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DMZ동서횡단 냉전을 넘어 희망을 보다

[연중기획_DMZ 동서횡단, 냉전을 넘어 희망을 보다]⑦ 경기 파주

이영선

입력 2015. 09. 15   18:26
업데이트 2023. 08. 2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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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최전방의 육군1사단


자연의 시간에는 멈춤이 없다. 남북을 가르는 철책의 공간에도 시간의 흐름은 계속된다. 모두를 지치게 했던 무더위는 조금씩 뒷걸음친다. 새로운 계절이 그 자리를 야금야금 차지하고 들어온다. 하지만 9월 초순 DMZ의 계절은 여전히 혼돈의 시간이다. 한낮 햇살은 여전히 여름세가 장악하고 있지만 해가 넘어가자 그 기세는 완전히 달라진다. 기온은 서늘하고 한기조차 느껴진다. 서부전선 최전방의 육군1사단 GOP 장병들은 계절의 접경을 체감하며 임무를 수행한다. 


●계절의 변화는 경계임무 각오 다지는 계기

 

 육군1사단 백학대대 GOP 경계장병들이 고가초소 위에서 남방한계선 북쪽 지역을 주시하며 경계작전을 펴고 있다
 육군1사단 백학대대 GOP 경계장병들이 고가초소 위에서 남방한계선 북쪽 지역을 주시하며 경계작전을 펴고 있다


최전방 서부전선의 가을은 바람으로부터 시작한다. 수풀은 여전히 푸르지만 그들을 흔드는 바람은 확연히 다르다. 습한 공기는 사라지고 선선함이 가득하다. 가을을 실감하기에 녹음의 변화는 아직 이르다. 많이 옅어졌지만 그 위세는 여전하다. 하지만 간간이 ‘열꽃’ 같이 피어난 수목들의 붉은 잎들은 계절이 전환점을 돌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계절의 변화는 장병들에게 경계임무의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역할도 한다. 한 시기를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과 함께 또 다른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된다. 1사단 GOP철책의 한 경계병은 “최전방에서 여름을 넘기고 가을을 맞이하니 감회가 새롭다”며 “이제 낙엽이 지면 무성한 수풀 때문에 어려웠던 경계임무도 조금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육군1사단 GOP 장병들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철책점검을 하고 있다. 
육군1사단 GOP 장병들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철책점검을 하고 있다. 

 

그 병사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는 것이 서부전선 백학산 일대의 지형은 동부전선을 연상케 한다. 비록 산세가 동부전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위세는 당당하다. 철책 너머는 첩첩산중이다. 산림도 무성하다. 수풀이 방해하는 경계작전의 어려움보다 오히려 최전방의 맹추위를 택하는 장병들의 선택이 이해되는 이유다. 

 

● 개성공단 왕래 차량 안전경비

민통선 내 도라산역 개찰구에서 관광객의 수를세고 있는 안내병사
민통선 내 도라산역 개찰구에서 관광객의 수를세고 있는 안내병사


개성공단은 남북 협력의 상징이다. 매일 수많은 우리 기업인과 차량이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도로를 통해 개성공단을 왕래한다. 이들의 경비를 담당하는 부대가 육군1사단 ‘경의선 경비대’다. ○○명의 부대원들은 남방한계선의 ‘도라 통문’부터 군사분계선(MDL)까지 약 1.8㎞의 경의선 구역을 책임진다. 방북에 복귀를 더해 하루 약 21회의 ‘통행작전’을 펼친다. 이들이 책임지는 왕복차량 대수가 하루 약 500~600대에 이른다. 

통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다. 원래 오전 8시30분부터 시작했지만 지난달 15일 북한이 일방적으로 ‘평양 표준시’를 선언하면서 30분씩 늦춰졌다. 통문 개방은 30분 단위로 진행되며 입·퇴경용으로 구분해 운영한다. 출입통제반 대원들은 통문 개방과 폐쇄 이외에 또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다. 계수기로 차량 숫자를 확인해야 한다.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 도라 통문에서 육군1사단 경의선 경비대 대원들이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방문차량들을 위해 경의선 도로를 막고 있던 통문을 열고 있다.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 도라 통문에서 육군1사단 경의선 경비대 대원들이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방문차량들을 위해 경의선 도로를 막고 있던 통문을 열고 있다.


방문 차량은 모두 세 번에 걸쳐 체크되는데 대기과정과 통문통과 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DMZ 내 초소운영반에서 그 숫자를 맞춘다. 경비대 초소운영반 대원들은 공식적으로 가장 MDL에 근접해 작전을 펼치는 병력이다. 이들은 통행 약 30분 전에 투입돼 북 경비 초소 병력이 철수하면 복귀한다. 

 재미있는 것은 경비대원들의 일정이 북한의 시간에 맞춰진다는 점이다. 현재 북한이 쉬는 일요일에만 휴무를 한다. 경비대장 한성욱 소령(진)은 “이번 한가위에도 휴일 없이 근무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군 유일의 특수임무인 만큼 장병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경비대원 이준성(23) 병장은 “북한을 왕래하는 민간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중대 임무를 수행하는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이동도서관’

 

도라대대 소초 장병들이 파주시가 운영하는 이동도서관 차량 속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도라대대 소초 장병들이 파주시가 운영하는 이동도서관 차량 속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최전방 부대에는 경계작전이라는 동일한 임무 속에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 육군1사단의 경우 이동도서관이 그중 하나다. 도라대대 ○○소초의 경우 매월 셋째 주 화요일마다 이동도서관이 부대를 방문한다. 파주시가 운영하는 이동도서관은 지난 6월부터 최전방의 장병들에게 마음의 양식을 전달하고 있다. 매월 약 100권의 책을 선정해 소초에 대여하면 장병들이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다음 방문일에 반납하는 방식이다. 

그런 만큼 이동도서관이 방문하는 날은 ‘축제일’이 된다. 부대는 대출했던 책을 정리해 전달하고 새로운 책으로 소초 독서카페를 채운다. 이준우 병장은 “이동도서관이 방문하면서 동료들의 여가 생활이 풍성해졌다”며 “책이 많아도 새로운 도서가 오니 매월 이동도서관 방문일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이 부대 소초 건물 앞에는 장병들의 재기 넘치는 조형물이 있다. 철수일자를 알려주는 ‘완전경계 완수 탑’이다. 명칭은 ‘탑’이지만 모양은 벽돌을 쌓아 만든 조금은 조악(?)한 조형물이다. 그나마 벽돌 숫자는 50여 개에 불과하다. 부대 관계자는 “GOP 근무 일자를 붉은 벽돌로 쌓고 철수일을 예상할 수 있도록 매일 한 개씩 벽돌을 제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병사가 GOP 철수일자를알려주는 ‘완전경계 완수탑’의 벽돌을 제거하고 있다
한 병사가 GOP 철수일자를알려주는 ‘완전경계 완수탑’의 벽돌을 제거하고 있다

 

 탑은 대대장의 아이디어다. 경계부대의 매너리즘을 경계하고 장병들에게 일종의 시각적 자극을 주기 위해 ‘완수 탑’을 설치했다는 전언이다. 부대의 한 병사는 “처음에 가슴 높이까지 올라왔던 탑이 벌써 바닥 가까이까지 내려갔다”며 “탑의 벽돌을 볼 때마다 철수하는 날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고 말했다.

 

●조부·아버지 뒤 이어 1사단 지킴이로

 

1사단 쌍용연대의 남태완(23·사진) 상병은 3대가 같은 사단에서 복무하는 열혈 병사다. 남 상병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직계가족복무제도를 신청해 1사단의 전우가 됐다. 특히 1980년대 초반 복무한 아버지는 남 상병과 같은 대대는 물론 같은 중대와 소대에서 복무해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이미 돌아가신 남 상병의 할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사단 포병으로 싸웠던 참전용사다. 

남 상병이 1사단을 선택하기까지는 아버지의 세뇌(?)가 큰 영향을 미쳤다. 남 상병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께서 남자는 1사단에서 복무해야 진정한 군인이 된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씀하셨다”며 웃었다. 면회를 올 때마다 아버지의 부대 사랑은 남 상병을 넘어선다. 부대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통에 난감했던 경우도 많다.

 남 상병은 1사단 ‘3대 전우’의 명예가 단순한 자부심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 남 상병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나 자신도 남과 다르게 군에 오려 노력했다”며 “전역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복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남 상병은 GOP 잔류를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부대 철수와 함께 후방근무로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그의 군인정신은 여전히 최전방에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선 기자 < ys119@dema.mil.kr >
사진 < 조용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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