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기획 > 인문 > 팔도藝人과 천하名匠

한 올 한 올 ‘선비정신’을 엮다

기사입력 2015. 04. 28   16:28

<103·끝> 갓일 총모자장 강 순 자

제주산 말총 가닥 일일이 돌려가며 명주 짜듯 직조

매미날개보다 더 얇고 섬세, 세계의 패션계가 감탄

여덟살 때 어머니에게서 배워 62년 외길 ˝숙명이죠” 

 

 


 

 


 

 

 우리 전통 모피공예 중에는 하나의 명작을 탄생시키는 데 철저한 분업이 꼭 필요한 독특한 분야가 있다. 갓을 만드는 갓일이다. 문화재청은 갓일을 공예 분야 중에서 가장 먼저 1964년 12월 24일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했다. 구한말 단발령 이후 갓의 용도가 제한적이어서 수요는 급감했지만 아직도 TV 사극 등 대중매체에서는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게 갓이다.

 고려 중기 서민들이 즐겨 쓰던 패랭이(平?子)에서 유래된 갓은 조선조에 와 양식미를 갖춘 공예품으로 발전하면서 사대부의 신분을 상징하는 의관으로 자리 잡았다. 갓으로 불리는 흑립(黑笠)은 배달겨레의 표상인 백의와 대비돼 그것을 쓴 사람의 정신이나 인격을 대변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한민족의 전통의장은 갓과 도포 차림을 이르는데 그 절제와 위엄이 세계 어느 나라 의관보다 우월하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이처럼 한민족과 애환을 함께해 온 갓이 국내에서는 등한시되고 관심 밖으로 밀려났지만 국제적 위상은 다르다. 매미 날개보다 더 얇고 섬세하게 짠 말총 직조술에 세계 패션계가 감탄하며 내실 있는 한류문화로 급부상하고 있다. 제주시 사라봉길에 자리한 제주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매주 1회씩 갓일을 시연할 때면 국내외 관광객들이 꽉 들어찬다. 특히 각국 모자업계 종사자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갓은 혼자서는 만들 수 없고 협업으로만 생산 가능한 특수공예품이다. 모자 부분을 만드는 총모자, 모자챙을 만드는 양태, 총모자와 양태를 결합하는 입자를 통칭해 갓일이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어야 최고 품질의 갓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세 분야 모두 재료와 제조공정이 달라 별도 작업을 거쳐 출하된다. 전통적으로 제주에서 총모자와 양태를 만들면 통영이나 거제의 입자장이 가져가 하나의 갓을 완성시켜왔다.

 제주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의 시연 때 모자업계 관련자들이 발길을 멈추고 시선을 고정하는 곳이 강순자(康順子·70) 명장의 총모자장 작업장이다. 제주에서 생산되는 말총 한 가닥 한 가닥을 일일이 돌려가며 명주 짜듯 직조하는 것이어서 그 수공은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국가에서는 강 명장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총모자장(帽子匠) 인간문화재로 지정(2009. 9. 25)했다.

  “한순간이라도 집중을 안 하거나 잡념이 끼어들면 그르치는 게 총모자 일입니다. 한 올이라도 끊어지면 다 뜯어내고 새로 짜야 하니까요. 여덟 살 때부터 어머니한테 배웠습니다.”

 제주시 도두동에서 태어난 강 명장은 꼼꼼한 성격으로 집안일을 잘해 어머니 눈에 든 것이 평생 이 길을 가게 했다고 말했다. 말총은 한 올이라도 엉키면 다시 쓸 수 없으므로 신주 다루듯 한다면서 전통문화를 지켜낸다는 투철한 사명감과 목표의식 없이는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낮엔 밭일을 하고 밤에는 갓일 하며 생계를 꾸려왔지만 자신의 손재주에 세계가 감동한다는 자부심에 힘든 줄 모르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강 명장의 친정어머니(김인·96)는 갓일의 2대 인간문화재(1985. 2. 1 지정)로서 총모자장의 ‘살아있는 전설’로 유명하며 현재는 명예보유자다. 김 명예보유자는 그의 친정 할머니와 어머니한테 총모자 일을 배운 제주 토박이다. 강 명장은 “갓 수요는 급격히 줄고 일까지 고되다보니 기능을 배워보겠다고 찾아온 사람도 1년을 못 버티고 떠난다”면서 “어렵사리 며느리(강병희·47)와 딸(양윤희·39)이 이수자로 명맥을 잇고 있어 한숨을 돌렸다”고 말했다. 5대째의 가업이다.

 강 명장의 말총(말의 꼬리털) 다루는 손놀림을 지켜보는 내외국인들의 시선은 찬탄을 넘어 경이로움 그 자체다. ①말총 선별하기 ②생이방석(새 둥지의 제주 방언) 엮기 ③천박(육지·운기) 뜨기 ④몸글 뜨기와 몸글 떼기 ⑤먹칠하기의 전 과정이 한자리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말총은 한 가닥에 8줄씩 네 가닥으로 32줄을 꼬아 쓰는데 이렇게 완성된 총모자를 30분 정도 삶아 먹칠하면 완성된다. 총모자는 30줄의 성긴 것과 50줄의 촘촘한 것으로 구분하는데 보일 듯 말듯 살포시 얹어진 총모자의 매력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가 없다.

 “얼핏 보면 총모자가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한 형태를 세련되게 만드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어떤 민속학자는 인류가 만든 모자 가운데 갓처럼 가볍고 엄숙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더군요.”

 갓은 넓은 의미로 방갓형과 패랭이형 모두를 이르며 흑립·칠립·평립으로도 부른다. 예부터 통영갓을 최고로 쳤고 총모자는 항상 제주에서 만들어 공급됐다. 갓의 수요가 넘칠 때는 통영·거제의 갓 장수가 제주시 삼도동에 갓방을 차리고 총모자를 싹쓸이해 간 때도 있다.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까지 우리나라 성인 남자들은 도포에 갓을 갖춰 써야 비로소 문밖 출입을 할 수 있었다. 값이 워낙 비싸 낡았다고 해서 쉽게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는 형편도 못 됐다. 구멍 나고 해져도 수리해 쓰는 것이 관습이었고 전국 각지에 수리공이 성업을 이뤘다는 기록이 전한다.

 강 명장은 10가닥의 말총 중에서 총모자로 쓸 수 있는 건 겨우 2~3가닥뿐이라며 양손에 힘을 줬을 때 팽팽한 느낌이 오는 게 최상품이라고 선별 요령을 말해준다. 총모자를 엮어가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쁨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행복이라고 강조한다.

 “바농대(바늘대)로 말총 한 가닥, 한 올을 돌려 짤 때마다 인생의 한 고비, 한 굽이를 넘는다는 느낌입니다. 잠시 한눈을 팔아도 안 되지요. 집에서는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이나 혼자 있을 때 작업합니다.”

 강 명장은 오금이 저리고 눈앞이 흐릿해져 한 달에 2개 이상의 총모자를 만들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외증조할머니→외할머니→어머니가 이어온 가업이고 전통문화유산을 전승하는 일이어서 며느리와 딸에게 전수시키며 부지런히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규원 <시인·‘조선왕릉실록’ 저자>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에 대한 의견 개 있습니다. 로그인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