국의 발전전략은 농업 우선 정책이었다. 농업분야에 대한 집중적 투자로 농업을 먼저 일으킨 후 그 잉여가치로 소규모 공업을 건설해 국가발전을 추진하라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농업으로 국가를 발전시키는 데는 한계를 인식하고 이 발전안을 과감히 거절했다. 대신 높은 교육수준과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한 공업화 전략을 선택했다. 인천에 대한중공업공사를 설립하고 이곳에 소규모 제철소를 건설했다.



70년대 중화학공업 우선주의의 과감한 선택과 효율적 관료 시스템도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으로 꼽힌다. 정부는 투명한 공무원 채용과정을 통해 역량 있는 관료제를 구축하고 이들을 국가역량의 기반으로 활용했다. 대체로 관료가 되는 길을 모두에게 공정하게 열어주었는데 공무원채용시험제도는 채용과정에 대한 부패를 사전에 차단하는 효율적 수단이 됐다. 대부분 저개발 국가가 연고주의의 함정에 빠져 극심한 부정부패로 국가역량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의 관료 등용제도는 더욱 빛을 발한다.



뜨거운 교육열도 세계 발전전략 전문가들이 꼽는 한국의 성공 요인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까지 국민 대다수가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하는 문맹이었다. 하지만 정부 수립 후 이승만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며 의무교육 6개년 계획, 문맹퇴치 5개년 계획 등을 수립하는 등 거국적 문맹 퇴치 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1960년에는 문맹률이 10% 이하로 떨어졌다. 국가자산을 교육에 집중한 데 따른 수혜자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1945년 약 8만 명에 그치던 중학생은 2014년 약 380만 명으로 증가했다. 고등학생 수는 불과 2382명에서 320만여 명으로 무려 1343배나 늘어났다.



● 미래의 도전 극복



오늘날 한국의 발전이 세계사에 주는 함의는 명확하다. 폐허에서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이뤘고 2차 세계대전 후 140여 독립국가들 사이에서 전례를 보기 힘든 '자유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나라가 됐다.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지난 9월 열린 한국선진화포럼 1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한국의 경제발전처럼 원조를 받는 나라가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 발전한 예는 세계 경제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자원 빈국임에도 불구하고 자원 부국들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산업발전을 이루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과 국토분단과 전쟁 발발 위험 속에서 막대한 국방비 부담을 극복하고 건실한 성장을 이룩한 점 등은 세계사적으로 후발 개도국들에 큰 참고사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는 경제 활력을 위협하며 국가 경쟁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청년실업은 경제의 성장동력을 잠식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남다른 저력을 보유하고 있다. 1998년 IMF사태 당시 보여준 국민들의 단결력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어려울수록 뭉치는 위기 극복의 DNA는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실현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70년 동안 세계사의 기적을 만들었던 도전정신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다.

이영선 기자 < ys119@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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