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공군

‘하늘의 문’을 연 대한민국 “Hi~ Sky” 우주와 내일을 약속하다

김용호

입력 2013. 02. 2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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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김승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과 공군사관학교 염규빈·윤지원 생도


10년 공부 ‘스페이스 클럽’ 가입‘발사체 독자 개발’ 기반도 확보제2의 영토 ‘우주경영시대’ 열려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제2의 영토’ 우주경영시대를 활짝 열었다. 세 번째 도전에서 그 꿈을 이뤘다. 지난달 30일 나로호가 마침내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나로호가 우주시대 개척에 소중한 디딤돌 하나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당당히 우주선진국 그룹인 스페이스 클럽 회원국에 이름을 올렸다. 이 여세 속에 ‘발사체 독자 개발’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우주 선진국과 기술력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국민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아직도 우리 국민은 나로호가 불을 뿜으며 솟구쳐 오르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앞으로 미래 지속 가능한 우주개발을 위해 항공우주 비전 2040을 제시하고, 나로호의 발사를 진두지휘하며 대한민국의 첫 우주시대를 연 장본인이 바로 김승조(62)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이다. 새내기 항공인을 꿈꾸는 공군사관학교 염규빈(4학년)ㆍ윤지원(3학년) 생도가 ‘항공우주분야 대부’로 통하는 김 원장의 접견실을 찾았다.

 

 

 

 

 

김승조(가운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이 접견실에서 공군사관학교 염규빈(왼쪽)ㆍ윤지원 생도에게 ‘항공ㆍ우주비전 2040’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염규빈 생도 : 나로호 성공, KARI(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김승조 원장 : 10년 동안 제가 쭉 해온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서울대 항공우주공학 학부 교수로서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습니다. 나로호 발사 사업은 국가나 국민이 빨리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추진했는데 준비가 안 돼 있었습니다. 그동안 나로호 발사에 매진해 온 연구원들은 굉장히 힘들었고, 이제 정말 속 시원하지요. 10년간 막힌 체증이 확 뚫렸죠.

 

 윤지원 생도 : KARI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큰 임무는?

 김 원장 : 당시 KARI는 위기였습니다. 2번 실패, 3번째는 무조건 성공하라는 특명을 받았어요. 로켓 발사 기술이 어렵지만, 오래된 기술이고 우주개발 선진국인 러시아와 함께 해서 세 번째 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게 고장이 났어요. 연기는 어떻게 보면 최악이에요. 고장 원인이 러시아 쪽이라 안심을 했는데, 두 번째는 우리 부품이 원인이었어요. 세 번째는 완전히 박수 칠 때까지 안심하지 못했어요. 어쨌든 내가 원해서 원장으로 왔는데, 나로호 발사가 연기됐을 때 편하게 교수나 할 걸 하는 후회도 했지만 성공하니까 정말 좋았어요.



 염 생도 : 우주기술, 왜 중요한가요?

 김 원장 : 우주기술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기술의 활용범위도 매우 넓습니다. 기상 예보나 위성방송, 내비게이션, 위치정보 서비스 등 인공위성의 역할은 무궁무진합니다. 또 금융거래 정보, 항공기·선박의 항행 및 통신, 에너지 및 자원 탐사에도 활용되는 등 미래 산업의 토대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역할을 합니다.

 

 윤 생도 : 특별히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고충이나 도전은?

 김 원장 : 나로호 발사는 전 국민이 관심을 두고 있고 정부에서도 이번 정권의 과학기술 마지막 성패가 당신에게 달렸으니 꼭 성공하라고 해서, 물론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습니다. 하지만 두 번 연기한 후 지난해 초부터 계속 활기차게 살려면 나로호만 쳐다보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나라 우주항공산업이 순항할 수 있도록 항공·우주 비전을 제시하고 달 탐사선 발사를 앞당기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자나깨나 2030년에 뭘 할까 밑그림을 상상하며 미래의 로켓 형상을 머릿속으로 그렸어요. 매일 새벽 출근해서 비실비실하는 연구원(팀장 이상)을 혼냈어요. 하하하.



 염 생도 : 나로호 성공으로 대한민국이 얻은 가장 큰 결실은?

 김 원장 : 우리나라가 발사체를 독자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귀중한 기술과 경험, 그리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최대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발사체 독자개발에 필요한 발사체 설계·종합 기술, 상단 기술, 발사운영 기술, 발사장 구축 기술 등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설계부터 제작, 시험, 조립과 발사운영, 발사에 이르는 발사체 개발의 전 과정을 러시아 기술진과 공동으로 수행하면서 발사체 기술 자립에 필요한 운영체계와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발사체 1단 부분에 대해서도 30톤·75톤급 액체엔진, 1단 대형 추진제탱크 등에 대해 자체적인 선행연구를 통해 핵심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나로호 개발을 통해 국내 발사체 기술은 선진국 대비 46% 수준에서 83% 이상으로 향상됐고, 발사체 독자개발 기반을 확보했습니다.

 

 윤 생도 : 한국형 발사체 개발에 대한 로드맵은?

 김 원장 : 2010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발사체는 75톤 엔진이 완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시험발사를 추진하고, 3단의 한국형 발사체는 2020년, 2021년 발사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KARI는 한국형 발사체 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형 발사체 개발계획이 앞당겨진다면, 2016/17년에는 기존의 시험발사체의 성능을 높여 1단에 75톤 엔진을 장착하고, 2단에는 나로호의 고체로켓 모터를 개량한 상단을 장착해 100㎏급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발사할 수 있는 시험 발사체를 발사토록 할 것입니다. 또 2020년으로 계획된 1.5톤급 실용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3단형 한국형 발사체의 첫 시험 발사도 1~2년 앞당겨 2018/19년에 발사할 수 있도록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염 생도 : 항공우주 비전 2040에서 발사체 개발 전략은?

 김 원장 : 향후 10여 년간 우리나라가 역점을 둬야 하는 분야는 바로 발사체 개발입니다. 1세대 로켓인 나로호에 이어 2018년에 독자 기술로 개발한 2세대 한국형 발사체를 발사할 예정입니다. 2023년과 2028년에 각각 3세대와 4세대 발사체를 시험 발사할 계획입니다. 특히 달 착륙 무인 탐사선 개발도 앞당겨 2030년까지 세계 6대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인수위에 보고했습니다.

 

 윤 생도 : 발사체 개발 및 달 탐사계획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인력은?

 김 원장 :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항공우주 연구 인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2011년 우리나라 산학연의 우주인력은 총 2263명으로 조사됐습니다. 그 중 산업체 인력은 1073명으로 미국의 197분의 1에 불과하고, 우주기관 인력은 15분의 1 수준입니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 달 탐사 계획 등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1000명의 인력이 확충돼야 합니다. 향후 5년간 매년 200명씩 우주항공 인력이 증원돼야 우주개발 연구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염 생도 : 군 생활을 과학장교로 근무하셨는데 어떤 일을 하셨나요?

 김 원장 : 서울대 항공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방과학연구소(ADD)에 1기 과학기술장교(공군)로 들어갔죠. 주로 미사일 풍동 시설을 건설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ADD는 박정희 대통령도 관심이 많아 1년에 한두 번은 꼭 찾았습니다. 6년 근무하다 ADD를 떠나려니까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렇다고 유학을 안 갈 수는 없고. 그 바람에 서울대 교수가 됐습니다.

 

 윤 생도 : 공군의 KFX(한국형전투기개발사업),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원장 : 공군은 국회 세미나 등에서 국내개발을 주장했죠. 나로호 발사를 통해 축적된 기술력은 항공우주분야의 발전을 통해 병합-통합-연계되는 기술임을 감안할 때, 공군의 KFX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김승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김승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6ㆍ25전쟁 발발 하루 전날인 1950년 6월 24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항공공학과를 졸업한 후 1기 과학장교(공군)로 입대해 4년간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풍동 시설을 건설한 주역이다. 이후 미국의 명문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항공우주분야 최고의 실력을 갖춘 전문가로 귀국했다. 귀국 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11년 6월 임기 3년의 제8대 항공우주연구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KARI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2009년 나로호 1차 실패에 이어 2010년 2차 발사도 좌절됐다.

김 원장은 당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던 항공우주연구원에 적임자였다.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을 좋아하는 김 원장은 특유의 추진력과 친화력, 완벽함을 무기로 나로호 3차 발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3차 발사도 두 번의 시련을 겪었다. 2전 3기 끝에 지난달 30일 나로호는 전남 고흥의 나로우주센터를 박차고 우주로 힘차게 솟구쳤다. 그의 손으로 이뤄낸 나로호 발사 사업은 과학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항공우주계의 아버지로 우뚝 섰다.

 

 



 

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사진 < 정의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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