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DMZ동서횡단 냉전을 넘어 희망을 보다

[연중기획_ DMZ 동서횡단, 냉전을 넘어 희망을 보다]② 강원 인제

이영선

입력 2015. 04. 14   18:30
업데이트 2023. 08. 2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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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P 유일의 모노레일 보급 육군12사단 ○○소초


 동서155마일의 비무장지대(DMZ)에선 적과의 대치 외에 또 다른 전쟁이 진행된다. 보급전쟁이다. GOP소초에 부식과 물자 보급은 실탄과 맞먹는 중요성을 지닌다. 한겨울 내한장비와 식량 없는 전선 사수는 실탄 없는 첨단무기나 마찬가지. 우리 군이 최전방 보급로 확충에 최선을 다한 이유다.

이 같은 노력으로 열악하던 보급로는 발전을 거듭하며 적 도발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 능력을 높였다. 협소하지만 대부분 GOP소초에는 도로가 확충됐다. 동서라인을 따라 뻗은 보급로는 실핏줄과 같은 역할을 하며 최전방 장병들의 든든한 생명선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보급로의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소초도 있다. 육군12사단의 ○○소초. 일명 ‘모노레일 소초’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험준한 산세 때문에 아직 보급로가 뚫리지 못했다. 부식과 물자는 모노레일로 운반한다. 보급이 곧 전투라는 등식이 가장 절실하게 와 닿는 공간이다. 

 

 

   4600여 개의 계단 넘어야 소초 도달

 ‘모노레일 소초’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부대와 소초를 이어주는 길은 4600여 개의 계단이 유일하다. 말이 4600개지 그 계단을 오르는 과정은 ‘고난의 행군’이다. 무엇보다 그 가파름이 일반 계단에 견줄 바가 아니다. 대부분 경사는 약 80도에 가깝다. 일부 구간은 수직계단이다. 동행한 부대 관계자는 “예전 모 기자는 3시간 만에 중도 포기했다”고 겁을 줬다. 처음엔 웃었다. 하지만 그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높이가 50㎝에 육박하는 계단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의문이었던 계단 위에 포개진 작은 보조계단의 쓰임새도 곧 알게 됐다. 반 보폭의 편리함은 의외로 컸다. 걸음은 더뎌졌지만 그만큼 몸은 편해졌다.

일명 '모노레일' 소초로 가는 계단에 새겨진 숫자
일명 '모노레일' 소초로 가는 계단에 새겨진 숫자


 모노레일 소초를 향한 여정에서 만난 이질적 존재는 또 있었다. 계단 100개 단위로 만나게 되는 노란 숫자였다. 계단 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100, 200, 500…. 3000이란 숫자를 만나자 경사의 수준이 그나마 나아졌다.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체력은 완전 방전 상태였다. 그런데 불과 4~5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시멘트 계단도 없었다고 한다. 이 경사길이 모두 흙으로 만든 계단이었다고 하니 폭우나 폭설 시 경계 임무의 어려움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휴식을 위해 쓰러지듯 앉았던 시멘트 계단에 조잡하게 새겨진 ‘2011.6.2’ 란 숫자가 낙서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산 밑에서 소초까지 약 2㎞의 거리라 했지만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소초 대원들은 이 험난한 여정을 40분 만에 주파한다고 했다. 나이를 탓하기엔 너무 큰 격차다.

 쉬다 걷다를 반복한 끝에 마침내 마주한 모노레일 소초는 단촐했다. 보이는 것은 생활관과 병영식당, 그리고 두 건물 사이의 작은 공간이 전부였다. 그나마 병영식당은 사이버지식정보방과 노래방을 겸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원들에겐 여유가 느껴졌다. 힘든 생활을 함께 한다는 그들만의 전우애가 보였다. 행동이 당당했다. 무엇보다 대원들의 얼굴에 그늘이 없었다. 투입 5개월 차인 소초 경계병 김휘태(22) 일병은 “힘든 환경을 함께 견디며 생활하다보니 선·후임 간 동료애가 남다르다”고 자랑했다.


 소초엔 대원들에게 큰 힘이 되는 또 다른 존재가 있었다. 군견 안도(셰퍼드)와 경계보조견 단이(핏불)다. 이 두 대원(?)들은 과학화경계근무시스템이 정착된 후 경계근무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소초 대원은 “경계보조견 단이를 야간 취약지점에 배치하고 있는데 한밤중 사람이 식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단이가 짖어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계 임무 외에 소초 지킴이 역할도 하고 있다. 소초 관계자는 “예전엔 멧돼지들이 소초 앞마당까지 진출해 장병들이 위협을 느끼곤 했다”며 “하지만 두 마리 개가 멧돼지와 싸워 물리친 일이 있은 후에는 그런 위험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가파른 경사길 모노레일 이용해 부식 보급

 ‘모노레일 소초’의 보급은 작전이다. 보급품이 도착하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금요일은 특급 배달작전이 진행된다. 배달은 박대순(32·중사) 부소초장과 두 명의 병사 등 총 3명이 한 팀을 이뤄 책임진다. 배달은 2단계로 이뤄지는데 첫 단계가 산 아래 상경장으로부터 케이블을 이용해 소초에서 약 300m 떨어진 하역장으로 부식을 옮기는 작업이다.

육군12사단 oo소초에서 케이블을 이용해 부식을 운반하고 있다.
육군12사단 oo소초에서 케이블을 이용해 부식을 운반하고 있다.

 
 이후 배달 팀이 모노레일로 각종 물품을 소초까지 옮긴다. 운전대는 오직 부소초장만이 잡을 수 있다. 산세가 험한 만큼 모노레일도 가파르고 그만큼 위험구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부소초장이 운전을 하면 두 병사가 옆에서 함께 걸으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다. 모노레일을 방해하는 돌덩이나 잔가지를 치우며 전복사고를 예방한다. 부소초장은 “구간구간 위험 지역이 많아 운전시에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며 “소초 투입 약 2주일 전에 먼저 도착해 모노레일 운전을 익혔다”고 말했다. 부소초장은 자신의 손에 대원들의 생존(?)이 달린 만큼 휴가도 최소화한다. 휴가를 가더라도 부식지급일을 피해 신청한다. 

모노레일 수레를 이용해 부식을 옮기고 있는 모습.
모노레일 수레를 이용해 부식을 옮기고 있는 모습.

모노레일 수레는 길이 3m 폭 0.8m에 불과하다. 한 번에 최대 300㎏까지 적재할 수 있지만 안전을 위해 250㎏ 분량만 싣는다. 이 작은 수레로 옮기는 배달 품목은 다양하다. 부식부터 LPG가스, 휴지 등 소초에서 쓰이는 거의 모든 보급품이다. 충성마트 구매 물품도 주요 배달품이다. ‘모노레일 소초’엔 충성마트가 없기 때문에 물품 구매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각 대원들이 필요한 물품을 적은 쪽지와 개인 나라사랑카드를 순찰조에게 맡기면 순찰조는 협조점 간부들에게 전달하고 이들이 소속 소초 충성마트에서 대리 구매를 해준다. 구매 물품과 카드는 부식지급일에 케이블카를 통해 전달되고 모노레일로 다시 소초로 전해진다. 배달 품목에는 부모님들로부터 오는 택배도 빠지지 않는다. 택배 중 가장 인기 품목은 양갱이라고 한다. 모노레일 소초는 충성마트가 없는 만큼 소포 크기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소초 장병들이 험난한 과정(?)을 거쳐 도착한 부식품을 옮기고 있다.
소초 장병들이 험난한 과정(?)을 거쳐 도착한 부식품을 옮기고 있다.

 하지만 안개나 진눈깨비 등으로 기상이 나빠지면 모노레일도 사용할 수 없다. 오직 인력으로 보급품을 배달해야 한다. 임무수행 중인 인원을 제외하고 모든 대원들이 배낭과 지게를 지고 산 밑에서 소초까지 보급품을 옮긴다. 말 그대로 보급작전이다. 이럴 경우 인근의 충성마트는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된다. 소초 대원들이 가능한 모든 물건을 싹쓸이해온다. 소초 경계병 신진호(22) 일병은 “올겨울에도 벌써 두 번이나 보급 작전을 시행했다”며 웃었다. 

 전군 유일의 모노레일도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질 듯하다. 보급로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약 3년 후면 보급로가 완성될 예정이다. 작전환경은 개선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추억의 모노레일은 ○○소초를 거친 모든 장병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선 기자 < ys119@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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