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대한민국 국군 리포트

“마음의 양식이 차오르는 곳… 여기는 해오름입니다”

맹수열

입력 2015. 10. 0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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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격오지에 부는 ‘책 바람’…공군 8980부대 병영도서관


 

 


 

 

지난 7월 개관한 해오름도서관 실내 전경.

 

 

 

   3평 남짓한 쪽방에는 하늘색 페인트칠이 벗겨져 너덜너덜해진 나무 책장 1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편에 마련된 인조가죽 소파에는 담뱃재가 떨어져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나 있었다. 책장에 쌓인 책은 언제 발행됐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낡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2003년 공군 모 방공유도탄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던 기자의 기억에 남은 도서관의 모습이다. 비교적 시설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공군이지만 방공유도탄부대는 조금 얘기가 달랐다. 이른바 ‘사이트’라고 불리는 방공유도탄부대는 비행장에 비해 열악한 시설 때문에 장병들에게 ‘기피의 대상’이었다. 

 

 

 

 ● ‘격오지는 열악하다?’ 편견 확 뒤집은 해오름도서관

 ‘상전벽해’(桑田碧海),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지난달 30일 1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방공유도탄부대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기자가 찾은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 예하 8980부대는 널따란 체육관, 깔끔한 생활관과 부대시설 등을 갖춰 장병들이 여가를 즐기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요즘은 지원해서 방공유도탄부대를 오는 경우가 많다”는 장병들의 귀띔은 빈말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지난 7월 개관한 ‘해오름도서관’이었다. 그동안 도서관은 생활관과 떨어진 포대본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병들 대부분이 점호를 마친 밤 9시 이후 점등시간을 이용, 책을 읽는 것을 감안하면 이래저래 불편함이 있었다고 한다. 해오름도서관 개관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정세호(소령) 8980부대장은 무엇보다 이런 불편함을 더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일과 후나 주말은 물론 일과 중 점심시간이나 점등 후에도 많은 장병들이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점등 시간에는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도서관이 꽉 차고 있지요. 개관 목표 중 하나였던 ‘오고 싶은 도서관’을 만들게 돼 다들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조 부대장의 설명이다. 그는 “도서관을 생활관 내 상황실 옆에 만들어 야간 인력관리도 더욱 용이해졌다”며 “그 옆에는 사이버지식정보방을 배치해 생활관에 ‘종합문화공간’이 조성되도록 신경 썼다”고 전했다.

 

● 원목 책장·가구, 바다 그림 벽지 등 북 카페 온 느낌

‘오고 싶은 도서관’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15평 정도의 널찍한 도서관은 원목으로 만든 책장과 의자, 스탠드, 바다 그림이 그려진 벽지, 나무 무늬 바닥 등으로 만들어져 ‘자연 속 도서관’의 느낌이 물씬 났다. 또 밝은 LED 조명과 간접 조명을 이중으로 설치, 분위기를 냈고 유리 출입문, 액자, 원목 현판 등으로 차별화된 북 카페의 느낌을 살렸다. 도서관 개관을 주도했던 서웅 중위는 “개관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바로 접근성 강화였다”며 “공군본부가 주관하는 ‘책다모아 캠페인’을 통해 18전투비행단에서 기증받은 100여 권 등 3000권에 이르는 다양한 책들과 민간 도서관 못지않은 깔끔한 환경이 장병들의 발걸음을 모이게 한 힘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확 달라진 도서관은 그동안 잠자고 있었던 장병들의 ‘독서열’을 일깨웠다. 개관 뒤 도서 대여량이 하루 평균 40여 권으로 개관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은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도서관 관리병을 맡고 있는 최승현 일병은 “매일 같이 책을 빌리러 오는 전우들, 점등시간을 이용해 공부·독서를 하는 전우들로 쉴 틈이 없다”고 전했다.

 

● 책 3000권 보유, 장병들 독서 붐 일어

 8980부대에 분 ‘책 바람’은 장병들의 입을 통해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개관한 지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거의 모든 장병들이 한 번 이상은 도서관을 이용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열기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새 도서관에 대한 장병들의 애정도 대단했다. 입대 뒤 80여 권의 책을 읽었다는 여석호 병장은 “책을 많이 읽고 싶어도 접근성이 떨어져 도서관을 잘 찾지 않았는데 지금은 시간이 나는 대로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다”며 “군에서 읽은 다양한 책들이 전역 뒤 사회에 나가서도 큰 양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입대 전 책과는 담을 쌓았었다”는 고성준 병장은 “군은 나에게 독서란 새로운 취미를 붙여준 소중한 곳”이라고 말했다. 고 병장은 “가을을 맞아 모두 해오름도서관에서 마음의 양식을 쌓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도서관 개관과 관리를 돕는 것은 물론 자신이 가진 책을 기증하는 장병들도 있었다. 도서관에 30여 권의 책을 기증한 최태일 병장은 “경영학을 전공하다 보니 관련 서적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도서관에는 그런 책들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며 “도서관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해오름도서관은 독특한 책 배열이 눈에 띈다. 난간에 한 줄로 책이 꽂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책장과 벽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고 난간 하나에 책을 두 줄로 배치했다. 개관 준비를 자발적으로 도운 황제현 병장의 아이디어다. 개관 뒤에도 관리를 돕고 있는 황 병장은 “학창시절부터 줄곧 도서관이란 공간을 좋아해 왔다”며 “새로 도서관을 짓는다고 하니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 독서문화 정착으로 병영 혁신 “어렵지 않아요”

 도서관이 가져온 독서 열풍의 가시적인 성과도 있다. 부대는 공군본부, 방공유도탄사령부 등 상급부대에서 주관하는 우수 독후감 공모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매달 자체적으로 선발하는 우수 독후감 가운데서도 우수한 작품만을 선별해 공모에 임하기 때문이다. 평소 책을 읽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 매주 특정 주제 및 도서를 정하고 독서토론을 하는 독서토론 동아리도 활성화돼 있다. 간부들 사이에도 독서 소모임이 있다. 방공유도탄부대는 그 특성상 문화생활을 누리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8980부대는 부대장의 든든한 지원과 장병들의 열정으로 그 편견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했다.

해오름도서관은 독서를 통한 병영문화 혁신이 조금의 관심과 노력, 스스로의 열정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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