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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끝>윤영준 해병 소장

기사입력 2012. 05. 25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8:01

무적해병 정신으로 도솔산전투 승리 이끌다

6·25전쟁 당시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한 요새 교착 상태에 빠졌던 아군 전선에 활로 개척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영준 해병소장은 1941년 만주 빈강성 제3고급중학교를 졸업했다. 46년 창군기의 해방병단에 입대해 준사관(병조장)의 초임계급으로 신병부대 소대장에 보직됐다. 47년 해군소위로 임관한 이후 헌병대 경무주임, 인천·부산 경비부 참모장 등 주요 직책을 역임하다 51년 소령 계급으로 해병대에 전입, 도솔산 전투에서 맹활약했다.

 6·25전쟁 당시 도솔산지구는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한 산악지역인 천연의 요새로 중동부 전선의 심장이었다. 24개 고지로 형성돼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요지로서, 북한군 지상부대 중 최강을 자랑하는 제5군단 예하 정예 2개 사단 병력이 난공불락을 호언장담하던 고지였다. 51년 6월 3일 미 해병 제1사단 5연대는 강력한 항공·포병화력 엄호하에 공격을 시도했으나 막대한 인명피해만 입고 공격에 실패하자 다음날 국군 해병 제1연대가 임무를 교대해 도솔산 탈환작전을 인수했다.

 북한군의 완강한 반격과 지형적으로 극히 불리한 위치에 있던 해병 제1연대는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당시 윤소령은 해병대 제1연대 2대대장으로서 도솔산 24개 고지 중 악전고투의 육박전과 혈전으로 격전을 벌이며 9번 고지를 포함한 6개 고지를 공격해 점령에 성공함으로써 아군이 도솔산지구를 완전히 탈환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51년 6월 4일 해병 제1연대는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인해 주간공격을 야간공격으로 전환해 결사적인 돌격전을 감행, 17일간의 혈전 끝에 드디어 6월 20일 도솔산 24개 고지를 완전히 탈환했다. 이로써 교착상태에 빠졌던 아군 전선에 활로를 개척하게 됐으며, 차기 작전에 대비하기 위한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도솔산전투의 승리는 6·25전쟁 기간 중 해병대 전통의 금자탑을 이루는 5대 작전 중 하나로 해병대의 용맹을 만천하에 떨침으로써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적해병’이라는 휘호를 하사받기도 했다. 만일 전략적 요충지인 도솔산 고지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휴전선을 재조정해야 함은 물론 국군과 유엔군에게 인적·물적으로 많은 손실을 초래했을 것이다.

 윤 장군은 도솔산 전투 승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美) 정부로부터 동성무공훈장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는 충무무공훈장(2회)과 을지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해병학교 교장 재임시절 ‘항상 충실하게 살자’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의 끈질긴 전투능력과 솔선수범의 책임감은 후배 해병 장병들의 귀감이 됐다.

 윤 장군은 해병학교 교장과 동해부대장, 해병대 부사령관을 거쳐 66년 소장으로 예편했다. 이후에도 무적해병의 강한 군인정신과 위국헌신의 자세로 해병대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 84년 6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박부희 전쟁기념관 국군발전사담당 학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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