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역사속 오늘

주한 미8군사령관 워커 장군 전사(1950)

정남철

입력 2015. 12. 2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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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오늘 오전, 미8군사령관으로 6·25전쟁에 참전하고 있던 월턴 워커(중장) 장군이 지프에 몸을 싣고 의정부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경원축선에서 중공군의 파상 공세를 잘 막은 미 24사단과 영연방 27여단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한 길이었다. 특히 미 24사단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 샘 워커 대위에게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었다.



워커 장군이 탄 차가 오전 11시쯤 서울 도봉구 도봉동 596-5(당시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를 지날 무렵 반대편에서 한국군 트럭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장군이 탄 지프 운전사는 급히 핸들을 틀었지만 충돌하면서 도로 옆 비탈로 굴러떨어졌고, 장군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미군은 아들 워커 대위에게 장군의 시신을 미국으로 운구토록 했지만 워커 대위는 끝까지 한국에서 싸우겠다고 고집했다. 결국 맥아더 사령관이 도쿄로 워커 대위를 불러 직접 운구 지시 명령을 내렸다. 지금껏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회자되고 있는 대목이다.



워커 장군은 6·25전쟁에서 한국을 구한 영웅이었다. 낙동강 전선을 사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1950년 7월 13일 한국으로 파견된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던 낙동강 전선으로 달려갔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후퇴란 없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결국 장군은 낙동강 워커 라인을 사수했고, 이는 곧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이 됐다. 장군은 이듬해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으며, 대장으로 추서됐다. 워커 대위는 미군 역사상 최연소 대장으로 진급, 역시 미군 역사상 유일한 부자(父子) 대장이 됐다.

정남철 기자 < gop155@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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