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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병영칼럼] 협상가가 필요한 군대

입력 2015. 06. 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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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당국은 병영 내 폭력이나 성추행을 근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잘못된 병영문화의 여러 유형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지휘관 만능주의’나 ‘선임병 우월주의’ 등은 왜곡된 병영문화를 만드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지휘관 만능주의’는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 이상의 병력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전투력 향상을 위해 부하들을 관리하는 선을 넘어 부하들의 감정까지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이는 부대 지휘관으로서 부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파악하고 부대를 장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다. 지휘관 스스로는 부하들을 격려하기 위해 했다고 한 행위가 부하에게는 분노나 수치심과 같은 역작용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선임병 우월주의’는 병사들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병폐로 심한 경우 후임병을 죽음으로 이끌기까지 한다. 지휘관 만능주의나 선임병 우월주의의 대표적인 공통점은 “내 말은 무조건 들어” “무조건 나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소위 권위주의적 발상으로 중간이 없는 흑백논리다. 또 부하나 후임병과의 갈등을 소리 지르기나 폭력을 동반한 조폭식 행동으로 해결 방법을 찾는 경향이 많다. 몰라서 하는 질문조차 말대꾸로 간주하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병영문화에 역행하는 행위들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군 병영문화를 흐리는 비합리적 행동들이다.

 군대는 전쟁을 준비하고 치러야 하는 조직으로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민간 조직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그렇더라도 훌륭한 지휘관은 부대원 간 또는 상하 갈등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협상가여야 한다. 모범적인 선임병으로도 능력 있는 협상가가 필요하다. 갈등 상황이 생기면 감정적 선택보다는 대화를 통한 이성적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선임병들은 부대원 상호 인식의 차이를 파악하고 확인한 후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 요즘 세대 병사들은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져 있다. 병영 생활관도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평소 이런 분위기가 확립돼 있으면 부대원간 최종 합의사항에는 모두가 자발적으로 책임지는 규율이 마련될 수 있다. 실제 전투상황에서도 이런 문화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관계(Relation)와 역할(Role)을 분리해 접근하는 방식도 합리적인 병영생활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선임병과 후임병은 입대 순으로 맺어진 관계지만, 선임병이 시키는 일을 후임병이 무조건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병영생활관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선임병이 상하관계를 앞세워 후임병의 감정까지 통제하고 불합리한 역할을 강제하면서 벌어지는 사례가 대다수다.

 이제는 선임병의 “까라면 까” 말 한마디에 무조건 따르는 시대가 아니라 병사 스스로가 납득한 후 자발적으로 ‘까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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