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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역병이 적벽대전 승패 갈랐다

기사입력 2013. 07. 09   17:59

조조가 말하길

적벽 전투는 전염병이 생겨 내가 배를 불태우고

스스로 물러난 것인데뜻하지 않게 주유가 이런 명예를 얻었다

 

조조 주장 지지하는 이유?

진수의 ‘삼국지’에 따르면조조의 군사들, 겨울로 접어들자 사기 ‘뚝’

설상가상 질병마저 돌아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

 

역병, 조조군의 패인 됐을 수도

고온다습한 남쪽 지방 역병 잦았고기후에 적응한 남쪽 사람보다 북쪽 사람들 발병 확률 높아

 

 

“적벽에서의 전투는 전염병이 생겨 내가 배를 불태우고 스스로 물러난 것인데 뜻하지 않게 주유가 이런 명예를 얻었다.” 조조가 손권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강표전’은 전한다. 적벽전투에서 제갈공명의 남동풍으로 진 것이 아니고 자기가 스스로 배를 태운 다음 철수했다는 주장이다. 조조 스스로는 자기가 패한 전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지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대표적인 작가로 진수가 있는데 그가 쓴 ‘삼국지’에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조조가 적벽에 도착해 촉오 연합군과 싸우려고 진을 쳤을 때 역병이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역병으로 중간간부와 병사들이 많이 죽자 조조가 자발적으로 후퇴했다는 것이다. 고대전쟁에서는 겨울에 전쟁을 벌이려고 하지 않았다. 기후조건상 전투하기가 어려웠지만 패배하면 후퇴도 어려워 자멸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에 오나라를 쳐들어온 조조의 군사들은 겨울로 접어드는데도 별다른 상황변화가 없자 사기가 떨어졌다. 여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질병마저 돌자 더는 전투할 여력이 없게 됐다. 조조가 서둘러 철수를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진수의 ‘삼국지’ ‘가후전’에서 배송지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쓰고 있다. “적벽에서의 패배는 운수 탓이었다. 역병이 크게 유행했기 때문에 공격하고자 하는 기세가 꺾였고, 따뜻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와 불길을 크게 일으켰다.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으로 사람의 탓이 아니다.”

 진수가 주장하는 역병이 조조군의 패인이 됐을 수도 있다. 춥고 건조한 북쪽 지방보다는 습하고 고온인 남쪽 지방에 역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고 또 적응이 된 남쪽 지방 사람보다 북쪽 지방 사람들은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그렇다 보니 북쪽 사람들은 남쪽 지역을 ‘장려(??)의 땅’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정말 진수의 주장대로 조조가 제갈공명의 동남풍으로 인한 화공에 진 것이 아니고 역병으로 후퇴한 것이라면 조조의 병사들은 어떤 역병에 걸렸던 것일까? 적벽 부근의 장사에서 발굴된 마왕퇴한묘(馬王堆漢墓)의 미라에서 간(肝) 주혈흡충의 알이 검출됐다고 한다. 이로 미뤄 조조군의 역병은 바이러스성이 아닌 기생충에 의한 흡혈충병일 확률이 높다.

 흡혈충병은 날씨 조건상 무덥고 습도가 높은 여름에 유행한다. 적벽대전은 한겨울에 벌어졌지만 조조가 강남으로 쳐들어간 것은 여름이었다. 흡혈충병이 장수들이나 간부들보다 병사들에 만연했던 것은 당시의 보급체계 문제 때문이었다. 병사들은 주식인 쌀뿐만 아니라 육류나 채소류 같은 부식도 섭취해야만 단백질·비타민·무기질 등의 영양을 고루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부식들까지 챙기려면 보급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진다. 따라서 고대 전쟁에서는 현지조달 원칙을 위주로 했다. 양자강에 진을 친 조조군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부식은 강에 서식하는 물고기와 민물조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기생충의 숙주가 되기 쉽다. 기후와 흡혈충병에 대한 적응력이 있었던 오나라 군사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조조의 군사들에게 이 병은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고온 다습한 환경에 역병까지 발생하면서 수많은 병사가 죽어가자 쉽게 결전을 벌이지 못하고 적벽에 진을 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적벽에 진을 치던 조조군은 결국 제갈공명의 남동풍에 의한 화공에 거의 전멸에 이르는 처절한 패배를 당하고 만다.

 자, 적벽대전이 역병으로 조조군이 진 것인지, 아니면 남동풍에 의한 화공으로 진 것인지 결론을 내려 보도록 하겠다.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 침공전쟁에서 초반 전염병으로 인해 모스크바에 도달한 병력은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폴레옹 전쟁이 추위 때문에 졌다고 기록하지 전염병으로 졌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위나라의 역사관으로 기술한 진수의 ‘삼국지’ 등은 조조가 역병 때문에 진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 화공으로 인한 전멸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 주요한 이유였다. 그렇다면 적벽대전의 승패를 가른 것은 역병이 아닌 제갈공명의 남동풍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T I P-적벽대전이 가져온 세 가지

 

 북의 조조-강남의 손권-형주의 유비

 위·오·촉 삼 국천하삼분지계


  적벽대전이 가져온 가장 큰 결과는 무엇일까?

 첫째, 조조의 북쪽 세력이 70년 정도 감히 양자강 이남지역을 넘보지 못하게 됐다. 둘째, 승리를 거둔 오나라의 손권은 강남 지배를 굳히면서 강국으로 부상했다. 셋째, 그때까지 떠돌이 신세였던 유비는 형주 일대를 평정하면서 세력기반을 확보했다. 적벽대전을 계기로 중국이 삼분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아울러 중국의 경계가 양자강 이남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적벽대전이 벌어지기 전 제갈공명은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유비가 조조, 손권과 함께 세력균형을 이뤄야만 정세가 안정될 뿐만 아니라 중국 통일의 꿈을 꿀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제갈공명의 뜻대로 적벽대전은 위, 오, 촉 삼국으로 천하삼분을 만들었고 이후 흥미진진한 삼국지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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