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사극 속 군대이야기-오류와 진실

풀어 헤친 투구 드림, 목숨이 몇개 되나…

입력 2014. 06. 0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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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좌우로 펄럭이는 투구 드림


 살아 있는 모든 동물은 전투본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움직이는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고 사는 육식동물의 전투본능은 생존본능과 직결된 것이다. 작은 개미조차도 먹잇감을 쟁취하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육식동물이 펼치는 핵심적인 전투방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적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할 때 공격하는 부위가 목과 얼굴 부위다. 그중 목은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부위라서 가장 많은 혈류가 지나는 통로이고, 얼굴에는 시각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이곳을 가장 먼저 공격한다. 특히 동물들의 대동맥 중 적에게 가장 노출되기 쉬운 곳이 목이기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면 몸이 움츠러들면서 목을 보호하게 돼 있다. 마치 거북이를 건드리면 목이 등껍질로 순식간에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얼굴·목 보호역할 불구 장식용으로 전락 주연급은 얼굴 알리려 벗어놓고 돌격도

 


①조선후기 병서인 ‘융원필비’의 투구 그림. 얼굴과 목을 보호하기 위해 투구 드림의 하단에 끈을 달아 좌우로 여몄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유물로 남아 있는 대부분의 투구에서도 모두 드림 끈이 확인된다. 
②투구의 드림을 묶은 필자의 모습. 이처럼 투구 드림을 묶으면 좌우 뺨은 물론 목까지 상당 부분 방호가 된다. 또한 겨울에는 방한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필자제공

 인간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갑옷은 탄생했다.

 인간은 맹수들의 가죽처럼 질긴 피부도 없고 거북이처럼 단단한 등껍질도 없다. 그래서 적의 창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갑옷을 만들어 입었다. 반대로 화약 무기의 발달 덕분에 총알의 관통력이 증가하면서 갑옷은 사라지고 대신 방탄복이 전장에 널리 보급됐다.

 그런데 전통시대 입었던 갑옷 중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 하단에는 대부분 좌우와 뒤쪽에 세 조각으로 연결된 ‘드림’이라는 것이 있었다. 만약 드림이 없다면, 경갑(頸甲)이나 호항(護項)이라고 해 목 부위만을 방호하는 부속품을 더하기도 했다. 보통 투구는 철모처럼 눈썹 위부터 시작해서 뒤통수까지 딱딱한 것으로 뒤덮는 것이 기본인데, 드림은 여기에 두꺼운 천이나 가죽을 늘어뜨려 어깨까지 덮는 형태였다. 드림의 존재 이유는 좌우 뺨을 포함하는 얼굴과 좌우 그리고 뒷목을 보호하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전투가 발생하면 반드시 투구의 드림 끈을 묶는 것으로 전투의 시작을 확인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사극에서는 단 한 번도 투구 드림 끈을 묶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제작된 사극에서 적의 창칼에 맞서 싸우는 군사들의 모습을 보면 저마다 투구 드림이 좌우로 펼쳐져 있다. 적의 공격에 단 한 번의 일격으로도 목과 얼굴은 전투불능에 빠지는 위험한 부위임에도 투구의 드림은 그저 장식용처럼 그려진다. 그래서 전투장면을 보면 창칼을 맞대고 움직이면 드림이 좌우로 힘차게 날리며 눈을 통째로 가려 전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병졸급들은 대충 투구만 쓰면 되고 주연급 연기자들은 얼굴 알리기에 급급해 투구조차도 쓰지 않고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대한민국 사극의 안타까운 현주소다. 특히 기병들은 투구의 드림 끈을 묶지 않으면 달리는 말의 반동 때문에 드림이 얼굴을 때리는 경우가 많은데, 기병들 역시 투구 드림을 멋지게 좌우로 휘날리며 적을 향해 돌격하는 모습이 지극히 정상인 것처럼 그려진다. 반대로 날씨가 더우면 좌우의 드림 끈을 머리 뒤쪽에서 묶어 통풍을 자유롭게 하기도 했는데, 사극 속에서는 그 더운 날 기나긴 행군 속에서도 투구 드림은 늘 그 위치에 고정돼 있다.


 전투 시 투구 드림 끈을 묶지 않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행위다.

 컴퓨터를 켜기 위해 전원 버튼을 누르면 가장 먼저 진행하는 것이 ‘부팅(booting)’이다. 그 의미는 ‘신발끈을 묶는다’는 뜻이다. 부팅을 해야만 컴퓨터는 운영체제를 불러들여 다른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다. 역시 군대에 신병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군화 끈을 빨리 묶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빠르게 군화를 묶어야 전투훈련에 돌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시대 역시 전투시작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자신의 방호 장비를 단단하게 조이는 일이었다. 이 중 투구 드림을 묶는 행위는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투구 드림 끈을 묶지 않고 전투하는 것은 갑옷의 앞섶을 풀어헤치고 펄럭이며 적진에 돌입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혹 그런 이유로 그동안 수많은 사극 출연자들이 두꺼운 갑옷을 입고도 주인공의 단칼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형국 역사학 박사·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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