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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비는 과자 일본인들에겐 불운?

입력 2015. 11. 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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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포천 쿠키


  일본계 미국인이 처음 제조 

 2차 대전으로 ‘일본계’ 억류  

중국계 미국인 대신 생산 후  

부분은 ‘중국이 원조’ 인식

 

 


 

 포천 쿠키(fortune cookies) 안에는 운세를 점칠 수 있는 종이가 들어 있다. 대부분은 좋은 이야기를 적는다. 간혹 명구가 쓰여 있거나 조심하라는 당부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이름도 행운의 과자다. 누가 처음으로 과자 속에 행운의 점괘를 적은 종이를 넣는 발상을 했을까?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포천 쿠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원래는 미국에 있는 중국 레스토랑에서 후식으로 제공하는 과자다. 그런 만큼 과자의 기원도 중국일 것 같지만 중국인조차도 포천 쿠키는 전통 중국 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미국의 중국 레스토랑에서 포천 쿠키를 주게 된 것일까?

 사연이 있다. 포천 쿠키는 원래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같은 미국 서부 대도시의 중국 레스토랑이나 일본의 다과점에서 손님들에게 디저트나 서비스로 제공했던 과자다. 이런 포천 쿠키가 서부를 떠나서 동부로, 그리고 미국 전역으로 퍼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태평양전선의 미군 병사들은 일단 캘리포니아로 귀환했다. 서부의 대도시로 휴가를 나온 병사들은 중국 레스토랑에서 포천 쿠키를 보고 하루 운세를 점치면서 재미있어했다. 그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중국 음식점 주인에게 캘리포니아에서는 재미있는 행운의 과자를 후식으로 주는데 여기서는 왜 안 주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곳곳의 중국 레스토랑에서 포천 쿠키를 서비스하게 되면서 미국 전체로 퍼졌다.

 얼마나 유행했는가 하면 2차 대전이 끝나고 5년이 지난 1950년에 미국에서 한 해 동안 2억5000만 개의 포천 쿠키가 생산됐다. 갓난아이까지 포함해 전체 미국인들이 일인당 약 2개씩 먹은 꼴이다. 지금은 연간 약 3조 개를 생산하니 미국에 포천 쿠키가 얼마나 퍼졌는지를 알 수 있다. 심지어 1960년대에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포천 쿠키를 선거에 활용하기도 했다. 포천 쿠키의 운세 종이에 “누구누구를 찍으면 당신한테 큰 행운이 올 것”이라는 글귀를 적어 나눠주었다. 포천 쿠키가 그만큼 미국인의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었던 것이다.

 

 


 



 2차 대전으로 미국 전역에 퍼졌지만, 미국에 처음 포천 쿠키가 들어온 것은 훨씬 전이다. 19세기 말, 내지는 1910년대 전후로 보고 있다. 포천 쿠키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것 중 하나는 1890년대 미국에 이민 온 하기와라 마코토라는 일본인이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부근에 일본 찻집을 열면서 차와 함께 먹는 다과로 포천 쿠키를 내놓은 것이 처음이라는 설이다. 쿠키를 일본계 제과점에서 만들어 공급했다는 것이다.

 중국계 미국인들은 또 다른 주장을 한다. 미국에 이민 온 홍콩 출신의 국수제조 업자 데이비드 정이 191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만들었지만, 중국계가 아닌 일본계 세이치 키토가 발명했다는 주장도 있다. 포천 쿠키의 원조를 놓고 중국계와 일본계 이민자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두 도시까지 서로 다투고 있다.

 그렇다면 포천 쿠키의 기원은 어디일까? 누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창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꼭 뿌리를 찾아야겠다면 일본이 유력하다. 19세기 무렵부터 일본 교토에 지금 미국의 포천 쿠키와 비슷한 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쿠키 끝에 행운의 문구가 적힌 종이를 매다는데 이런 과자를 길흉을 점치는 종이를 넣은 과자라는 뜻에서 쓰지우라 센베이(?占煎餠)라고 한다. 지금도 사찰에서는 오미쿠지라는 신점(神占)을 통해 행운을 골라잡는 풍속이 있다.

 이 때문에 포천 쿠키의 기원을 중국이 아닌 일본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런데 지금은 왜 중국 레스토랑에서 전매특허처럼 포천 쿠키를 서비스하는 것일까?

 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포천 쿠키는 일본계 미국인들이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는 20세기 초반 중국 레스토랑이 많이 생겨났는데 상당수는 중국계가 아닌 일본계 이민자들이 운영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자장면의 반찬으로 일본 단무지를 주는 것처럼 미국식 중국요리를 팔며 일본 사찰에서 주는 신점 과자를 디저트로 제공했다.

 일본계 이민자가 만들던 포천 쿠키가 중국계의 손으로 완전히 넘어간 것 역시 2차 대전이 계기가 됐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미국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행정명령 9066호를 발표했다. 일본계 미국인을 집단수용소에 강제로 억류한다는 행정명령이다. 그 결과 약 12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이 여자와 어린아이를 막론하고 집단 캠프에 수용됐다. 이들은 전쟁이 끝날 무렵까지 집단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그동안 중국계가 포천 쿠키의 생산을 대신했다. 그 결과 2차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포천 쿠키 비즈니스가 중국계의 손으로 넘어갔고 포천 쿠키 자체도 원래부터 중국 과자였던 것으로 사람들이 인식하게 됐다.

 일본계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했지만 침략전쟁을 일으킨 모국으로 인한 불이익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행운의 과자인 포천 쿠키에 얽힌 불운의 에피소드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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