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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대신 붓 들고 전선을 누볐다

기사입력 2014. 04. 29   09:29

<8>故 우신출 화백의 종군 스케치화

6·25 당시 나이 40세, 자발적 종군화가로 나서
파괴된 시가지 등 전쟁의 참화 사실적으로 그려
그림 89점·종군일기 6점…2011년 아들이 기증

 

 

   고(故) 우신출(사진) 화백은 경상남도 문교사회국 학무과 장학사 겸 문화계장으로 근무하던 중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학생체육대회에 선수단을 이끌고 참석했다가 6·25전쟁을 만났다. 부산으로 돌아온 그는 전쟁 발발 3개월 후인 9월에 40세의 나이에 자발적으로 종군화가의 길로 나섰고, 유치환을 대장으로 하는 부산 ‘문총구국대’ 소속의 종군문예단의 일원이 됐다. 당시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위험한 전선에 목숨을 걸고 직접 종군한 화가들은 많지 않았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낙동강에서의 총반격을 계기로 서울이 수복되자 국군은 38도 선을 넘어 북진했다. 우신출은 9월 28일 부산에서 출발해 국군 제3사단에 배속돼 동해안을 따라 종군했다. 그는 경주-안강-포항-영덕-울진-주문진-고성을 거쳐 금강산 온정리에 도착했고, 계속 북진해 장전항과 통천군 흡곡면을 지나 원산 앞까지 나아갔다.

우 화백은 종군과정에서 주문진, 양양, 고성 등 전쟁으로 파괴된 시가지의 모습과 전신주를 보수하거나 무너진 다리를 고치는 공병들의 활동, 계속된 행군 속에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국군장병의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또, 외금강과 흡곡의 호반 등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스케치로 그려냈다.

 그러나 국군의 원산 진격을 앞두고 적이 완강히 저항하자 우신출과 종군화가단은 안타까운 귀로에 올라야 했다. 그들은 진부령을 거쳐 인제-홍천-춘천을 지나 서울로 들어왔다. 그가 돌아와 본 서울은 완전히 파괴된 시가지뿐이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종각은 다 무너지고 종만 남은 보신각의 모습, 부러진 전신주, 무너진 건물더미만 남은 참담한 을지로의 모습 등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의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은 폐허 그 자체였다.

우 화백은 총 대신 붓으로 전선을 누비며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우신출은 1912년 부산 출생으로 종군화가로서의 활동 이후에도 왕성한 화필 및 교직 생활을 하다 1991년에 작고했다. 우신출이 그린 스케치화는 위험한 전쟁 상황에서도 전장의 상황을 진솔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사료적 가치로서도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고인의 아들인 우성하씨는 부친의 뜻을 기리고자 지난 2011년 종군스케치화 89점과 종군일기 6점을 전쟁기념관에 기증했고, 현재 기증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홍희 전쟁기념관 학예연구관> 

 

 

■ 수집대상: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쟁과 관련한 문서·무기·장비·장구·복식·상장·훈장·편지·그림·일기·책·생활용품과 전쟁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 일체

■ 기증 문의:02-709-3056 (전쟁기념관 유물관리팀)진군(동해, 1950. 10. 2)보병의 오분간 휴식(19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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