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기획 > 군과 사람 > 조직의 책사

공장 청소부에서 품질명장으로…“목숨 걸고 하면 안 되는 것 없다”

기사입력 2015. 05. 25   15:23

<15> 김 규 환 한국 무동력 대체에너지개발연구소장

제안 2만4000건·해외특허 65개·5개 국어 마스터·인기강사…

공장 청소부로 시작, 노력 거듭해 기능공·공장장으로 승진

정밀기계 선진국도 밝혀내지 못한 비법 밝혀 명장으로 선정

 

 

 

 


 

 

 

 

   김규환(59) 한국 무동력 대체에너지개발연구소장은 공장 청소부에서 시작해 대한민국 1호 품질명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무려 2만4000건의 제안, 해외특허 65개, 5개 국어 마스터, 글로벌 기업에서 찾는 인기 강사…. 그의 삶을 되짚어보면 한 철 피고 마는 꽃이 아니라 매서운 추위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솔잎의 은은한 향이 난다. 절망과 상처의 쓰라림을 희망으로 승화시킨 사람, 땀의 결정으로 보석을 빚어낸 사람, 매 순간 생동하는 그의 삶은 늘 펄떡인다.

 

 

    소년! 기능보조공이 되다

 강원도 평창 산골에서 자란 김규환. 그는 동생을 낳다가 중병에 걸린 어머니의 약값을 벌려고 무작정 상경했다. 청계천의 기계공장에 취직했는데 어느 날 ‘모친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았다. 집으로 간 그는 온몸에 물이 차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아버지는 탄광으로, 규환은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대구의 공장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규환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이에 돌아가셨다. 그의 나이 열세 살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시장에 가서 쥐약을 샀어요. 그런데 오빠가 이상하다고 느낀 여동생이 엉엉 울더라고요. 생각을 고쳐먹었죠. 어린 여동생 때문에라도 살아야겠다고.”

 그때 벽지 대신 도배지로 발라놓았던 신문지의 ‘대우 가족을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동생을 업고 경상남도 창원으로 달려갔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했던가. 종이에 이력서라 쓰고 그동안 일한 곳을 적어 수위한테 보여줬더니 막 화를 냈다. 때마침 출근하던 본부장이 “무슨 일인가?”라고 물었다. 사정을 들은 본부장은 공장 청소부로 취직을 시켜주었다. 규환은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서 공장을 청소하고 노는 땅에 꽃과 채소를 심어 가꿨다. 부지런함은 기회를 불러왔다. 그는 일 년 만에 기능보조공이 됐다.



   “일인자가 되고야 말겠어!”

 억센 경상도 사투리의 무뚝뚝한 선배들은 무서웠다. K선배는 퇴근하면서 “오늘 기계 목욕 단디 시키가 기름때 쪽 빼라. 알았나?”라고 했다. 김규환은 세제를 풀어서 거품을 내고 빡빡 문질러서 번쩍번쩍 광이 나도록 기계를 닦았다. 그런데 기계가 잘 작동하는지 보려고 스위치를 켰는데 거품이 계속 새어 나왔다. 날은 점점 밝아오고 선배들 출근 시간은 다가오는데 미칠 지경이었다.

 “설명서를 찾아보니 ‘물기 절대 유입금지’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뒤로 나자빠질 뻔했어요. 다시 분해해서 거품을 닦고 조립을 하니까 그제야 선배들이 출근하더라고요.”

 그렇게 몇 달을 야간에 홀로 남아서 기계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하니 기계와 친숙해져 갔다.

김규환은 6개월 만에 ‘보조공’을 떼어내고 정식 기능공이 됐다. 새롭게 배치받은 곳은 ‘초정밀 기계 연삭장’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번쩍번쩍 빛나는 은색 기계들을 보니 황홀하더라고요. ‘아! 여기다. 여기서 아무도 못 따라오는 일인자가 되겠다’라고 혼자 다짐을 했었죠.”


   안 되면 되게 하라 

 어느 날 그는 동료들과 일본에서 수입하던 ‘롱 스크루’를 자체 개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오랜 연구 끝에 자체 개발에 성공했지만, 전부 불량 판정을 받았다. 자존심이 상한 김규환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재연구에 들어갔다.

 문제는 롱 스크루를 가공하기 위해 양쪽에 고정하던 베어링 때문에 생기는 자국이었다. 고정하던 힘을 줄이면 긁힘이 덜하지 않을까 싶어 롱 스크루를 약하게 고정하고 회전 스위치를 켜는 순간 각종 부품이 날아와 김규환의 머리를 때렸다. 그는 쓰러졌다. 일어나니 병원이었고 다행히 크게 다친 것은 아니어서 상처 부위를 꿰맸다. 의사가 말렸지만 그는 병원을 나와 공장으로 갔다. 그리고 또 실험. 그때 선배가 TV에서 보았던 물레방아를 말했다. 큰 물레방아가 부드럽게 도는 건 중심에 반지 같은 부싱이 있기 때문이었다. 롱 스크루에 부싱을 끼우고 고속회전을 시켜봤다. 자국이 생기지 않았다. 선배들과 얼싸안은 김규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가슴에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정밀 가공온도 보정표로 세계를 정복하다

 정밀기계 가공품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한다. 특히 김규환이 가공하는 ‘메인 스핀들’은 기계장치의 주축으로서 가공 오차범위가 1만분의 1일 정도로 고난도의 정밀기술을 필요로 했다. ‘전 세계에서 일본밖에 생산하지 못한다고?’ 김규환의 오기가 발동했다.

 “모두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메인 스핀들을 가공하는데, 다 만들고 조금만 지나면 치수가 자꾸 변해 두 개를 망가뜨렸습니다. 한 개가 350만 원이니까 750만 원을 날린 거예요. 당시에 아파트 한 채 값보다 비싼 금액이다 보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죠.”

 회사에는 일단 비밀로 했다. 제작기술만 알아낸다면 용서해주리라 믿었다. 문제는 가공 온도에 따라서 메인 스핀들의 치수가 들쭉날쭉 변했다. 온도에 따른 금속의 변화도를 과학적 수치로 밝혀낸다면 메인 스핀들뿐만 아니라 다른 수입 부품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정밀기계 선진국인 일본과 독일도 아직 못 밝혀낸 비법이다. 단지 일본은 메인 스핀들의 제작 노하우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결단을 내렸다.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이해를 구했습니다. 변상하면 집을 팔아도 모자란다고 했어요. 그렇게 집을 나왔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실험하다가 기계 옆에서 잠을 잤다. 한 달이 지나니 사람들이 “쓰레기 냄새 나니까 옆에 오지도 마라”고 했다. 하지만 몇 달 만에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섭씨 20도보다 높게 가공하면 치수가 줄어들고, 낮게 가공하면 치수가 늘어나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금속마다 치수 변화가 달랐어요. 하면 할수록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모든 종류의 금속을 갖다놓고 그 크기와 부위별로 1도씩 온도 변화를 주면서 1㎜ 단위의 치수 변화를 실험했습니다.”

 그렇게 2년6개월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정밀가공을 위한 온도치수 보정표’를 완성했다. 대우중공업 사장과 임원진을 모시고 현장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건 정밀기계 분야의 혁명입니다. 혁명! 선진국의 수많은 연구자가 못 해낸 일을 대우중공업 기능공 김규환 씨가 해냈어요”

 정부는 김규환의 공적을 인정해 ‘대한민국 1호 품질명장’에 선정했다. 그리고 청소부로 입사한 김규환은 공장장이 되었다. 현재 그는 ‘무동력 대체에너지 특허등록’을 하고 우리나라의 미래 에너지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도 제안에 목숨을 건 사람, 그는 말한다.

 “형편 탓할 필요 없습니다.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으니까요.”

 

   김 정 진 상사·교육학 박사/육군1방공여단 무기정비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에 대한 의견 개 있습니다. 로그인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