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사극 속 군대이야기-오류와 진실

구경도 못해 본 신상, 전투신의 감초로…

입력 2014. 04. 2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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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둥근 화로의 불, 뭔가 이상하다


전통시대 마른 갈대 묶은 ‘섶’ 활용 이동 쉽고 점화·소화 등 편리 현대 사극선 가스 파이프 연결 사용

 

 

  전통시대에 지배 권력의 표상에는 다양한 것이 있겠지만, 그중 어두운 밤을 지배하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는 역시 불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지금은 한밤중이라도 여기저기 전깃줄이 연결돼 불야성을 이루고 전깃줄이 없는 곳에도 가스등이나 자가발전을 통해 대낮보다 환한 밤을 만들지만, 전통시대에 어둠 속에 빛은 권력 그 자체였다. 특히 대궐이나 군영은 항시 철통같은 방어태세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전통시대 가장 환한 밤 공간은 핵심권력과 맞붙은 곳이었다. 그런 밝음을 유지하기 위해 작은 등이나 횃불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그런데 군사작전이 펼쳐지는 야전의 전투 환경에서 빛은 오히려 적에게 노출될 수 있는 장애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반적인 화로나 등이 아닌 특별한 조명 수단이 필요했다.

 

 

 - 전통시대 야간군사작전 시에는 ‘섶’이 활용됐다.

 조선시대 중 군사 조명 수단과 관련해서는 섶이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됐다. 옛 속담에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든다’라는 말처럼 섶은 가장 불길을 강하게 일으킬 수 있는 도구였다. 특히 섶은 완전히 마른 갈대를 조밀하게 지름 30㎝ 정도로 묶어 2m 이상으로 길게 만들어서 사용했기에 일반 횃불보다 몇 배는 밝은 빛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또한, 빛을 일시에 소거할 상황이 발생하면 섶을 거꾸로 뒤집어 땅에 눌러 버리면 순식간에 빛을 없앨 수도 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야간군사훈련에서 가장 자주 시행했던 훈련 중 일종의 등화관제처럼 횃불을 한꺼번에 켜서 시야를 확보했다가 동시에 불을 꺼 적에게 노출을 방지하는 연거(演炬-일제히 불 올리기)와 부거(?炬-일제히 불 끄기) 훈련에서 섶이 활용됐다. 특히 섶은 갈대를 묶은 것이라 장작이나 나무보다 훨씬 가볍고 야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군사작전에 가장 많이 활용됐다. 또 조선시대에 국왕이 야간에 활을 쏘거나 급하게 궁궐 안을 이동할 때에도 작은 등보다는 섶에 불을 붙여 주변의 시야를 완전하게 밝히고 움직였다.



 - 사극 속에는 정체불명의 화로가 불타오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사극 장면 중 밤의 조명을 떠올리면 작은 호롱불이나 등이 전부다. 그리고 야외에서는 어김없이 시대를 초월하고 화로가 등장한다. 둥근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모양이나 혹은 다리 없는 둥근 냄비에 삼발이처럼 나무 받침을 만들어 불을 피우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심지어 야전에서도 어김없이 진형을 구축하고는 주변 둥근 화로에 불을 피우고 보초를 서는 장면이 역사적 진실인 양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 그래서 적이 야간기습이라도 하면 거의 이런 형태의 화로가 엎어지거나 굴러다니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시대 야전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화로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먼저 무게가 무거워 수송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야전에서 그 정도의 빛은 적에게 아군의 모습을 노출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예 이런 형태의 화로는 갖고 가지도 않았다. 또 야간에 군사신호 부분은 소리 없이 진행했기 때문에 각종 깃발에 작은 등을 달아 신호를 주고받을 때도 검은 휘장으로 등을 감싸 멀리서 확인할 수 없도록 사전에 차단했을 정도로 야전에서 빛의 통제는 핵심사안이었다.



 - 역사적 오해는 사극의 창조적 발상에서 출발한다.


 현재 사극에서 활용하고 있는 화로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나무가 타는 것이 아니라 가스관을 연결해 불의 크기를 조절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가 따로 불을 관리하지 않아도 일정한 불빛이 쉼 없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굳이 군대에서의 야전 경험뿐만 아니라 레포츠로 야영이 유행하고 있어 나무를 이용해 불을 피워 보면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가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사극의 그림 만들기를 위해 만들어 낸 매우 창조적인 가스 랜턴에 해당하는 것이 요즘 사극 속 화로의 모습이다. 멋진 그림을 위한 사극이 아니라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는 사극 속 살아 있는 군사사의 모습을 보고 싶다.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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