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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오리 소녀들 펜 대신 총을 잡다

기사입력 2014. 05. 19   17:53

<10>문인순 소녀병의 해군 모자

소년·소녀병 약 3만명  6·25전쟁 참전해 활약  일평생 나라사랑 실천

 

  ‘소녀병’ ‘군번 91073’ ‘해병대 제4기’ ‘한국 최초의 여군 해병대’ ‘독도지킴이’ ‘시인’.

 고(故) 문인순 여사에게 살아생전 붙여졌던 수식어다. 전쟁기념관 3층의 여군실 한편에 전시된 해군 모자, 일명 ‘빵모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모자 옆에 전시된 사진 속 앳된 얼굴은 하얀 해군 모자만큼이나 언제나 환하게 빛나고 있다.

 ‘빵모자’는 당시 해군 중사 이하 병사들이 일상근무나 작업 시에 사용한 B형 정모를 부르는 말로, 전투 시 철모를 이 위에 착용하면 머리보호대 역할이 가능하고 해난 조난 시는 물받이용 도구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참고: 한국의 군 복식 발달사)

 낙동강 전선이 위협받던 1950년 8월, 제주여중 학도호국단 간부였던 그녀는 고향의 여성 126명과 함께 해병에 입대했다. 당시 문학소녀의 꿈을 안고 열심히 공부하던 그녀의 나이는 징집 나이도 되지 않는 겨우 열일곱이었다. 전쟁은 이렇듯 아름다운 꿈만 꾸기에도 부족한 꽃 같은 우리의 누이들에게도 총을 들게 할 만큼 참혹한 것이었다.

 이후 그녀는 경남 진해에서 40일간의 훈련과정을 수료하고 해군본부 인사국에 배속됐고, 1951년 5월에 상병으로 전역했다. 전역 후에도 고인은 독도수호대에 가입해 독도지킴이로 활동하는가 하면, 7년 동안이나 해군 제주방어사령부 장병들의 옷을 수선해 주기도 했다. 2004년에는 시집과 수필집을 펴내 소싯적 문학소녀의 꿈을 끝내 이루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소년·소녀병은 징집 대상자가 아니었음에도 국가를 수호하겠다는 숭고한 이념으로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원이 참전했다. 그 중 2500여 명이 고귀한 생명을 나라에 바쳤다. 전쟁 동안 그들은 낙동강 방어 전투를 시작으로 다부동전투, 영천전투, 안강·기계전투, 인천상륙작전 등 주요 전투에 참가했다. 한창 공부할 시기를 놓쳐버렸기 때문에 이들 소년·소녀병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대부분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다.

 혼란의 시기에 그들은 어린 나이에도 일신의 안위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했던 진정한 선각자들이었다. 소년·소녀병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에게 애국심과 국민의 본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고인은 생전 한 출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소회를 남겼다.

 “50여 년 넘기고 넘긴 고갯길이 원망도, 한도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모든 것을 추억에 담아 이 책 한 권으로 ‘나는 예쁘고 풍요롭고 웃으며 살았노라’고 세상에 말을 한다.”

 마음과 몸을 다해 일평생 대한민국 사랑을 실천했던 그녀의 용기와 헌신에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양창훈·전쟁기념관 유물팀장>

 ■ 수집대상: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쟁과 관련한 문서·무기·장비·장구·복식·상장·훈장·편지·그림·일기·책·생활용품과 전쟁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 일체
 ■ 기증 문의:02-709-3056 (전쟁기념관 유물관리팀)


사진 < 전쟁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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