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정성엽박사의 군가이야기

남성합창으로 하나된 독일… ‘냉전 장벽’ 녹이다

입력 2015. 11. 1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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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군가합창! 국가 통일을 이루는 밑거름


19세기 초 남성합창운동 등장

화합·애국심 담긴 ‘군가’ 형식

독일·스위스에서 동시에 주도

전쟁 후 독일국민 단합에 큰몫

 


 

 지난 금요일 국방부 주최 ‘군가합창대회’가 있었다. 민간합창단까지 12개 팀의 군가 합창이 성황리에 펼쳐졌다. 9월에는 예선대회도 있었다. 군 합창단들은 우승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묘안을 적용했다. 그렇다면 병영에서 군가 합창은 생활화될 수 있을까? 63만여 명의 병력을 보유한 우리 군은 50만 명 이상이 20대 남성으로 구성돼 있으며 매년 20만여 명의 젊은이가 입대하고 전역한다. 그러나 이들이 입대 전 인성교육이나 예술교육을 받은 경력은 아주 미미하다. 21개월에서 24개월 동안 군복을 입고 군인으로 생활하지만, 개인이 가진 인성은 그대로 유지한 채 집단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갈등과 충돌이 이어지게 되는 구조다.

 합창활동이 개인의 인성 변화에 무척 긍정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가지 사례로 증명되고 있다. 우리 군은 300여 개 군가를 지니고 있고 연령대가 비슷한 인원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직업군이다. 여기서 19세기 초 독일어권 지역에서 일어난 남성합창운동을 살펴보고자 한다. 19세기 초부터 20세기 말까지 독일어권 지역에서 일어난 남성합창운동은 각 마을과 직장 곳곳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비전문가들의 합창연주 형태였던 이러한 운동은 남성들의 순수한 취미 모임으로 출발해 사회 현실과 국가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형태로 관심영역을 확대해 갔고 몇몇 주변 국가들에까지 확대됐다. 이들이 부른 노래들은 다양했는데 서로의 화합을 다지는 내용과 독일에 대한 애국적 내용을 가진 노래가 가장 많이 불렸다. 즉 군가의 형식을 띠고 있거나 일종의 군가였다.



 세계 최초 남성합창단 ‘독일 리더타펠’

 세계 최초의 남성합창단인 독일의 리더타펠(Liedertafel)은 프로이센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1809년 ‘칼 프리드리히 첼터’에 의해 태어났다. 당시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나폴레옹의 침공에 쫓겨 동프로이센으로 피란 가 있었다. 남성합창단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독일이 처한 정치·사회·민족적 위기에 따른 것이었는데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널리 전파된 아마추어 음악운동이었다. 리더타펠은 ‘노래가 있는 식탁’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이것은 전설에 나오는 아서왕의 기사들이 원탁 모양의 식탁에 모였던 것에서 ‘원탁의 기사’라고 불렸던 데 따른 것이다. 즉 노래하는 동아리로서 모든 단원이 그 동아리 안에서는 동등하다는 원칙을 모방한 것이다. 또한, 한스 게오르크 네겔리(1773~1836)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남부 독일의 합창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활기차고 힘 있는 남성합창을 추구했는데 남성의 목소리가 언어를 표현함에서 여성의 높은 목소리보다 분명하고 음향적으로 명확히 구별된다는 점을 찾아냈다. 또 남성의 목소리에 의한 언어는 호소력이 강하다는 점도 발견했다. 이처럼 남성의 목소리를 요구한 것은 그의 합창곡이 ‘조국사랑’이 테마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합창운동을 주도한 네겔리의 정치적 이상은 국민 주권에 관한 인식과 독일민족이라는 긍지를 표현하는 음악장르로는 합창이 가장 어울린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예술가의 정치적 이상은 대중과 폭넓은 접촉을 할 수 있는 합창이라는 음악장르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보불전쟁 승리와 독일 통일 결정적 역할

 이처럼 독일어권의 남성합창운동은 독일 베를린과 스위스 취리히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200년 동안 이어졌던 이 합창운동은 사회 각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의 남성합창운동은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고 독일 국민들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합창운동을 통해 결집한 힘은 1870년 보불전쟁이 승리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고 프랑스에 대한 완전한 승리와 독일 통일을 이루어내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합창운동은 많은 남성을 단결하게 하고 그들의 마음에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합창운동은 히틀러의 지나친 간섭으로 잠시 축소됐으나 전쟁이 끝난 후 독일 국민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합창운동은 분단된 동·서독에서도 똑같이 진행됐고 마침내 독일 통일로 이어지게 된다. 즉 독일인들의 사고를 통일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민과 군이 함께 부르는 군가 합창의 생활화를 통해 국민을 단결시키고 분단된 대한민국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는 없을까? 독일의 합창운동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가합창대회를 보면서 느낀 감회를 적어봤다.



<정책학 박사·한남대 한국군가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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