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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병영칼럼] 화장실과 군 작전

입력 2015. 04. 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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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 잠수함 화장실에는 특이한 경고 문구가 눈에 띈다. 변기가 막히게 되면 ‘출동 중에는 임무를 포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잠수함 비데의 가장 큰 용도는 휴지 사용을 줄이는 한편 수분섭취가 제한적인 함내에서 변비에 시달리는 잠수함 승조원들의 용변을 돕기 위해서다.

 뒤처리에 사용하는 화장지는 수압이 약한 잠수함 내 변기에서 곧잘 막힘 현상을 일으키기 쉽다. 문제는 잠수함 내에서는 ‘뚫어 뻥’ 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 과정에서 방출되는 악취는 골칫덩어리다. 경고 문구처럼 작전 출동 중 이런 일이 발생하면 임무를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잠수함 화장실에는 ‘워싱건(물총)’까지 비치돼 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보트 1206호는 1944년 4월 1일 첫 정찰임무를 받고 투입된 스코틀랜드 바닷속에서 변기가 터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오물과 해수가 섞인 오염수가 기관실로 들어가 엔진을 고장 내고 유독가스를 내뿜는 바람에 1206호는 수면 부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연합군에 투항했다.

 공군 전투기에서도 생리현상 해결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의 임무 시간은 1~3시간 정도이기 때문에 급히 볼일을 봐야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래도 급하게 오줌이 마려울 때를 위한 대비책은 마련해 놓고 있다. 조종사의 생리현상을 급하게 해결해 주는 도구로 일종의 소변 주머니인 ‘릴리프 백(Relief bag)’이 그것이다. 야구에서 주자 2, 3루의 위기상황을 넘기기 위해 투입하는 게 릴리프 투수인 것처럼 생리현상의 급한 불을 꺼주는 역할을 한다.

 전쟁 중에도 생리현상 해결 문제는 작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스가 제작한 다큐물 ‘Generals at war: The Battle of Alamein’을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북아프리카에 투입된 독일군이 패한 원인 중 하나를 ‘화장실’ 문제로 지목하고 있다. 당시 에르빈 롬멜 장군이 지휘하던 독일군은 전격전을 치르느라 화장실도 급조해 대충 ‘큰일’을 보고 뒤처리에 소홀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일군이 머무른 숙영지에는 무덥고 열악한 환경에서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게 됐고, 독일군은 이질과 설사 등 각종 세균성 질환에 시달렸다. 반면 영국 8군은 육군위생교범에 따라 땅을 깊숙이 파고 밀폐할 수 있는 통으로 위생 변기를 제작했다. 천으로 된 덮개까지 달려 있었다. 그 결과 영국군 등 연합군에서는 이질·설사 환자가 드물었다.

 여군 장교들과 얘기를 해보면 행군을 앞두고는 물이나 국을 되도록 피했다고 한다. 화장실 문제 때문이다. 여군은 야전에서 ‘볼일’을 볼라치면 극도로 예민한 긴장 속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이 필수적이다. 여군들에게 잦은 질환이 생리불순, 요도염, 결석 등이라는 한 여군 질병 관련 세미나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는 우연이 아니다. 여군 ‘1만 명 시대’에 야전에서의 여군 생리현상 해결 문제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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