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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때 북군 ‘바다 주도권’ 잡는 전기로

입력 2015. 05. 1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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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의 ‘앨라배마호와 키어세이지호의 전투’(1864)


가라앉는 앨라배마호의 긴박한 분위기 ‘생생 묘사’

인상주의적 화법…침몰 순간 시각적 효과 극대화

키어세이지호, 프랑스 셰르부르 해안서 역사적 승리

 

 


 

 

 “바다를 지배한 자, 세계를 지배한다.”

 테미토스클레스의 이 말을 되뇌지 않더라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할 때, 바다는 국가전략의 핵심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대륙과 연결된 북쪽이 가로막힌 상황에서 바다와 하늘이 우리의 살길임은 자명해진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다를 장악하지 못한 세력이 승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쟁 천재 나폴레옹도 바다를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영국이나 미국의 패권은 압도적인 해양전력에 기반한 것이다.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도 예외가 아니다. 대륙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동부 해안과 대서양 전역에서는 해전이 벌어졌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해군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대규모 해전은 많지 않았지만, 바다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게 전개됐다.

 

● 셰르부르에서 벌어진 남북전쟁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Eduard Manet, 1832~1883)가 그린 ‘앨라배마호와 키어세이지호의 전투’는 프랑스 셰르부르 해안에서 벌어진 미국 남북 해군 간의 독특한 해전을 다룬 작품이다. 당시 북부의 상선을 기습하며 악명을 떨치고 있던 남군의 앨라배마호(CSS Alabama)와 이를 추격하던 북군의 키어세이지호(USS Kearsage)가 대서양 너머 프랑스 셰르부르 해안에서 벌인 전투를 묘사한 것이다.

 앨라배마호는 돛을 달고 있지만 증기엔진을 장착하고 6대의 대포를 장착한 최신예 순양함이었다.

1862년 영국의 한 조선소에서 건조했지만 미국 내전에 연루되는 것을 주저했던 영국 정부가 억류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그러나 극적으로 출항한 앨라배마호는 작전에 투입된 2년 동안 신출귀몰하며 북군을 괴롭혔다. 앨라배마호는 ‘심해의 늑대(Wolf of the Deep)’라 불릴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미국 동부해안과 대서양을 넘나들면서 수십 척의 상선을 공격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등 사실상 해적질에 가까운 활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북군에서는 앨라배마호 추적 임무를 키어세이지호에 내렸다. 같은 증기전함으로 달그렌(Dahlgren) 대포와 철갑 선체를 자랑하는 최신 전함이었다. 키어세이지호는 은밀히 움직이는 앨라배마호를 번번이 놓쳤지만 1864년 6월 14일 결국 꼬리를 잡았다. 정비와 보급을 위해 중립 지역인 프랑스 셰르부르항에 들어와 있는 앨라배마호를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키어세이지호는 다른 전함에 지원을 요청하고 항구를 봉쇄했다.



 ● 달그렌 대포의 위력

 도망갈 곳이 없는 앨라배마호가 결전을 결심하고 항구를 나선 것이 6월 19일이었다. 더 지체했다가는 북군의 지원함이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투는 독특하게 1대1 함포사격으로 전개됐다.

전함전투에서 요체는 함포가 집중돼 있는 자신의 측면을 상대의 선수나 후미에 맞춤으로써 화력의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증기엔진 채택으로 기동력은 크게 증대됐고, 대포의 사정거리도 크게 늘어났다. 그렇다 보니 두 전함이 큰 원을 그리며 서로의 꽁무니를 잡으려고 선회하는 모습이 됐다. 일곱 바퀴나 돌면서 수백 발의 함포사격을 주고받으며 1시간여 전투가 계속됐다.

 함포사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움직이는 전함을 수백m 거리에서 맞히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것도 상대방 배의 흘수선 아래를 적중시켜야 침몰시킬 수 있다. 전투 초기 북군의 키어세이지호가 먼저 두 방을 맞았지만 치명적이지 않았다. 배 측면에 철갑을 댄 것이 효과를 보았다. 오히려 키어세이지호에 장착된 달그렌 대포가 위력을 발휘했다. 포격의 안전성과 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포 후미를 넓고 둥글게 만든 달그렌 대포의 166파운드 포탄 몇 발이 앨라배마호에 명중하면서 승부는 판가름 났다. 증기엔진이 파괴되고 배 안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앨라배마호는 침몰하기 시작했다. 증기전함의 첫 번째 침몰이었다.

 마네는 인상주의(impressionism) 화파의 선구자답게 결정적 순간을 매우 인상적으로 그렸다. 그림 중앙에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침몰하고 있는 전함이 앨라배마호다.

앨라배마호는 선체 후미에 큰 구멍이 나면서 침몰하기 시작하자 백기를 걸고 투항했다. 그림 오른쪽 위에 그려진 키어세이지호는 포격을 멈추고 구명보트를 내보내 선원들의 탈출을 도왔다. 전면 왼쪽에는 바다로 뛰어든 선원들을 구하기 위해 급히 구명정을 달고 앨라배마호로 달려가고 있는 프랑스 돛배가 그려져 있다.

 앨라배마호 뒤편으로 살짝 보이는 배는 인근에 있던 영국 국적의 요트다. 앨라배마호 함장과 일부 선원들은 이 배를 타고 영국으로 탈출했다. 당시 키어세이지호의 선원들은 포격을 주장했지만 함장은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 두 전함의 함장은 내전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미국 해군에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이었다. 전투가 끝난 상황에서 도망가는 옛 전우를 굳이 죽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 침몰과 구조의 긴박함

 그림은 바로 이 순간의 인상을 파격적인 구도로 그렸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간적인 인상과 움직임을 중시했기 때문에 세부 묘사를 신경 쓰지 않았다. 거칠고 짧은 붓질을 통해 앨라배마호가 침몰하는 상황을 보여주고자 했다. 파도로 넘실대는 바다는 청록색과 푸른색, 그리고 회색의 짧고 굵은 붓질로 그 거?과 역동성을 나타냈다.

 구도 또한 파격적이다. 마네는 침몰과 구조라는 극적인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그림의 4분의 3을 바다로 그렸다. 검은 연기에 휩싸여 꽁무니부터 가라앉고 있는 앨라배마호는 수평적인 바다와 대비를 이루면서 긴박한 상황을 실감하게 만든다.

여기에 거의 직각으로 접근하는 구조선은 화면의 시선을 왼쪽 앞에서 중앙 뒤편으로 이끌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바다에 뛰어든 선원들은 구조선으로 다가가고 있지만 쉬워 보이지 않는다.

구조선의 밝고 큰 사각 돛은 다른 것들과 부조화를 이루며 상황의 긴박함을 더해주고 있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서 구조의 다급함을 인상주의적 화법으로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전투는 셰르부르 해안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수백만 프랑스 시민들이 전투 상황을 관찰했다.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급히 구조선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상황에서 가능했다. 마네는 이 상황을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신문 기사를 보고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그렸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마치 실제로 본 것 같은 인상을 받는 것은 그 상황의 긴박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 사물의 움직임을 영원히 정지시키는 것이라면,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 순간의 움직임과 인상을 느끼도록 했다. 인상주의 그림이 생동감이 넘치고, 그래서 더욱 사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전투가 남북전쟁의 승패를 가름할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작은 승리가 북군이 바다의 주도권을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북부 상선과 전함 65척을 불태운 앨라배마호의 신화가 존재하는 한 북군의 주도권은 인정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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