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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위대함 보여준 알렉산더의 위용·포용력

입력 2015. 04. 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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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밝고 부드럽게 표현 

로코코 양식으로 가벼운 색채·비대칭적 자유로움 추구

 

 


 

   위대한 통치자는 어떤 인물인가? 뛰어난 전략전술로 짧은 시간에 광대한 영토를 정복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356~323 BC)에 견줄 만한 인물은 찾기가 쉽지 않다. 21살의 젊은 나이에 그리스 반도를 복속시킨 그는 오랫동안 그리스 세계를 괴롭혔던 페르시아 제국으로 눈을 돌렸다. 원정에 나선 그가 페르시아 제국을 격파할 때 사용한 주된 전술은 ‘망치와 모루’ 전법이었다. 장창으로 무장한 밀집보병부대를 모루로 삼고 그가 선봉에서 이끄는 기마부대가 적의 중앙이나 측면으로 돌파해 후미를 망치처럼 강타하는 전술이었다. 병력은 많았지만 전술적 운용 능력을 갖추지 못한 페르시아 군대는 알렉산더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도전하는 자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라는 자신의 말처럼 그는 동쪽 끝 인도까지 정복하고자 했다. 인도로 진군하던 알렉산더에게 고집스럽게 복종을 거부하고 나선 이가 지금의 파키스탄 동부에 위치한 포라바(Paurava) 왕국의 포루스(Porus) 왕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폭이 1마일이 넘고 깊고 빠른 물살을 자랑하는 히다스페스 강이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포루스는 200여 마리의 전투용 코끼리를 비롯해 알렉산더 군을 압도할 수 있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알렉산더에게는 풍부한 전쟁 경험을 갖춘 5000~7000여 기병과 4만여 보병이 있었지만 포루스 왕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강 건너 알렉산더 부대의 이동을 예의 주시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기만전술로 시작된 히다스페스 전투

 알렉산더의 가장 큰 문제는 적의 눈을 피해 강을 건너는 일이었다. 그는 적을 속이기 위해 두 달에 걸쳐 기만전술을 폈다. 식량을 앞으로 옮기고 밤마다 모닥불 앞에 모여 노닥거리면서 적의 경계심을 풀었다. 강물이 크게 불어 있는 우기 동안에는 공격하지 않을 거라 믿게 한 것이다. 그리고 폭우가 쏟아지는 6월의 어느 날 밤, 알렉산더는 주력 기병과 보병을 도강시켜 급습을 감행하게 된다.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주둔지에서 북쪽으로 17㎞나 떨어진 곳을 선택했다. 현대적 관점에서도 결코 용이하지 않은 일을 1700년 전 알렉산더는 단행한 것이다. 주둔지에 부대 막사와 일부 병력을 잔류시켜 적의 의심을 피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포루스는 알렉산더 부대가 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의 아들이 지휘하는 기병과 전차부대를 급히 보냈지만 그들은 알렉산더 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전날 폭우로 진흙탕으로 변해버린 강변 지역은 포루스의 전차부대를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들의 죽음과 패전 소식을 들은 포루스는 알렉산더와 맞서기 위해 본대를 기동시켰다. 전투 코끼리와 전차가 싸우기 유리한 지형으로 이동해 전투 대형을 갖추면서 히다스페스(Hydaspes) 전투(327 BC)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알렉산더에게 가장 큰 위협은 전투 코끼리였다. 말은 코끼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기병으로 공격할 수 없었다. 그는 전투 코끼리 부대를 막기 위해 6m가 넘는 장창으로 무장한 밀집보병부대를 내세웠다. 고슴도치처럼 밀집한 날카로운 창이 코끼리의 전격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공격의 핵심은 역시 마케도니아의 기병이었다. 알렉산더가 이끄는 기병이 적의 왼쪽 전차부대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포루스는 이를 막기 위해 본대 오른편에 배치했던 전차부대를 왼쪽 방어에 투입했다.

 

●적의 움직임을 예견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예견한 알렉산더는 이미 기병 일부를 우회시켜 적의 오른쪽 후미를 몰아쳤다. 포루스 군은 완전히 포위된 것이다. 마케도니아 밀집보병을 사납게 밀어붙이던 전투 코끼리의 공격이 주춤하고 포루스의 전차부대마저 와해되면서 전세는 알렉산더 군 쪽으로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게다가 주둔지에 잔류했던 병력까지 강을 건너 적의 후미를 공격하면서, 전투는 사실상 참혹한 살육전으로 변해버렸다. 8시간의 전투가 끝날 무렵 완강히 저항하던 포루스는 알렉산더와 조우하게 된다.

 프랑스 화가 카를 방 로(Carle Van Loo·1705~1765)의 작품 ‘포루스에 대한 알렉산더의 승리’(1738)는 바로 이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 가운데 백마를 타고 붉은 망토를 휘날리고 있는 이가 알렉산더 대왕이다. 젊고 자애로운 표정이 유독 빛나고 있다. 그는 오른손을 내저으며 포루스를 함부로 다루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일화에 따르면 포루스가 보여준 전투능력과 용감함, 그리고 왕자다운 품격에 감동한 알렉산더는 그가 영토를 계속 통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림 오른쪽에 서너 명의 병사가 힘들게 일으켜 세우고 있는 인물이 포루스다. 텁수룩한 수염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한 포루스는 밝게 빛나는 알렉산더와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승자의 영광은 패자의 고통과 대비되면서 극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18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크게 번성했던 로코코(Rococo) 양식을 잘 보여준다. 한 세기 전 풍미했던 바로크(Baroque) 미술에서는, 루벤스나 렘브란트의 그림이 잘 보여주듯 깊고 풍부한 색채, 과장된 몸짓과 극적인 긴장감, 그리고 강한 음영의 대비와 웅장함이 강조됐다. 이에 비해 로코코 회화에서는 보다 밝고 가벼운 색채, 곡선의 부드러움과 여성적 아름다움, 혈색 좋은 인물 표현, 그리고 다소 과도한 장식성과 비대칭적 자유로움을 추구했다.

 

●젊고 자애로운 표정의 알렉산더

 목숨을 건 전투의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전반적으로 밝고 부드럽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밝게 빛나는 백마를 탄 알렉산더의 얼굴은 홍조를 띠고 있어 여성적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가늘게 내뻗은 그의 오른손은 부드러움으로 가득하다. 고통과 절망에 쓰러진 포루스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줄 듯 자애롭다. 전반적 구성은 다소 산만해 보이며, 어떤 비례나 균형을 맞추려 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주요 인물을 제외하면 인물의 윤곽이나 표정 또한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 불확실성 속에서 활기와 생동감을 느끼게 된다. 전쟁을 주제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로코코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는 루이 15세(1715~1774) 통치 아래 있었다. 이 시기 로코코 예술이 번성하며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도시로 변해 있었다. 군주는 더 이상 위험한 전장에 나가지 않았지만 알렉산더의 위대함을 닮고자 했다. 당시 궁중화가였던 방 로는 자신이 모시던 루이 15세를 알렉산더 자리에 살짝 올려놓았다. 루이 15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 속 알렉산더의 얼굴이 루이 15세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알렉산더가 사랑했던 갈색 말 부케팔로스를 루이 15세의 백마로 바꿔 놓은 것도 그러한 의도에서였다.

 히다스페스 전투는 전술적으로 가장 탁월한 작전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신화적인 기만전술과 탁월한 도강 능력, 비대칭전력에 대한 대응과 주력의 활용, 그리고 적의 의중을 읽어내는 능력 등 어느 것 하나 모자라지 않는 완벽한 전투의 전형이다. 게다가 적의 장수를 관대하게 대함으로써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든 이가 알렉산더였다. 바로 이 관대함에서 그의 위대함은 더욱 빛나고 있는 것이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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