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사극 속 군대이야기-오류와 진실

환경 고려않고 밑도 끝도 없이 “돌격 앞으로”

입력 2014. 06. 0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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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바람 등 지형지물 전략적 활용


소나기 속 불화살·기병은 숲 속에서도 보병 유린
지형 등 고려한 한국형 전술 현대전에도 절대적

   인간이라는 동물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탁월한 환경적응 능력이었다. 단순히 주위 환경에 맞게 자신의 몸을 변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 생존전략을 펼친 것이다. 보통 맹수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가죽과 털을 몸에 붙인 채로 일생을 살아가지만, 인간은 그 맹수의 가죽을 벗겨 갑옷으로 만들어 생존 확률을 높였다. 또한, 대부분의 짐승들이 어두운 밤에 가능하면 몸을 숨겨 방어 위주의 본능을 펼쳤다면 인간은 ‘불’이라는 새로운 빛을 통제하며 어둠의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인간의 환경적응 능력은 단순히 방어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능동적으로 이를 활용해 자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수단이 됐다. 전통시대 군대의 전술도 바로 이러한 자연환경에 대한 적극적 대비와 이해로 더욱 능동적인 공격과 방어를 가능케 했다.

 

사극 ‘정도전’의 한 장면. 지금의 경남 함양인 사근내역에서 벌어진 왜구와의 전투 모습을 담은 장면. 저습지인 강가에서 양군이 맞서 싸울 때에는 수중전이나 저습지를 활용한 전술전개가 필요하지만 그런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백병전이다. 동원된 깃발과 군사의 숫자만 많다고 그림이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사극에서 제대로 된 전술전개 방식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필자제공

 

 - 자연환경의 극복이 전술의 완성이다.

 적과의 전투현장은 늘 다양한 환경조건 속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면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는 숲에서의 전투는 주로 적의 소규모 매복부대에 의해 진행되기에 이에 대항하는 전술을 미리 짜서 대응했다. 그래서 다른 말이 없이 군사 신호깃발 중 청색 소오방기를 펼쳐 지휘하면 숲 속의 소규모 매복병에 대한 방어전술이 펼쳐지는 식이었다. 반대로 검은색 소오방기가 펼쳐지면 전투지역이 물이나 늪지대라는 신호로 받아들여 수중전술을 구사해야 했다.

 특히 바람의 방향이나 지형의 형태는 전술구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조건이기에 지휘관들은 가장 먼저 척후병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 수시로 바뀌는 바람의 방향은 꼬리가 긴 군사용 깃발인 고초기를 활용해 변화를 감지했다. 그래서 전술적 승기를 잡기 위해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공격의 진행방향이 오르막이 아닌 내리막 형태의 지형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두뇌싸움을 펼치기도 하였다. 단순히 지형이 그렇게 생겼다거나 혹은 날씨가 그러하다고 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아군의 전술적 우위를 확보해야만 더 많은 군사를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사극 속 전투에는 지형지물은 물론 날씨도 전혀 고려치 않는다.

 사극 속에 등장하는 전투장면은 오로지 돌격, 또 돌격으로 이뤄지는 무자비한 육박전으로 집중된다. 그래서 적의 진영이 높은 곳에 있더라도 무조건 아군은 쫓아 올라가며 적을 공격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바람이 세차게 몰아쳐 먼지가 돌격하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더라도 무작정 적진을 향해 돌입한다. 적진이 잘 마른 풀숲 사이에 있고 바람마저 적진을 향해 불고 있으면 화공(火攻)을 이용해 적의 단단한 진형을 교란하는 것이 당연할 것인데도 오로지 돌격할 뿐이다.

 심지어 삼국시대 관련 사극에서는 갑자기 소나기가 오는 상황인데도, 적진을 향해 불화살을 쏘고 있는 장면이 연출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기병은 나무가 빽빽한 숲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에 가까워 평지 전을 택해야 하는데도, 수많은 기병이 숲 속을 멋지게 달리며 보병을 살육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기본 중의 기본인 지형지물과 날씨를 무시한 황당한 전술구사 그 자체다. 실제 그런 식으로 전술이 구사된다면 그 전투의 승패는 이미 싸우기 전에 판가름날 것이다.

 - 전통시대 전술 안에 한국형 전술이 담겨 있다.

 우리 민족은 이 땅에서 반만년의 기나긴 역사를 써내려 왔다. 그 긴 역사의 핵심에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인간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고 평하기도 하는 것이다. 요즘 전시작전통제권과 관련한 문제가 한국군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는 상당 부분 다른 나라의 교리와 훈련방식으로 우리의 군인들이 교육됐다. 바로 지금 남의 땅이 아닌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한국형 전술의 개발이 시급한 때이기도 하다. 하늘에는 스텔스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바다에는 이지스함이 방어전술을 펼친다 해도 오직 이 땅의 지형지물과 환경을 완전하게 소화하지 않고 전술이 만들어진다면 그 역시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시대의 군사사와 무예사가 고리타분한 역사 속 이야기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한국형 전술개발의 좋은 소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투의 본질과 이 땅을 사랑했던 마음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최형국 역사학 박사·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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