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영화 속 전쟁이야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산다’

입력 2013. 09. 2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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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풀 메탈 자켓


베트남 전쟁서 미군은 누구와 왜 싸우는지 의문에 시달려  전장의 현실을 군인들 관점서 지극히 현실적·사실적 묘사

 

1950년대 중반부터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한 미국은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미국은 남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막대한 자금과 전쟁물자, 그리고 병력을 동원했지만 끝내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1973년 철수하고 만다. 그렇기에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다룬 미국의 영화 역시 무겁고 암울한 편이다. 그 중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풀 메탈 자켓’(1987)은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는 미 해병대의 기초 군사 훈련에서부터 시작된다. 갓 입대한 신병들이 고된 훈련을 거쳐 해병대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8주간의 군사 훈련은 훈련강도부터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들에게는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연대의식 등 군인으로서 필요한 기본 자질이 요구된다. 그런데 영화는 그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신병들의 인간성은 점점 말살되고 그들이 싸우는 기계로 획일적으로 변해가는 극단적인 모습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신병들은 기초 군사 훈련을 통해 강인한 해병대원으로 재탄생한다.

 그렇게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다시 태어난 해병대원 중 한 명인 주인공 조커(매튜 모딘 분)는 베트남에 주둔해 있는 군 보도국에서 전장 상황을 보도하는 임무를 담당한다. 그 과정 중 북베트남군의 테트 공세(구정 공세)를 목격하기도 했다.

 1968년 1월 30일, 베트남의 대명절 음력설에 북베트남군은 휴전을 파기하고 남베트남 주요 도시들에 대해 기습적으로 전면 공격을 감행했다. 미군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를 잘 막아냈고, 북베트남이 야심 차게 준비한 테트 공세는 북베트남군 및 베트콩의 완패로 끝나게 됐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미 언론은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을 공격해 미 대사관을 점령하는 모습을 경쟁적으로 취재하면서, 미국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베트남에서의 전황과는 상관없이 반전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고, 현지에서 싸우는 미군은 여론과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됐다.

 한편 조커는 전투부대에 자원해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조커의 소대는 밀림을 지나 한 도시에서 시가전에 돌입하게 되고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저격수에 의해 동료들이 죽어나간다. 그런데 힘겨운 전투 끝에 겨우 저격수의 정체를 찾아내고 보니 뜻밖에도 나이 어린 소녀였다. 이 설정은 미군이 베트남에서 싸웠던 상대가 과연 누구였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낸다. 실제로 베트남에서의 미군은 누구와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에 시달렸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게릴라 전술은 미군으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게 만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베트남에서 싸우는 미군은 과연 그들이 올바른 전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올바른 전쟁인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열악한 전장 환경 속에서 그들의 마음은 점점 황폐해 갔던 것이다. 주인공인 조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커의 심정은 처음엔 이중성을 띠었다. 조커의 헬멧에는 ‘죽이기 위해 태어났다(Born to Kill)’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지만, 그의 가슴엔 ‘평화(Peace)’를 상징하는 배지가 달려 있었다. 그러다 전투를 거치면서 그의 마음속엔 광기가 자리 잡는 공간이 커져 갔다. 이렇듯 영화는 전투를 실제로 겪으면서 변화해 나가는 병사들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영화는 누가 이기고 지는지, 누가 선이고 악인지를 구분해 보여주지 않는다. 오로지 전장의 현실을 군인들의 관점에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조커의 독백에서도 잘 드러난다. ‘난 살아 있고 두렵지 않다. 살아 있는 게 기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산다.’ 어찌 보면 이 독백이야말로 전장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솔직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전쟁에 대한 현실적 묘사는 전쟁의 현실을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바로 알고 평소에는 이에 대비하고, 전시에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다져야 할 것이다.


 



<심호섭 대위·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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