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DMZ동서횡단 냉전을 넘어 희망을 보다

[연중기획_DMZ 동서횡단, 냉전을 넘어 희망을 보다]③ 강원 양구

이영선

입력 2015. 05. 12   18:27
업데이트 2023. 08. 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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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21사단, DMZ 최고도 전선을 가다


남북을 가른 녹슨 철책에도 봄 내음은 전달된다. 다만 그 속도가 더딜 뿐이다. 중동부전선은 DMZ 155마일 중 최고도 구간을 자랑한다. 육군21사단이 담당하는 중부전선엔 4월 하순에도 거센 눈보라가 몰아쳤다. 하지만 이 눈발도 계절의 흐름을 막을 순 없었다. 방문한 4월 막바지엔 이름 모를 새싹들이 회색 세상에 연두색을 덧칠하고 있었다. 한층 따스해진 햇살은 철책의 냉기를 녹이고 있었다. 바람과 하늘, 그리고 병사들의 얼굴엔 봄의 표정이 완연했다. 

 

가칠봉 중대 GOP장병들이 진달래가 만개한 가운데 철책 점검을 하고 있다.
가칠봉 중대 GOP장병들이 진달래가 만개한 가운데 철책 점검을 하고 있다.

 

  분홍빛으로 시작하는 DMZ 봄의 색채

 DMZ 고지의 봄은 분홍빛으로 시작된다. 고지를 향해 돌진하던 녹음은 4월 하순에도 산 중턱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산 중턱 이후 정상까지는 여전히 거친 회색의 외투다. 간간이 푸른 들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고지에서는 새잎을 틔운 나무들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진달래는 다르다. 녹음을 대신해 고지를 야금야금 정복하고 있었다. 4월 삭풍과 냉기를 뚫고 때로는 홀로, 때로는 군집을 이뤄 분홍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봄의 시작은 DMZ 장병들에게도 활력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경계작전에 버금가는 제설작전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육군21사단 ○○소초의 한 병사는 “눈이 오면 경계작전 투입 대원을 제외하곤 전원이 제설작업에 동원된다”며 “눈이 멈추고 제설작업이 없다는 것은 휴식 시간이 그만큼 확보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협소한 공간에서 여럿이 함께 즐기기에 족구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 가끔 의욕이 너무 앞서 공을 철책 너머 산 아래로 차버리지 않는다면. 장병들이 철책 밖으로 넘어간 공의 위치를 쫓고 있다.
협소한 공간에서 여럿이 함께 즐기기에 족구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 가끔 의욕이 너무 앞서 공을 철책 너머 산 아래로 차버리지 않는다면. 장병들이 철책 밖으로 넘어간 공의 위치를 쫓고 있다.

 
봄이 부르는 또 다른 변화는 소초원들의 활동 반경 확대다. 겨우내 주로 소초 안에서 이뤄지던 활동이 외부로 확장된다. 일일체력단련시간 역시 외부 활동이 잦아진다. 소초 옆 작은 족구장의 네트가 다시 경기장을 둘로 나눈다. 전술도로를 향해 뜀걸음을 한다. 순찰로 보강 공사도 봄의 단골 초대 손님이다. 

겨우내 이동하기 힘들었던 중장비가 올라와 결빙과 해빙을 거듭하며 무너진 경사로를 다진다. 육군이 진행하는 민통선이북지역(민북지역) 산림복원 공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육군에 의하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민북산림복원 공사를 통해 복원된 면적은 137.2헥타르(ha)에 이른다. 


능선에 따라 펼쳐진 가림막

 육군21사단 담당 구역은 DMZ 최장, 최고도 구간을 자랑한다. 많은 보급로(전술도로)가 험로이지만 정상 능선을 따라 이어진 구간도 많은 편이다. 이 능선 보급로는 상대적으로 편안한 여정을 보장한다. 하지만 산 정상의 능선인 만큼 적의 시야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능선을 따라 설치된 폐전투복 가림막
능선을 따라 설치된 폐전투복 가림막


이 때문에 이 구간에는 타 부대에서 찾을 수 없는 이색 설치물이 있다. 바로 북쪽의 시야를 가리는 가림막이다. 이 가림막은 차량 노출을 막는 효과적 수단이다. 북에서 보면 남쪽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가림막은 간단한 아이디어로 최대의 효과를 내도록 고안됐다. 약 2m 높이의 기둥에 6~7개의 줄을 매달고 줄마다 폐전투복을 활용한 헝겊을 겹겹이 붙였다. 
                                     

가칠봉 중대로 가는 보급로. 절벽길이 위태롭지만 연대 수송대는 철저한 안전교육을 통해 무사고 2000일을 기록했다.
가칠봉 중대로 가는 보급로. 절벽길이 위태롭지만 연대 수송대는 철저한 안전교육을 통해 무사고 2000일을 기록했다.

얼핏 보면 예전 성황당 나무에 걸린 천들이 연상된다. 다만 형형색색인 성황당 나무의 천들과 달리 얼룩무늬 헝겊들은 이곳이 냉전 지역임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가림막 구간이 무려 약 1㎞에 달한다. 분명 색다른 풍경이지만 현실은 성황당과 같은 낭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부대 관계자는 “능선 보급로는 적의 직접 사정 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가림막이 운행 차량 은폐에 필수적”이라며 “가림막 천이 낡아 떨어지면 보수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 ‘가칠봉’

 중동부전선 최고도 구간의 정점에는 해발 1242m의 가칠봉이 있다. 육군21사단 가칠봉중대가 빈틈없는 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지역이다. 일반적으로 금강산은 모두 북한에 위치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가 지키고 있는 가칠봉도 엄연한 금강산의 일부다. 북측의 쌍봉·운봉·매봉·첩봉·처녀봉·문필봉에 마지막 가칠봉이 더해져 금강산 1만2000봉이 완성된다.

 가칠봉(加七峰)이란 명칭은 금강산의 마지막 7번째 봉우리를 더한다는 의미다. 금강산의 끝자락인 만큼 풍광은 절경이다. 날이 좋으면 설악산부터 금강산까지 시야가 확보된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중대 전망대에선 김일성고지와 모택동(매봉)고지, 스탈린(운봉) 고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중대 관계자는 “세 고지는 6·25전쟁 당시 선배 전우들이 고지 탈환의 전의를 불태우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며 “우리 중대원들도 선배 전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경계태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칠봉 중대로 가는 보급로. 절벽길이 위태롭지만 연대 수송대는 철저한 안전교육을 통해 무사고 2000일을 기록했다.
가칠봉 중대로 가는 보급로. 절벽길이 위태롭지만 연대 수송대는 철저한 안전교육을 통해 무사고 2000일을 기록했다.


 가칠봉 중대는 하늘 아래 첫 GOP 중대다. 중대는 능선의 보급로를 따라가다 낙석 위험이 있는 절벽길을 지나야만 입구에 다다른다. 아래쪽은 낭떠러지이고 폭우가 쏟아지면 금방이라도 토사가 무너질 듯한 위태로운 길이다. 그럼에도 차량 사고는 제로(Zero)를 지향한다. 동행한 사단 관계자는 “철저한 교육으로 연대 수송대는 3월 31일을 기준으로 2000일 무사고를 기록했다”고 자랑했다.


중대 건물은 과거 진지 형태인 벙커형으로 지하생활이 가능하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침상형 생활관과 체력단련실, 샤워실, 세탁실 등이 배치돼 있다. 지하 생활의 장점은 겨울엔 보온, 여름철엔 냉방이 탁월하다는 것. 올겨울에도 감기 환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과거 진지로 사용됐던 지하돔형 생활관에서 지내야 하는 가칠봉중대 장병들의 생활은 다른 곳보다 다르다. 그러나 고락을 함께했기에 병사들 얼굴에는 구김이 없다.
과거 진지로 사용됐던 지하돔형 생활관에서 지내야 하는 가칠봉중대 장병들의 생활은 다른 곳보다 다르다. 그러나 고락을 함께했기에 병사들 얼굴에는 구김이 없다.


 중대에는 ‘석중석’이란 또 다른 부대 자랑거리가 있다. 부대가 랜드마크로 사용하는 ‘석중석’은 말 그대로 돌이 박힌 바위. 약 1.4m 높이의 바위 윗부분에 가로 15㎝ 세로 10㎝ 크기의 작은 돌이 박혀 있다. 부대에 의하면 수석 감정가들이 감정한 원형태의 가치가 무려 10억원에 달한다.

가칠봉 중대 소초장 석중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칠봉 중대 소초장 석중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대에는 GOP 부대 유일한 수영장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영장도 있다. 일명 ‘하늘 수영장’이다. ‘하늘 수영장’은 과거 심리전이 정점을 이뤘던 1992년에 건설됐다. 1992년 5월엔 이곳에서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수영복 장면을 촬영했고 이승연이 그해 미스코리아 미로 선발됐다.

 하지만 현재 이 수영장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장병들의 작은 복지(?) 시설로 활용 중이다. 중대의 박준 상병은 “처음 GOP 투입 당시 수영장을 보고 신기했다”며 “과거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를 했다는 얘기를 듣고 헛된(?) 기대도 했지만 현재는 날이 좋으면 풋살 등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선 기자 < ys119@dema.mil.kr >
사진 < 조용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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