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DMZ동서횡단 냉전을 넘어 희망을 보다

[연중기획_ DMZ 동서횡단, 냉전을 너머 희망을 보다]① 강원 고성

이영선

입력 2015. 03. 10   18:05
업데이트 2023. 08. 2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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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최전방 지역이 그렇지만 육군22사단이 관할하는 이 전선은 특히 험한 산세와 혹독한 자연 환경으로 명성(?)을 떨치는 곳이다. 더구나 체험을 시작한 지난달 9일은 입춘이 지났음에도 심한 한파가 한반도를 다시 강타했던 시기. DMZ는 혹독했고 GOP는 만만치 않았다. 격전의 과거와 냉전의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다.

 

● DMZ의 출발점 동해 첫 초소를 가다

 강원도 고성 해안 DMZ의 동해 첫 초소. 분단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다. 철조망은 육지에서 해안을 따라 ‘ㄱ’자로 꺾어지며 해안 철조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날씨는 더없이 맑았고 해안은 평화로웠다. 갈라진 남북의 현실을 일깨우는 건 두꺼운 철조망과 경계초소의 병사들뿐이었다. 꺾어진 철조망과 함께 통일의 염원도 부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자연은 달랐다. 하늘도 바다도 남북이 하나였다. 봄을 시샘하는 2월 초순의 매서운 칼바람도 철조망을 쉬이 드나들고 있었다. 

강원도 고성군 동해안 최북단 지점에서 육군22사단 백호대대 GOP장병들이 한반도 동서를 가로지르는 남방한계선 철책과 동해안을 따라 둘러쳐진 해안철책이 만나는 꼭짓점을 지나 철책 점검을 하고 있다. 
강원도 고성군 동해안 최북단 지점에서 육군22사단 백호대대 GOP장병들이 한반도 동서를 가로지르는 남방한계선 철책과 동해안을 따라 둘러쳐진 해안철책이 만나는 꼭짓점을 지나 철책 점검을 하고 있다. 


 초소에서 북쪽을 바라보자 정면에 금강산 1만2000봉 중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이 또렷했다. 구선봉은 두 봉우리가 낙타 등과 같다고 해 낙타봉으로도 불린다. 구선봉 외측으론 해금강이 화사했고 안쪽으론 길게 동해선 도로와 철로가 구선봉을 휘감고 사라지고 있었다. 동해선 도로는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당시 우리 국민들을 태운 버스가 수없이 달리던 바로 그 길이다. 지금은 단절된 그 도로를 따라 오늘도 우리 국민들의 통일 염원은 북을 향해 달리고 있다.


● 폭설 시 제설작업 1순위는 ‘보급로’

최전방 추위는 차원이 달랐다. 나름대로 중무장한다고 몇 개의 옷을 겹쳐 입었지만 살을 에는 삭풍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안면을 때리는 강풍에 숨 쉬는 것도 힘들었다. 살기 가득한 한파는 귀를 자르는 듯했다. 맹추위속 고진동 소초 방문길도 쉽지 않긴 매한가지. 민통선 검문소를 지나자마자 40도 가까운 급경사길이 차량을 맞이했다.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폭의 시멘트 도로였다. 동행한 사단 관계자는 ‘종 보급로’라고 설명했다. GOP대대로 부식 등 각종 물자가 보급되는 소중한 도로다.

 ‘종 보급로’로 보급된 부식과 물품은 GOP선을 따라 이어지는 ‘횡 보급로’를 통해 각 소초로 재보급된다. 보급로는 눈이 왔을 경우 최우선 제설작업 대상이다. 당장 먹거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단 관계자는 “보급로가 막히면 당장 부식차량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임무수행 중인 대원들을 제외하곤 모든 소초원들이 동원돼 최우선적으로 제설작업에 나선다”고 말했다. 
 
 차량은 덜컹거리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약 20분간 달린 후 ‘횡 보급로’로 들어섰다. 고진동 소초로 이어지는 일명 ‘도깨비 길’이다. 12㎞에 달하는 약 30도 경사의 비포장 도로다. 주변 풍경이 비슷해 같은 길이 이어지는 것 같아서 ‘도깨비 길’로 불린다고 했다. 표지판에는 들어갈 때는 30분이 걸리지만 나올 때는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유래가 설명돼 있다. 실제 가는 길은 마치 러닝머신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같은 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괴기한 지루함을 일깨워준 것은 한 쌍의 멧돼지 모자였다. 눈밭 속 먹을 것을 찾아 도로 한편까지 내려왔던 어미와 새끼 멧돼지는 차량 소리에 놀라 빠르게 산속으로 사라졌다.

● 1009개의 계단 ‘천국의 계단’으로 재탄생

 도착 시간은 오전 10시30분쯤. 고진동 소초는 적막했다. 야간 경계를 마친 병사들이 취침 중이라 했다. 고단한 그들을 뒤로하고 GOP 초소로 향했다. 두 초소는 계곡을 사이에 둔 산능선에 위치했다. 두 초소 사이에 흐르는 고진천은 예전 ‘연어 방류터’였다. 하지만 봄마다 사람들이 찾아와 연어를 방류하던 그 흥겨움은 이제 사라진 기억이 됐다. 

한겨울 강원 고성의 건봉산 정상에 버려진 녹슨 M4A3E8 셔먼 전차의 모습을 국방TV 카메라 기자가 촬영을 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한겨울 강원 고성의 건봉산 정상에 버려진 녹슨 M4A3E8 셔먼 전차의 모습을 국방TV 카메라 기자가 촬영을 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고진천을 중심으로 양 산능선 봉우리엔 두 초소가 들어서서 경계를 담당하고 있다. 경사가 가파른 오른쪽 계단 초입에는 ‘천국의 계단 길’이란 푯말이 서있다. 긴장의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천국의 계단’. 로맨스한 어감이 주는 명칭의 본질은 사실 고통이다. 계단 수가 무려 1009개에 달한다. 한 계단 한 계단 디딜 때마다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정신은 아늑해진다. 하지만 장병들은 이 ‘천구(1009)’의 발음을 ‘천국’으로 승화시켰다. 힘든 현실을 위트로 전환한 병사들의 센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우리 장병들의 방식이다. 


● 건봉산 정상의 녹슨 셔먼 전차 

 건봉산 전망대는 민간인들에게 개방되지 않는 장소다. 주로 정부 주요 인사나 타 부대 장교들에게 교육용으로 개방된다. 건봉산 전망대는 1969년 대공감시탑으로 준공됐다. 1980년 개축을 거쳐 현재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다. 해발 908m 정상의 전망대 뒤편에는 버려진 녹슨 전차가 버거운 현실에 맞서며 외로이 서 있다. 6·25전쟁 당시 북한의 T34 전차에 맞서기 위해 한국에 가장 먼저 달려왔던 M4A3E8 셔먼 전차다. 2014년 한국에서도 개봉됐던 영화 ‘퓨리’에서 주인공 브래드 피트가 전차장으로 탑승했던 바로 그 전차다. 현재 용산 전쟁기념관에도 전시돼 전장의 상흔을 일깨우고 있다. 

 그런데 평지 전투를 위한 전차가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았던 그 시절 어떻게 건봉산 정상에 올라온 것일까? 그 연유를 정확히 아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 1·4후퇴 당시 급하게 퇴각하려던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60여 년 세월 앞에 전차의 위용은 붉은 녹으로 퇴색했다. 승리에 대한 전차의 열망은 눈·비와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여전히 포신을 거두지 못한 그 셔먼 전차는 지금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것일까?

● GOP의 또 다른 동계작전 급·퇴수

 GOP부대의 동계경계작전에는 폭설 이외 또 다른 장애물이 있다. 바로 급수 문제다. 22사단 관할구역 GOP선상의 각 소초는 몇개 주요 지점의 소초에서 관리하는 통합급수장에서 식·용수를 공급한다. ○○○의 무적소초 역시 그 통합급수장을 관리하는 소초 중 하나다. 무적소초가 하루에 공급하는 급수량은 70~80톤. 하지만 급수만큼 중요한 것이 퇴수다. 한파로 배수 배관이 얼게 되면 말 그대로 물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에 오전 한 차례 급수가 진행되면 오후엔 배관에 남아있는 물을 제거하는 ‘퇴수작전’이 시행된다.

 

변화하는 GOP 부대 

GOP 소초는 변하고 있다. 장병들도 시스템도 시대와 함께 진화 중이다. 철책경계는 과학화 감시 시스템으로 더욱 철저해졌다. 경계병들도 고정근무에서 순환근무로 시스템이 전환됐다. 소초의 문화활동도 활발해졌다. ‘까치봉 소초’의 차해강(중사) 부소대장은 “매월 1회씩 삼겹살 파티를 열어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고 전우애를 깊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는 GOP 면회도 가능해졌다. 상황실에 설치된 수신전화를 통해 부모들과 연락도 이뤄진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바로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철저한 대적관과 힘든 여건을 두려워하지 않는 장병들의 건강한 사고 방식이다. 

 육군22사단의 GOP 소초에서 경계 작전 투입에 앞서 군장 검사를 마친 GOP 경계병들이 경례하고 있다.
 육군22사단의 GOP 소초에서 경계 작전 투입에 앞서 군장 검사를 마친 GOP 경계병들이 경례하고 있다.
육군22사단 해안DMZ 초소의 병사들이 K4고속유탄발사기를 잡고서 철책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육군22사단 해안DMZ 초소의 병사들이 K4고속유탄발사기를 잡고서 철책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무적소초에서 만난 유상욱 일병은 “선·후임들과 가족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복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남들과 다른 환경을 견디며 군 복무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DMZ 첫 해안초소의 김하늘 상병은 “DMZ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해안 초소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근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의 도발이 잦아질수록 우리 장병들의 대비태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이영선 기자 < ys119@dema.mil.kr >
사진 < 조용학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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