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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최초로 38선 돌파한 날 1956년 3군 창설 기념일 통합

이영선 기사입력 2015. 10. 02   20:57

국군의 날 왜 10월 1일일까?

1973년 법정기념일에 포함

1976년 공휴일 지정됐다가 1990년에 제외돼

1993년부터 대통령 취임 연도에 대규모 행사

 

 

 1일은 ‘국군의 날’이었습니다. 국가수호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60여만 장병들의 생일인 셈이죠. 국방부는 1일 국군의 날을 맞아 대대적 행사를 준비했지만, 우천 관계로 이 모든 것을 실내 행사로 대체해야만 했습니다. 행사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던 장병들과 우리 군의 늠름한 모습을 기대했던 시민들에게는 하늘이 원망스러웠을 법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념하는 ‘국군의 날’은 1956년 9월 ‘국군의 날에 관한 규정’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기존 육·해·공 각 군이 별도로 시행하던 창설 기념일을 통합해 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한 것이죠. ‘국군의 날’ 지정 이전까지는 육·해·공군, 해병대의 창설 기념일은 모두 각 군별로 시행했습니다. 육군은 1946년 조선국방경비대가 창설된 1월 15일을, 해군은 1945년 해방병단 결단식 거행일인 11월 11일을 창설일로 삼았고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을, 공군은 육군으로부터 분리독립한 1949년 10월 1일을 창설일로 기념해 각각 자체적으로 행사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6·25전쟁은 이러한 각군 자체 기념일에 일대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습니다. 6·25전쟁을 겪으며 국방의 중요성을 절감한 정부가 국군 사기와 국민의 국방의식을 높이기 위해 1955년 8월 30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령 제1084호로 육·해·공군 기념일을 제정, 공포한 것이죠. 이때 육군은 6·25전쟁 중 사단급 부대가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날을 기리기 위해 육군 기념일을 1월 15일에서 10월 2일로 변경했습니다. 하지만, 각군 기념일이 공식화되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군별로 기념행사를 거행하면서 물적, 시간적 낭비가 심해진 것입니다. 또한, 각 군 기념일로 인해 국군으로서 일체감 조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정부는 다시 1956년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하게 됩니다.

 그러면 왜 10월 1일이 ‘국군의 날’로 선택된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당시 국무회의 심의경과표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 이유가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단지 ‘단일화해 국가재정과 시간을 절약하려는 목적’이라고만 설명돼 있을 뿐이죠. 이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육군3사단 23연대 3대대가 38선을 돌파한 날을 기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또한 이 추정이 정설로 굳어져 있기도 합니다. 또 다른 설명은 공군 창설을 통해 육·해·공 3군 체제를 완성한 날인 10월 1일을 기념일로 정함으로써 국군의 일체감을 조성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죠. 여기에 1년 전 대통령령으로 제정한 육군기념일과 공군기념일이 하루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며 10월 첫날이 기억하기도 쉽다는 현실적 이유도 고려된 것이라는 추정도 있습니다.

 어쨌든 ‘국군의 날’은 1973년 3월 법정기념일에 포함됐고 1976년 9월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하지만, 1990년에 다시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돼 군 장병만의 휴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국군의 날’에는 첫 제정 연도인 1956년부터 1978년까지 매년 서울 중심가에서 도보부대와 기계화부대가 대대적 시가행진을 펼치며 그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이후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2년 동안은 3년 주기로 대규모 행사를 펼쳤고 1993년부터는 5년 주기로 대통령 취임 연도에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근래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해인 2013년 서울 광화문에서 퍼레이드를 펼치며 우리 군의 강인한 위용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이영선 기자 < ys119@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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