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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이 반짝 ‘벌벌벌~’ 고구려 저항의지 뚝

입력 2014. 05. 2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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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평양성 포위


 

당항성에서 바라본 당항진. 668년 6월 12일 당의 장군 유인궤가 이곳에 도착해 왕제 김인문을 만나 신라군의 북상 일정을 협의했다. 직후 김인문은 배를 타고 북상해 평양 근교 북쪽에서 당군 총사령관 이적을 만났다. 
필자제공

 

전쟁은 이기면 그만당군 사기진작 위한 유언비어 판 쳐

 

  668년 여름 4월 2일 혜성(彗星)이 화려한 꼬리를 뿜어내면서 오거(五) 별자리에 나타났다. 오거는 변방 장수 자리인 필수(畢宿) 위에 위치한 5개의 별로 황제의 전차(兵車)자리다. 인공 빛이 없던 시대, 밤에 하늘만 쳐다볼 수 없었던 모든 사람에게 혜성의 출현은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당 황제의 군대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사람들은 전쟁이나 개인, 특히 국왕에 관련해 혜성이란 천체가 출현한다고 봤다.

 

재앙의 피뢰침 조작

 혜성이 출현하자 당고종은 떨었고, 측근인 허경종과 그 수하들은 황제의 불안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긍정적인 해석을 늘어놓았다. ‘자치통감’은 이렇게 전한다. “허경종 등이 상주하였다. 혜성이 동북쪽에서 나타났으니 장차 고구려가 멸망될 징조입니다. (황제가 답했다) 짐이 부덕하여 하늘에서 견책을 보였는데 어찌 작은 이적(夷狄:고구려)에게 허물을 돌리겠는가?” 혜성이 황제의 하늘 전차자리를 범하자 하늘의 경고를 받았다고 생각한 그는 정전(正殿)에서 업무를 행하지 않고 보통 때보다 음식을 줄이며 음악도 철폐했다.

 만인에게 목격되는 혜성은 사회에 광범위하고 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출현 후 일련의 사건들이 그것과 관련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혜성 때문에 불안해했다는 것이 중요하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고구려가 내분과 외침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 수뇌부는 혜성을 이용해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했다.

 허경종 등 당 수뇌부는 고구려인들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 이미 유언비어를 만들어 냈다. 향후 측천무후를 위해 수많은 상징조작을 행할 그들은 이 시기의 경험이 유용한 지적자산이 됐다. 유능한 ‘정치인’들이었다. 알 수도 없는 참서(讖書)가 전하는 내용에 관한 소문들을 유포시켰고, 그것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신당서’는 시어사 가언충(賈言忠)의 언급을 이렇게 전한다. “(황제폐하) 고구려의 비기(秘記)에 900년이 못 되어 80대장이 나와 멸한다고 하였는데 (고구려 왕성) 고씨(高氏)가 한(漢)나라 때부터 나라가 있었는지 900년이 되고, (고구려 전선 총사령관) 이적(李勣)의 나이가 또 팔십입니다.” 당나라 군대의 사기를 북돋워 주기 위한 유언비어 조작이었다. 없는 말을 만들어 적을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비열한 짓이지만 전쟁이란 이기면 그만이다.

이적의 압록강 돌파

 668년 6월 초 이적과 계필하력의 군대가 압록강 도하를 앞둔 상황에서 우상(右相) 유인궤와 김유인의 아들인 숙위학생 삼광은 산동의 항구에서 신라로 향하는 배를 탔다. 6월 12일 유인궤는 현재 경기도 화성시 남양면에 위치한 당항진에 도착했다. 신라가 당과 교류하는 서해안 항구였다. 왕제(王弟) 김인문이 주재하는 성대한 의전행사가 있었다. ‘삼국사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유인궤가 황제의 칙명을 받들고 숙위 사찬 김삼광과 함께 당항진에 도착하였다. (문무)왕이 각간 김인문으로 하여금 성대한 예식으로 맞이하게 했다.” 김인문은 유인궤와 신라군이 언제 어떠한 행군로로 평양에 도달할 것인지를 협의했다.

고구려 2군 12성 항복

 6월 21일 신라왕은 총 28명의 행군장군들을 임명했다. 평양 공격을 위해 대당(大幢)·귀당(貴幢)·경정(京停)·비열성주(卑列城州)·하서주(河西州)·서당(誓幢)·계금당(?衿幢) 등 7개 사단이 북상 명령을 받았다. 고구려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신라의 군대 대부분이 동원됐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다음날이었다. 대규모 침공을 직감했는지 몰라도 신라와 국경을 접한 고구려의 12성이 당군이 주둔한 웅진부성에 항복의사를 전달했다. ‘삼국사기’는 이렇게 전한다. “6월 22일 웅진부성의 유인원이 귀간(貴干) 미힐을 보내 고구려의 대곡성(大谷城 : 황해도 평산)과 한성(漢城) 등 2군(郡) 12성(城)이 항복해 왔음을 알렸다. (문무)왕은 일길찬 진공(眞功)을 보내 축하하였다.”

 대곡성과 한성은 고구려가 무너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동시에 그들의 항복은 이적과 계필하력이 이끄는 당나라 주력 군대가 압록강을 돌파해 평양으로 진군 중이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자치통감’은 이렇게 전한다. “대행성(단동)에서 이기고 나자 여러 군사들 가운데 다른 길로 갔던 사람들이 모두 이적과 만나 나아가서 압록책(鴨綠柵)에 이르니 고려에서는 군사를 내어 막으며 싸웠는데, 이적이 분발하여 그들을 쳐서 대파한 후 도망가는 것을 200여 리를 뒤쫓았고, 욕이성(辱夷城 : 평양근처)을 뽑으니 여러 성에서 숨어서 도망하여 항복하는 자들이 이었다.”

 계필하력의 돌궐계 기병군단과 이적의 당나라 주력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 진격하자 고구려 군대가 무너졌고, 수많은 포로들이 발생했다. 압록강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200리 구간에서 돌궐계 기병들은 도주하는 고구려인들을 양 떼처럼 몰고 다녔으리라. 그러한 가운데 상관의 눈을 피해 몰래 당에 투항하는 자들이 이어졌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668년 6월 29일 조에 당나라 장군 이적이 평양성 북쪽 20리에 위치한 영류산(?留山)에서 김인문을 만나는 모습이 보인다.

 7월 16일 신라군 선발대가 평양성 부근에 도착해 고구려 군대와 전투가 벌어졌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비열성주행군총관(卑列城州行軍摠管) 3인 가운데 하나로 나오는 대아찬 문영(文穎)이 그 부대의 지휘관이었다. 원산·안변에 위치한 ‘비열성’ 사단은 마식령을 넘어 평양으로 곧장 와서 신라 본대보다 2개월 이상 빨리 싸움을 시작했다. 비열성 사단은 평양 인근 사천(蛇川)의 들판에서 승리를 거뒀다.

신라 비열홀 사단과 돌궐기병

 비열성의 병사들 가운데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淵淨土)를 영주로 모시던 고구려인들이 많았다. 665년 말 남건·남산이 삼촌의 영역인 원산·안변지역을 공격했던 것 같다. 12개 성 가운데 4개 성이 황폐화됐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끌려갔다. 666년 12월 연정토는 비열성 등 8개 성에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했다. 비열성의 병사들 가운데 고구려 내전에서 가족을 잃은 자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평양 함락을 위한 첨병이 됐다. 물론 그들이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7월 초반 당군의 선발대인 계필하력의 돌궐기병 사단이 평양성에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자치통감’은 이렇게 전한다. “계필하력이 먼저 (돌궐)군사를 이끌고 평양성 아래에 도착하고, 이적의 군사가 그 뒤를 이었다.” 고구려군은 돌궐기병의 견제로 신라군 선발대를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으리라.

 기병은 성벽을 넘을 수 없지만 평양성을 구원하러 오는 고구려군들을 차단할 수 있다. 그들은 평양성을 외부의 지원으로부터 철저히 고립시키려 했고, 나아가 평양성에서 문을 열고 나올지도 모르는 고구려 기병들의 급습을 막아내려 했으리라. 돌궐기병이 평양성 주변의 제륙권을 어느 정도 장악해 가자 8월 이적의 중국인 보병 본대가 평양성을 포위했다. 하지만, 고구려의 저항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평양성 앞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것 같다. 8월 비열도(卑列道) 행군총관 당나라 장군 유인원이 고구려군과 싸워 패배했던 것 같다. 그는 고구려군의 힘에 눌려 진격을 머뭇거렸고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자치통감’은 이렇게 전한다. “8월 9일 비열도 행군총관 유인원이 고려의 정벌에서 머뭇거렸다는 죄에 연좌되어 요주(운남성)로 유배되었다.”

 평양성 주변을 완전히 장악한 후 산동에서 막대한 식량과 장비를 적재한 배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이 배에서 내렸고, 그리고 식량과 장비를 평양성 앞으로 운반할 수 있었으리라. 당고종이 고구려를 멸망시켜 위대한 아버지 당태종 그늘에 가려진 자신을 드러낼 순간이 도래했다.  
<서영교 중원대 한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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