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영화 속 전쟁이야기

태평양전쟁 일본 패망 이후 전후 처리과정 다뤄

입력 2013. 10. 2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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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엠퍼러’


美 정부·여론은 일왕의 처벌 원했지만 일본은 자위 위한 전쟁으로 책임 회피 결국 전쟁책임 처벌은 처음부터 ‘삐걱’

 

영화 ‘엠퍼러’ 포스터.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의 패전으로 헌법에 의해 정식으로 군대를 가질 수 없는 국가이지만, 헌법을 고쳐 정식으로 군대를 갖고자 하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또한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를 미화하고, 태평양 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라 일본의 자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한술 더 떠 아시아를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하는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도 말한다.

 8월 15일을 ‘패전(敗戰)’이라고 하지 않고, ‘종전(終戰)’으로 부르는 것 역시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심리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일본 패망 이후의 전후 처리 과정을 다루고 있는 영화 엠퍼러(Emperor, 2012)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에 미국은 승전국의 자격으로 일본에 진주했다. 일본을 어떻게 통치해야 할 것인가? 점령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토미 리 존스 분)는 일본의 정신적 지주 쇼와 천황(히로히토 일왕) 처리를 놓고 고심한다. 맥아더는 내심 공산주의를 막고 일본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히로히토 일왕의 힘을 빌리고자 했다. 하지만 미 정부와 여론은 히로히토 일왕에 대한 보복을 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너 펠러스 준장(매튜 폭스 분)은 맥아더로부터 히로히토 일왕의 전쟁책임에 대한 유무죄 여부를 밝히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펠러스는 히로히토 일왕의 전범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일왕의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끝끝내 주인공은 유무죄 여부를 밝혀내지 못한다. 모두들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 여론이 일왕의 처벌을 원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왕이 과연 일본의 전쟁을 막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내지 못한다. 사실 일본인 여인과 사랑에 빠져 있었던 펠러스는 일본이라는 국가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또한 그의 상관 맥아더는 일왕을 살리면서 일본을 통치하려는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펠러스는 조사 과정에서 갈등에 빠지며, 주변으로부터 친일파가 아니냐하는 비난까지 받게 된다.

 결국 펠러스는 일왕이 국가의 수장으로서 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최종보고서를 준비한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일왕의 측근인 기도 고이치가 조용히 찾아와 항복 결단에는 일왕이 있었음을 진술한다. 또한 펠러스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애인이 이미 공습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정심이 작용해서일까? 펠러스는 순탄한 일본 점령을 위해 일왕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선회하게 된다. 전범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확실히 전쟁을 끝낸 거는 일왕이라는…. 보고를 받은 맥아더는 일왕을 불러 대면하게 되고, 그동안의 왕실 규칙을 깨고 함께 사진을 찍게 된다. 이후 일왕은 더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인간선언’을 하게 된다.

 영화는 곳곳에서 일본을 이해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일왕의 측근들은 진술과정에서 일왕을 평화주의자로 묘사했다. 일왕도 어찌할 수 없었다며, 전쟁 책임을 군부로 몰아갔다. 그러면서 일본 역시 여타 제국주의 국가들의 선례를 따랐으며 그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며 전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맥아더는 일왕을 만나 일본이 다시 일어날 방법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폐허가 된 도쿄를 보여주며 마치 일본이 이러한 역경을 딛고 오늘날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듯하다. 역설적으로 우리의 6·25전쟁은 일본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대국이 되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일본적 시각을 내세워 이해해 달라고 하는 이 영화는 우리에게 불편함을 안겨준다. 영화 제목 ‘엠퍼러’는 맥아더가 아니라 일본의 히로히토 왕을 의미하지 않았을까. 맥아더와의 협력을 약속하면서 그는 1989년까지 살아남았으며, 일본은 오늘날까지 일왕을 국가의 수장으로 여기며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많은 연구에서 히로히토 일왕은 군의 통수권을 지닌 최고 사령관으로서 전쟁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관여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당시 일본의 수장이었던 일왕을 처벌하지 않고, 천황제를 존속시킴으로써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처벌은 처음부터 삐걱거리게 되지 않았을까. 결국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돼, 일본은 여전히 전쟁책임을 회피하며 주변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호섭 대위·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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