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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새긴 옛 글자에 반해 32년 외길인생”

기사입력 2015. 03. 24   16:21

<98> 각자장 인간문화재 김각한

인쇄문화 전통 기능서예·목공예 다루는 종합예술

초대 각지장 철재에게 모든 제작 과정 전수 받아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서 각자(刻字)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의외로 많다. 각자는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새김질을 말한다.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 고대 인쇄문화를 꽃피운 전통기능이다.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제작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제126호)이 가장 오래된 목판각자이고 고려시대는 불교경전이나 고승들의 문집 간행이 성행해 목판인쇄술의 전성기를 이뤘다. 이처럼 금속활자가 나오기 전까지 목판각자는 인쇄 작업의 중심이었다.

 조선 시대 들어서는 각법(刻法)이 더욱 탁월해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1997)된 훈민정음(국보 제70호)을 비롯한 수많은 목판인쇄물이 널리 보급됐다. 이같이 찬란했던 목판각자 기술도 금속활자의 발달과 더불어 퇴조하게 됐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는 멸실 위기로까지 내몰렸다. 그러나 공공건물이나 사찰·재실(齋室)에 거는 현판용 등으로 목판각자는 필수적이었다.

 국가에서는 각자 기능의 전수를 위해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刻字匠)을 지정(1996. 11. 1)하면서 초대 인간문화재로 철재 오옥진(1935~2014) 명장을 인정했다. 철재는 훈민정음·대동여지도·고려가요·농가월령가 등의 수많은 고전을 원본대로 복원해 관련학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자칫 끊길 뻔했던 각자 기능은 그의 제자 고원(故源) 김각한(珏漢·60) 명장에게 전승돼 명맥을 잇고 있다. 철재와 고원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1984년 어느 봄날, 서울 신문회관에서 개최 중인 선생님의 개인전에 들렀다가 첫눈에 반했습니다. ‘나무에 새긴 옛 글자가 어찌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다음날 찾아가 입문 의사를 밝혔더니 쾌히 승낙해 주셨어요. 그 후 32년째 오로지 목판각자만 해오고 있습니다.”

 경북 김천시 감천면 양천동에서 태어난 고원은 돈벌이도 안 되고 명예도 없는 전통각자지만 고전을 알아가는 자존심과 나무 향기에 취해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3월 12일 각자장 2대 인간문화재로 지정됐고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와 대전대 교수로 출강하며 ‘전통각자’의 저서도 출간했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작업실에서 펴 보인 그의 양손은 각자칼에 긁혀 상처투성이였다.

 각자는 인쇄를 목적으로 글자를 뒤집어 새기는 반서각(反書刻)과 궁궐·전각 등의 현판에 직접 새기는 정서각(正書刻)으로 구분한다. 각자의 책판으로 사용하는 나무는 대추나무(단단하고 벌레가 먹지 않음)와 배나무(목질이 연하고 무늬가 고움)가 좋고 이밖에도 소나무·느티나무·밤나무·오동나무 등 우리 땅에서 자라는 나무를 거의 활용할 수 있다. 각자에 필요한 공구로는 톱·대패·끌·곡자·망치·조임쇠를 비롯해 칼의 종류만도 평칼·둥근칼 등 10여 가지가 넘는다.

 “각자장의 기량은 칼질의 흔적, 글자의 균정도(均整度), 오자나 탈획의 유무로 가늠합니다. 철재 선생님은 생각에 사(邪)가 끼면 목판에 그대로 드러난다면서 모든 글자마다 자신의 혼을 심으라고 가르치셨어요.”

 고원은 ▲각자에 쓸 나무를 바닷물에 담그는 기간 ▲민물에 넣었다가 건조시키는 요령 ▲민물에 보관했다가 소금물에 삶기 등의 비법을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았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만 썩거나 뒤틀리지 않아 표면을 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 원본에 들기름을 투명하게 먹여 목판에 뒤집어 붙이고 글자를 새겨나가는 것이 각자의 제작 과정이다. 무늬에 따라 각자가 죽는 경우도 있어 가급적 잔글씨는 무늬목에 새기지 않는다.

 고원은 입대 전 목재소에서 배운 소목공(小木工) 기술이 섬세한 칼질에 크게 도움이 됐고 죽사(박충식·93)한테 배운 서예와 한문은 각자의 서체를 개발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고 회고했다.

    전통각자에 대한 연륜이 깊어질수록 지식에 대한 열망도 강렬해져 한국방송통신대학 중국어과와 예술의 전당 서예전문반도 마쳤다. 이런 고원의 노력은 대한민국서예대전·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국제미술전 등의 대상으로 돌아왔고 일본에서 개최된 21세기 국제서전에서 외국인 최초로 특별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중국·일본·말레이시아·싱가포르의 초청전시와 독일·러시아 현지에서의 서각시연을 통해서는 문화한국의 높은 격조를 국제적으로 입증했다.

 태곳적부터 인류는 자신이 살다간 흔적이나 생각을 동굴 벽 또는 바위에 새겨 왔다. 문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록 수단이 필요했는데 문자의 발명과 함께 인쇄문화로 이어지며 비약적 진전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석판각자나 목판각자의 등장이 인간생활의 질적 변화를 주도하면서 출판문화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게 관련 학계의 설명이다.

 “각자를 위해서는 글자 원본을 봐야 하는데 그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아름다운 나뭇결이 차고 푸른 칼끝을 만나 한 획 한 획 그어진 운필의 흔적이 너무나 선명하기 때문이지요. 학자가 책 향기를 못 잊듯이 각자장은 나무 향을 잊지 못합니다.”

 각수(刻手)로도 불렸던 각자장은 나무뿐만 아니라 돌에도 글자를 새기거나 그림을 그렸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 만주 광개토대왕비, 중원 고구려비, 신라 진흥왕 순수비, 백제 무령왕릉 석각 등이 대표적이다. 목판각자 중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정교한 획의 삐침과 높낮이 각법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2007)된 바 있다.

 고원은 나무를 오래 다룬 목수는 나뭇결에도 ‘혼’이 있음을 믿는다고 말했다. 나무를 고르고 다듬고 새기다 보면 단순한 자재로서의 나무가 아닌 느낌으로 대화를 나누는 생명체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각자의 세월이 깊어갈수록 나뭇결에 도(道)가 트는 혜안이 열려 감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고 강조한다. 현재 취미로 각자를 배우는 후학들은 많으나 전수조교는 없고 이수자만 44명이 있다. 단순한 글자 새김질만이 아닌 문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각자 당시의 시대상을 관통하는 통찰력까지 겸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손에 칼과 망치를 들고 옛글의 풍류를 살려온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기도 합니다. 곁눈질 않고 살아온 스스로가 대견스럽기도 하고요. 내가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작품을 통해 많은 분에게 사랑받은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원은 그동안 수많은 좌절과 시련, 외로움과 싸우며 외길을 걸어오면서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규원 <시인·‘조선왕릉실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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