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노래의보석함

<49>‘눈이 내리네’와 ‘눈’

입력 2012. 12. 07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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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드득 뽀드득… 눈꽃 세상을 걸으며 듣고 싶다


 오늘 노래의 보석함은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가수인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와 김효근(현재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이 작사·작곡한 ‘눈(설: 雪)’을 감상하기로 한다.

‘눈이 내리네’는 1963년 아다모가 20세에 취입한 오리지널 녹음을 추천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YTPPfLceC5A&feature=fvst

1981년 제1회 에서 대상을 받은 곡인 ‘눈’은 재미성악가 메조소프라노 김여경의 노래를 추천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D98OwpAy-Mw&feature=youtu.be

① 메조소프라노 김여경② 싱어송라이터 아다모③ 연세대 김효근 교수

 눈이 내리네  “내 마음은 검게 물들었다오…”애수를 노래한 세계적 히트곡
 눈             “내 작은 발자국 남기고 싶소…”21세 경제학도가 표현한 명곡

 ▶ 세계인의 애창곡 ‘눈이 내리네’ 

 올해에는 추운 겨울이 예상된다고 예보됐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평년보다 첫눈이 빨리 내렸기 때문이란다. 이렇듯 기상학적으로 기후를 예고하는 바로미터인 눈이 인간에게는 마음을 극에서 극으로 움직이는 자극제이기도 하다. 눈을 보고 “마음이 검게 물들었다”고 비관하는 이가 있지만, “마음을 하얗게 물들였으면 좋겠다”고 낙관하는 이도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체념적인 눈 노래의 대표적인 사례는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주로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살바토르 아다모(Salvatore Adamoㆍ1943~)다. 그가 부른 ‘눈이 내리네’는 1960~70년대 전 세계적인 히트곡이었으며, 우리나라에도 번안돼 수많은 가수에 의해 불렸다.

 눈이 내리네, 이 밤 그대 오지 않을 테지
 내 마음은 검게 물들었다오
 모두 하얀 눈물 속에 유유히 제 갈 길 가고
 나뭇가지 위 새는 홀리듯 구슬피 우는구나
 그대 오늘 밤 오지 않겠지, 난 절망하네
 눈은 내리네, 무심히 도는 회전목마와 같이

 눈이 내리네, 오늘 밤 그대 오지 않겠지
 모두가 하얗다네. 절망, 슬픔, 추위, 공허
 그리고 이 가증스러운 고요함, 하얀 고독
 그대 오늘 밤 오지 않겠지, 난 절망하네
 눈은 내리네, 무심히 도는 회전목마와 같이

 아다모는 1980년 이후에는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1963년(20세) ‘당신과 영원히(Sans toi, ma mie)’ ‘눈이 내리네’, 1964년 ‘밤(La Nuit)’ 등 감미로운 히트곡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1960~70년대에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즈와 같은 전설적인 대가들에게는 못 미쳤지만,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었다. 당시 그의 ‘눈이 내리네’는 크리스마스 캐럴들을 빼고는 지구촌의 겨울에 가장 널리 울려 퍼졌었다. 일본과 우리나라에도 아다모 팬이 많았는데 그의 세 차례(’78, ’84, ’94) 방한 공연이 이를 증명해 준다.

 아다모의 이러한 성공은 감미로운 목소리와 독특한 창법으로 자작곡을 노래하는 이외에 홍보를 위한 남다른 노력 덕분이다. 즉 그는 자신의 히트곡을 프랑스어, 벨기에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스페인어, 터키어, 일본어 등으로 발표했으며, 1978년 방한 공연에서 ‘눈이 내리네’를 거의 정확한 우리말로 불러 청중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CTKlIjOcVNc)

▶ 김효근의 ‘눈’ 

 20세의 청년 아다모가 비관과 절망을 노래했던 눈 위를 21세의 한국 청년은 18년 후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며 흰 눈이 돼 산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바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3학년 학생 김효근이며, 그가 걸은 산길은 1981년 제1회 무대에서 선보인 ‘눈’이란 가곡이었다.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욱(국)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새하얀 산길을 헤매이고 싶소
 외로운 겨울새 소리 멀리서 들려오면
 내 공상에 파문이 일어 갈 길을 잊어버리오
 가슴에 새겨보리라 순결한 임의 목소리
 바람결에 실려 오는가 흰 눈 되어 온 다오
 저 멀리 숲 사이로 내 마음 달려가나?
 아, 겨울새 보이지 않고 흰 여운만 남아 있다오
 눈감고 들어보리라 끝없는 임의 노래여
 나 어느새 흰 눈 되어 산길 걸어간다오.

 “대중가요와 팝송의 범람 속에서 순수예술분야인 우리 가곡을 창작도록 해서 대학생활의 낭만과 새로운 정서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기획됐다는 이 MBC 대학가곡제에는 총 99곡이 출품됐는데, 김효근의 ‘눈’이 대상(최우수상)을 차지했다. 당시 곡의 해석자는 서울대 음대 1학년 조미경이었다.

 ‘눈’이라는 단 한 편의 가곡으로 김효근은 우리 가곡계에 작은 발자국이 아니라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면서 보기 드문 현상의 주인공이 됐다. 즉, 경제학도인 그가 작곡의 기대주로 부각된 것이고, 국내 저명한 성악가들이 ‘눈’을 무대에 올리거나 음반으로 취입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김효근은 음악계의 기대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 서울대에서 경제학 학사 및 경영학 석사를 취득한 후,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1992년부터 현재까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음악과는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 근무 중이다. 최근 그는 바쁜 일상 중에 틈틈이 작곡한 음반도 내고, ‘아트팝’(예술성 높은 대중음악)이란 장르를 만들어 가곡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등 또 다른 작은 발걸음을 시작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편 가곡 ‘눈’은 내로라하는 국내 남녀 성악가들은 물론 심지어 미국의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Barbara Bonneyㆍ1956~)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가수에 의해서 녹음됐다. 그러나 오늘 감상했듯이 지난 4월 유튜브에 게시된 김여경의 ‘눈’만큼 절절하게 듣는 이의 마음에 와 닿는 해석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김광균의 ‘설야’에 곡을 붙인 가곡들

 20세기 후반, 청년 아다모와 대학생 김효근의 절망적이고 희망적인 눈이 있었다면, 20세기 전반에는 나라 잃은 젊은 시인의 회화적이고 음악적인 눈도 있었다.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김광균(1914~1993: 시인이자 무역협회 부회장을 지낸 사업가)의 ‘설야(雪夜)’가 그것이다. ‘먼 곳의 그리운 소식’ ‘서글픈 옛 자취’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잃어진 추억의 조각’ 등으로 눈을 빗댄 이 시는 한국 모더니즘 시의 대표작이자 세계 명시의 하나다.

 묘한 것은 김효근의 ‘눈’이 제1회 MBC 대학가곡제에서 대상을 받은 지 10년 만인 제11회 가곡제에서 눈을 노래한 ‘설야’라는 가곡이 또 대상을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김광균의 시에 김주경(여, 연세대)이 곡을 붙이고 한윤석(연세대)이 부른 이 가곡은 지금 들을 수도 없고 악보조차 구경할 수 없다. 한편 변훈 등 기성 작곡가들이 ‘설야’ 곡을 붙인 가곡들도 대중의 호응을 못 얻고 있다. 이렇게 암담하고 눈 덮인 우리 가곡의 대중화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초인은 언제 말춤을 추며 나타날 것인가?

<이현표 전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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