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DMZ동서횡단 냉전을 넘어 희망을 보다

[연중기획_DMZ 동서횡단, 냉전을 넘어 희망을 보다]④ 강원 화천

이영선

입력 2015. 06. 09   17:32
업데이트 2023. 08. 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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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날씨를 보인 지난달 26일 강원 철원군에 위치한 승리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 일대가 짙푸<br>른 녹음으로 생기를 더하고 있다. 육군15사단 GOP 경계병들이 철책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초여름 날씨를 보인 지난달 26일 강원 철원군에 위치한 승리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 일대가 짙푸
른 녹음으로 생기를 더하고 있다. 육군15사단 GOP 경계병들이 철책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만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리고 중간지점이 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DMZ 155마일’에도 중간지점이 있다. 하지만 자연에게 이러한 상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동서로 이어지는 ‘DMZ 수풀’은 분단선의 정중앙에도 변함이 없다. 철책도 마찬가지다. 다만 사람들만이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 감성에 젖는다. 화천·철원 지역의 DMZ는 어제와 같은 오늘이 계속된다. 내일 역시 오늘과 같은 하루가 이어진다.

 

   DMZ의 정중앙 ‘승리전망대’

 

 육군15사단 담당 구역의 ‘승리전망대’는 DMZ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상으로 철원에 위치한 전망대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이나 표지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DMZ의 정중앙이란 의미는 ‘동고서저’란 한반도 지형 변화를 통해 추론할 뿐이다. 승리전망대에서 바라본 북쪽은 지금까지의 여느 지점과 다르다. 고산(?)이 보이지 않는다. 눈앞엔 비교적 너른 평야와 낮은 구릉이 펼쳐진다. 마치 고층아파트촌을 벗어나 외곽 임야로 나왔을 때와 같은 시각적 상쾌함을 준다.

 

  ‘승리전망대’에서 북을 바라보면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한 줄기 강이 보인다. ‘화강’이다. 예전엔 ‘남대천’으로 불렸다. 북에서 부르는 명칭이다. 하지만 2009년 강원 철원군에서 이름을 변경했다. 주변에 꽃이 만발한다는 의미에서 ‘화강(花江)’이란 이름을 줬다. 하지만 이 예쁜 이름에도 불구하고 강은 비극을 담고 흐른다. 6·25 전쟁 당시에는 치열한 전투로 온 강이 피로 물들었다. 5월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은 평화롭지만 전쟁의 슬픔과 아픔을 담고 있다.

 강 옆에는 예전 남북을 오갔던 전기철도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이 철로와 연결된 북쪽 구릉 저편에는 ‘아침리 마을’이 보인다. 서울에서 약 70㎞ 거리의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금강산을 찾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하면 아침을 먹고 편하게 관광을 즐길 수 있는 장소란 의미에서 ‘아침리 마을’이라 불렸다고 한다.

 

   수색장병, 중대가 부르며 완전작전 기원

 

 비무장지대(DMZ)는 평화와 긴장의 공간이다. ‘비무장’이란 단어가 상징하듯 절대평화가 보장된 지역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남과 북의 철책 사이로 중무장 병력이 대치하며 항상 긴장이 흐른다. 그 긴장의 정점에는 수색대원들이 있다.

 

 매일 수색과 매복이라는 DMZ작전을 수행하는 대원들이다. 때로는 적과 직접 대치할 수도 있는 만큼 임무는 생명을 담보로 한다. DMZ의 통문이 열리면 분단의 무게를 짊어지고 평화라는 ‘역설의 지대’로 들어선다. 

DMZ수색작전은 그 준비 과정부터 긴장 속에서 시작한다. 중대 연병장 사열대 앞에서 약 30분간 진행하는 군장검사는 말 그대로 실전이다. 투입 장병들은 중대장의 지도 아래 실탄과 구비장비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점검한다. 수색대원들은 복장도 경계병과 달리 중무장이다. 

 경계복장에 약 3㎏의 방탄조끼, 거기에 더해 수통과 탄창 등을 넣을 수 있는 침투조끼를 착용한다. 이 같은 중무장(?)에 여름은 더욱 힘든 계절이 된다. 그렇다고 겨울이 쉬운 것도 아니다. 기민한 움직임을 위해 철책 경계병과 같이 두꺼운 방한외피(스키파카)를 착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5월 말 찾은 육군15사단 수색대대. 투입요원들의 당일 임무는 수색로 개척이었다. 세월과 함께 사라진 옛 수색로와 새로운 길을 만드는 임무라 했다. 이 때문에 수색대원들 외에 또 다른 요원들이 추가됐다. 

바로 공병대대 지뢰탐지요원들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군장검사 후 통문을 향해 출발하는 순간이다. 출발길에 수색대원들이 모두 나와 양옆으로 정렬한다. 대원들은 우렁차게 중대가를 부르며 트럭을 타고 출발하는 투입장병들을 격려한다. 완전작전의 염원을 담은 중대가다. 오늘 부르는 중대가는 내일도 이어질 것이다. 


통문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 험하다. 굽이굽이 이어진 1차선 전술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부대 관계자는 “겨울에 눈이 내리면 트럭이 급경사를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투입 장병들 모두가 하차해 약 한시간에 걸쳐 통문까지 걸어 올라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통문 절차는 간단하지 않다. 

수색팀장이 GOP대대에 임무와 인원 등을 보고하고 투입요원 개개인이 서명한 출입일지를 작성하면 인근 소초의 통문요원이 도착한다. 통문요원이 다시 인원을 확인해 보고 후 승인이 나야 드디어 문을 개방한다. 



DMZ작전은 쉽지 않다. 수많은 상황이 발생한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은 상황 매뉴얼이다. 수색대대 관계자는 “최근 수색 중 북한군 GP 인접 지역에서 북한군이 소리를 지르고 타종하며 인원을 증강해 긴장했다”며 “하지만 매뉴얼에 따라 상급부대에 보고한 후 지침에 따라 대처했다”고 말했다. 

마침내 육중한 통문이 열렸다. 아무나 갈 수 없는 땅, 비무장지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힘차게 걸어가는 장병들. 수색대원들에게 ‘DMZ 완전작전’이란 가볍지 않은 용어는 잠시 접어둔다. 무사귀환을 바라며 분단의 종식을 기대할 뿐이다.

 

 

   다문화 병사와 신혼여행을 연기한 부사관

 

   DMZ에는 삶이 있다. 각양각색의 장병들이 ‘조국수호’란 동일 의무를 수행하며 최전방의 스토리를 만든다. ‘승리전망대’에서 브리핑병으로 임무수행 중인 안요환(22) 일병. GOP부대 화기중대의 안 일병은 어머니가 필리핀 출신인 다문화가정 병사다. 지난달 4일 투입된 안 일병은 승리전망대에서 관광객들에게 분단의 현실을 전한다. 부대에선 81㎜ 박격포를 담당한다.

                                                   

안요환 일병
안요환 일병



 모든 GOP부대 장병들이 그렇듯 안 일병도 GOP 투입 후 분단의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비록 경계는 서지 않지만 브리핑을 통해 허리 잘린 조국의 상황을 알려줄 때 보람을 느낀다. 

 안 일병은 하루 평균 10번 정도를 승리전망대에 선다. 적을 땐 다섯 번 정도지만 많을 땐 그 횟수가 30번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주말엔 더욱 바빠진다. 그래도 힘들지 않다. 자신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관광객들을 볼 때마다 더욱 힘이 솟는다. 안 일병은 “가끔 통화할 때마다 어머니가 걱정하시기도 하지만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안심시켜드린다”며 “분단의 철책을 볼 때마다 6·25 전쟁 당시 피 흘린 선배 전우들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중 중사
최근중 중사

 

 

 최근 과학화경계시스템으로 교체되고 있는 철책에는 을지연대의 최근중(중사) 통신부소대장의 애환(?)도 담겨 있다. 최 중사는 본임무인 통신업무 이외에도 과학화경계시스템을 담당한다. 과학화경계시스템 설치 과정을 확인하고 제한사항 발생 시 현장조치, 일부 고장 정비 등을 처리한다. 최 중사는 지난해 11월 같은 부대에서 만난 인생의 반려자와 평생가약을 맺었다.


 하지만 과학화경계시스템 설치라는 중대한 임무 때문에 인생에 한 번 있는 신혼여행을 연기했다. 아쉽고 아내의 원망이 마음에 걸리지만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최 중사는 “전방이 안전해야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과학화경계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며 “시스템 설치 업무가 완료되면 미뤘던 신혼여행을 갈 것”이라며 웃었다.

이영선 기자 < ys119@dema.mil.kr >
사진 < 조용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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