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완결]세계의전사적지답사기

<24> 혹독한 나치의 점령 아래 끈질긴 레지스탕스 운동

입력 2012. 06. 19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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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일기’ 슬픔 안고 나치의 잔혹사 그대로


일본군 포로 된 네덜란드 군인·주민 처참한 모습 수용소에 사진으로 적나라…다시는 비극 없어야
암스테르담의 레지스탕스 전쟁기념관 전경.

태평양 전쟁 시 네덜란드 군인들의 일본군 포로수용소 생활 모습. (출처: 암스테르담 레지스탕스
전쟁기념관)

▶‘안네 일기’의 슬픈 사연이 서린 암스테르담 레지스탕스 박물관

 제2차 세계대전 명화 ‘머나먼 다리’에서 전쟁영화 애호가들을 열광시킨 아르헴 전투 외에는 네덜란드 전쟁사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암스테르담 여행 안내소에서도 알고 있는 전쟁 박물관은 레지스탕스 기념관밖에 없었다. 나머지 군사박물관은 소규모로 지방에 일부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1940년 5월 14일, 독일에 항복한 이후 나치가 지배한 여러 유럽국가 중에서 가장 늦은 1945년 5월 5일에서야 연합군에 의해 완전히 해방됐다.

 결국, 침공군에 대해 전쟁다운 전쟁 한번 제대로 치르지 못한 네덜란드는 영광의 승전기념관을 수도 암스테르담에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시내 중심부의 레지스탕스 기념관을 보고서 네덜란드인들의 국가수호정신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일반 가정집과 같은 평범한 건물인 기념관은 1940년~1945년까지의 영웅적인 대독일 저항활동을 주로 사진, 각종 데이터, 지도 등을 통해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특히 기념관 안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네 일기’의 슬픈 사연을 알게 되면 그 당시 유대인들과 네덜란드 국민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동남아에서 일본군 포로가 된 네덜란드 시민·군인들의 참상

 이 기념관에서는 태평양 전쟁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일본군과의 전쟁 역사도 각종 자료를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사건 후 영국의 네덜란드 망명정부는 즉각적으로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 후 1942년 1월 11일,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공격하자 네덜란드군은 주요 산업시설과 유전지대를 파괴하며 단계적으로 후퇴했다. 결국, 1942년 3월, 네덜란드군은 일본군에 항복했고 대부분의 네덜란드인은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특히 일본군 포로가 된 네덜란드 시민·군인들의 처참한 수용소 생활이 적나라하게 사진으로 제시되고 있다. 억류된 네덜란드 여성 중 일부는 강제로 종군 위안부로 끌려가기도 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처참한 포로 사진을 통해서도 일본군들이 네덜란드인들을 얼마나 잔혹하게 다뤘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곳 점령지에서도 예외 없이 ‘대동아시아 제국(Great East Asian Empire)’ 건설을 빙자해 자원수탈과 현지인 강제노역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수만 명의 네덜란드인이 일본군에 대한 저항 활동 중 목숨을 잃기도 했다.

▶섹스·마약의 자유에도 흔들리지 않는 네덜란드 사회

 네덜란드는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섹스와 마약은 너무나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딸이 초경을 하면 어머니는 즉시 성교육과 동시에 피임법을 숙지시킨 다음 피임기구를 챙겨준다고 한다. 특히 암스테르담의 드 발렌(de Wallen) 지역은 홍등가로 유명해서 관광코스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섹스와 함께 자주 거론되는 것이 마약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네덜란드는 마약에 대해 분명 가장 관대한 나라다. 마리화나를 가정에서, 심지어 공공 공원에서 재배할 정도이지만 마약구매는 허용구역이 따로 있다.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소프트 드럭(Soft drug), 즉 순한 마약이다. 네덜란드의 이런 마약 허용은 주변 유럽 국가들로부터 아직도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마약에 대해 억압적이기보다 관대한 정책을 통해 마약 사범 수를 줄이겠다는 논리다. 그 근거로 인구 1000명당 마약사용자(junk) 수가 유럽 평균 2.7명에 비해 네덜란드는 1.6명으로 오히려 적은 편이란다. 글쎄! 그 통계 역시 네덜란드가 내놓은 것에 불과하고 결코 한국인 정서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암스테르담 부근 스키폴(Schiphol) 공항으로 가는 기차 안의 많은 네덜란드 청소년들은 한결같이 외국인들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적절한 자기 통제력을 가진 대표적인 건강한 사회가 곧 네덜란드인 것처럼 느껴졌다.

<신종태 합동군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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