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조직의 책사

기발한 ‘괴짜 제안’ 괴산을 춤추게 하다

입력 2015. 05. 1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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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임 각 수 괴산군수


34세에 공직 첫발 … 고위공무원직 버리고 괴산군수에 도전

산막이 옛길 복원·산골 염전 등 역발상으로 지역경제 살려

 

 


 

 

   34세의 늦깎이 공무원

 20대 행정고시 준비생이었던 임각수(현재 68세)에게는 꿈이 있었다. 고향인 충청북도 괴산에서 군수가 되는 것이었다.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을 불살랐다. 그러나 매번 아쉽게도 불합격! 이미 그의 나이 서른네 살이었다. 기혼자였던 임각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눈높이를 낮춰 7급 시험에 응시해 합격한 그는 농림수산부 산하의 속초출장소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한계령을 넘어가는 길, 흔들리는 차창 밖 풍경이 자신의 꿈처럼 아득해 보였다.



   꿈을 제안하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속초 생활은 힘들었지만, 늦깎이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만큼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2년 만에 홍천출장소로 발령이 난 그는 얼마 후 승부수를 띄웠다. 농림수산부의 인사를 총괄하는 총무과장에게 면담을 신청하고 전략을 세웠다. 그동안 속초와 홍천에서 생활하며 체득한 업무개선 제안들을 일목요연하게 브리핑했다.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총무과장은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고 싶나?”라고 물었다. 임각수는 인재들이 모이는 기획관리실을 지원했고, 거짓말처럼 3주 뒤 발령이 났다.

 그러나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임각수는 꼼수를 부리지 않고 정수를 선택했다.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성실성과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공무원의 꽃’이라 불리는 사무관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안주할 수 없었다. 매일 별을 보며 출근하고 별을 보며 퇴근한 그는 어느새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하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국장 보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꿈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2006년 무소속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해 괴산군수로 당선됐고 이후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제주도 ‘올레길’을 제친 괴산 ‘산막이 옛길’

 군수가 된 임각수의 첫 도전은 ‘인구를 늘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란 것은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괴산의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깊은 상념에 빠진 그는 어린 시절 놀이터처럼 뛰어다녔던 산막이 옛길을 찾았다. 이제는 아무도 다니지 않아 산짐승 발자국만 어지러웠다. 산길을 올라가니 괴산댐이 한눈에 보이면서 천하의 절경이 펼쳐졌다. 순간 산막이 옛길을 복원해 괴산의 명소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저기는 옛날에 호랑이가 사는 곳이라고 해서 호랑이 굴이었지? 맞아! 저기는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여우 굴이고 앉은뱅이 샘물도 그대로구나.’

 그는 산막이 옛길에 스토리를 입혔다. 그러나 환경단체가 반대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갈등 현장을 취재하러 왔던 방송국은 산막이 옛길에 매료됐다. 본래 의도와 다르게 ‘미리 가본 산막이 옛길’이 방영되면서 사람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2013년 괴산 산막이 옛길은 140만 명이 찾아 올레길을 제치고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됐다. 얼마 전까지 잡풀로 우거져 앞이 보이지 않던 산막이 옛길에서 임각수는 괴산의 앞날을 보았다. 그의 상상은 제안이 됐고, 산막이 옛길은 괴산군민들에게 풍요의 길이 됐다.



   산골에 염전과 수산시장을 만든다고?

 괴산에서는 김장용 배추를 미리 절여서 판매하는 절임배추가 인기다. 문제는 배추를 절이고 남은 소금물. 소금물 운반비용만 수억 원이고 막대한 환경오염까지 일으켰다. 임각수는 꾀를 내었다. 바로 산골 속 염전이다. 비닐하우스에 작은 염전을 만들어 배추를 절이고 남은 소금물을 말렸다.

 물은 증발하고 소금만 남아 운반비용 수억 원이 절감됐다. 만들어진 소금은 겨울철 제설작업용으로 쓰고 학교 운동장에도 뿌려주었다. 하얗게 빛나는 소금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임각수는 소금 테마공원을 떠올렸다. 육지에서 염전을 체험하고 소금을 이용한 생태 놀이터를 주요 테마로 삼았다. 그는 아이디어를 꽃피웠다.

 ‘안동은 육지지만 간고등어가 유명해. 고등어를 가져와 가공만 하는 거지. 괴산에 생선을 가져와 직접 판매하는 수산시장을 만든다면 어떨까?’

 동해와 서해 중간인 이곳에 생선을 가져오면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임각수는 제안서를 작성해 정부에 제출하고 217억 원의 사업비를 받았다. 2016년에 완공되면 바다가 아니라 첩첩산중인 괴산으로 회를 먹으러 가는 진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유쾌한 유언장 쓰기 운동 전개

 지방자치단체장 능력은 정부와 기업의 사업 유치로 판가름 난다. 그것이 곧 지역 일자리 창출과 세수 증가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업 유치의 현장은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다. 그러나 승자독식! 유치하는 사람만이 능력을 인정받는다.

 때때로 유치를 해도 시민들의 반대로 그동안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임각수는 다른 지역에서 시민들의 반대로 포기한 사업을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설득해 괴산으로 유치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육군특수전사령부의 낙하산 훈련장 유치가 그런 경우다. 낙하산 훈련장은 이미 인근 군에서 유치했지만 그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때 이 소식을 들은 임각수는 무릎을 쳤다. 낙하산 훈련장은 3만 평의 잔디밭이 필요하고 훈련은 한 달에 한 번이다. 훈련이 끝나면 산악자전거, 승마, 패러글라이딩 활강장으로 운영하면서 레저스포츠 단지로 개발하자고 주민들에게 제안했고, 주민들은 손뼉을 쳤다.

 임각수의 괴산 살리기에는 눈물겨운 정성이 있고 아이디어가 있다. 2014년 8월, 그는 여러 사람 앞에서 유언장을 썼다. ‘자신의 장례식은 꼭 괴산에서 치러 달라’고 말이다. 이유는 괴산에서 장례식을 치르면 조문객들이 괴산을 찾을 것이고 오고 가며 식당에도 들르고 자연스럽게 괴산 홍보로 이어진다는 생각에서다. 지금 괴산군에서는 유쾌한 유언장 쓰기 운동이 번지고 있다. 그의 기발한 역발상이 괴산을 먹여 살리고 춤추게 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34세의 늦은 나이에 공직에 첫발을 내딛고 역발상이 없으면 2등밖에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늘 판에 박힌 일을 바꾸는 제안을 하고,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안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김 정 진 상사·교육학 박사  육군1방공여단 무기정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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