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이동진의 지구 한바퀴

저 멀리서 한국말이 내 귀로 빨려 들어왔다

이승복

입력 2013. 11. 2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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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청년 이동진의 지구 한바퀴<62> 5개월간의 여행 끝…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다


이동진 씨는 경희대 건축학과를 다니던 중 해병대에 지원해 경북 포항 1사단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전역 나흘 만에 히말라야 곤도고로라(5690m) 등정에 성공,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울진~독도 수영 횡단(240㎞), 아마존 정글 마라톤 완주(222㎞), 미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6000㎞) 하는 등 도전정신을 끊임없이 발산하는 젊은이다.→

몇 달 동안 들어보지 못한한국말이 들려오자속삭이는 소리마저 내 귀로 정확하게 들어와 큰 울림이 돼 진동한다… 겉으로 아무리 치장해도껍데기가 벗겨지는 순간 아무것도 안 남게 돼 있다그러니 속을 채워야 한다



 방콕 공항 출발 층에 있는 벤치 한쪽에 누워 잠이 들었다. 3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공항철도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 데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출근하는 모습이 한국과 비슷하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여기저기를 알아보니 신혼 여행지로 유명한 파타야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파타야까지 4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복잡하면서도 경상도의 어느 시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용달차처럼 생긴 택시를 타고 파타야 해변에 도착한 순간 쓰레기가 둥둥 떠 있는 더러운 바다를 보고 실망이 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깨끗한 해변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물어보니 배를 타고 약 50분 정도 걸리는 꼬란 섬이 있는데,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섬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했다. 한화로 1000원 정도 하는 탑승권을 사 배에 몸을 실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섬이었는데 5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꼬란 섬. 내가 생각했던 에메랄드 빛 바다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섬까지 가는 뱃길 중간 중간에도 많은 쓰레기가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오염된 파타야 해변 보며 실망감이…

 어제 둘러본 방콕도 그렇게 깨끗한 편이 아니었지만, 바다까지 더러웠고 신혼 여행지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들이 잘못된 정보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일까. 하지만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가 단지 물가가 싸다는 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많은 호객꾼이 오토바이 렌트를 권하고 있었다. 30바트를 주고 오토바이를 타고 꼬란 섬의 가장 유명한 해변으로 갔다. 오토바이로 5분 정도 걸리는 해변에 도착해 수많은 관광객으로 꽉 찬 것을 보고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걸음에 바다로 뛰어갔다. 그러나 여기에도 쓰레기가 둥둥 떠다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 나게 그 물 속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푹푹 찌는 습기 가득한 날씨였다. 아프리카의 깨끗하고 푸른 바다를 생각하며 갔던 탓일까. 도착한 지 한 시간 만에 다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15분도 머물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사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겉으로만 훑어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절대로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방콕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돈을 아낀다고 세 시간 동안 걸어서 파타야 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무엇이 이곳을 이렇게 유명하게 만들었을까. 수백 개의 호텔과 관광업체, 수많은 가게가 형성된 역사는 굉장히 오래됐을 것이다. 분명히 내가 보지 못한 더 좋은 곳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훗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동남아로 여행을 간다면 이쪽 바다로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다시 공항으로 갔다. 출국 2시간 전. 제주항공 수속 카운터로 가서 수속 절차를 밟고, 게이트로 가는 순간 몇 개월 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한국말이 저 멀리서 내 귀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산행답게 여기저기서 부산 사투리도 많이 들렸다. 꿈꾸는 듯했다. 내 귀로 들리는 한국말 전부가 귓가에서 울려 퍼지면서 장단을 맞췄다. 속삭이는 소리마저 내 귀로 정확하게 들어와 큰 울림이 돼 진동한다.

 영어를 듣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했던 것이 한국어는 작은 속삭임마저 정확하게 들리다니 놀라웠다. 한국 사람을 만난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한국이 그리웠다. 비행기에 올랐다. 승무원이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한국어로 기내 방송을 한다는 자체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제 5시간 후면 한국에 도착한다. 정말로 돌아가는구나. 눈을 감았다. 비행기는 서서히 이륙 준비를 마치고 엔진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성장을 위해선 끝없는 변화 필요

 정말 나는 한국으로 돌아간다. 주마등처럼 그동안 내가 외국에서 생활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이지 길면서도 짧은 시간이었다.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물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이상 무언가의 결핍들이 항상 내 곁을 따라다녔다. 한국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고,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외에 다른 무언가 일 수도 있다. 한국은 많이 변했을까. 친구들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나 또한 한국에 돌아가면 그동안 배운 것들을 금세 잊어버리고 한국에 적응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혼자서 5개월은 내 인생에서 참으로 길었다. 겉으로 아무리 치장을 해도, 껍데기가 벗겨지는 순간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안 남게 돼 있다. 그러니까 속을 채워야 한다. 아무리 벗겨도 없어지지 않는 내가 되도록 나를 더 크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게 됐다.

 한국을 떠날 때 아무것도 없이 떠나려고 했다. 아는 사람도 없이 새로 시작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힘들었다. 반대로 그렇게 시작해서 나가 보니 나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기존의 나를 버린다는 것은 아무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훈련이 정말로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워내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겉치레와 같은 모든 욕심을 버리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니까.

 과연 나는 모든 것을 가졌을 때 모든 것을 비워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겠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성장하는 것이 더 많은 것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하면서 경험을 할 수 있고, 자극을 통해 더 많은 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독한 놈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하려고 한다면, 분명한 것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더 커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바꿔야 한다. 그동안의 여행이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킨 것처럼 한국에 가서도 지금의 변화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이승복 기자 < yhs920@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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