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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축성대감 최윤덕(崔閏德) 장군

기사입력 2012. 04. 30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7:55

여진 정벌로 조선의 국경을 확장하다

4군지역 압록강 유역 이미 고려 공민왕때부터 조선의 영역 1433년(세종15) 여진 정벌 사살 176명, 포로 236명 전과

 오늘날 우리나라 국경선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그어진 것은 조선 세종대의 일이었다. 이른바 4군(여연·자성·무창·우예군)과 6진(종성·회령·경원·경흥·온성·부령진)의 개척으로 국경선이 획정된 것이다. 이 가운데 4군을 개척한 인물이 바로 최윤덕 장군이다.

 최윤덕(1376∼1445·사진)은 1376년(우왕2) 경남 창원군 북면 내곡리에서 통천 최씨 가문의 최운해와 창원 이씨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최윤덕의 아버지는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에서 회군해 원종공신에 올랐으며 조선 건국에 참여,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최윤덕는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활을 잘 쏴 이미 12~13세 때 화살로 호랑이를 잡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아들의 장래를 위해 아버지는 당시 대학자로 명망이 높았던 양촌 권근에게 보내어 학문을 닦게 했다. 최윤덕은 권근의 가르침을 받아 무예와 병법을 터득해 1394년(태조3) 회시에 합격했다. 이후 21세 때 아버지와 함께 경상도 영해의 반포에 침입한 왜구를 맞아 거의 섬멸시켰고, 1410년(태종10) 대호군의 벼슬에 있으면서 대과에 합격해 상호군에 올랐다.

 1419년(세종1) 의정부참찬으로 삼군도통사가 돼 체찰사 이종무와 함께 대마도를 정벌했으며, 1421년에는 공조판서가 돼 축성에 주력했다. 최윤덕은 일찍부터 축성을 국방의 기초로 인식해 실제 서울의 도성을 수축했으며, 이 공로로 1428년(세종10) 병조판서에 제수됐다. 최윤덕이 개척하기 이전의 4군 지역이 위치한 압록강 유역은 이미 고려 공민왕대 이후 강계만호부 설치와 1416년 여연군(중강진)을 설치하면서 조선의 영역에 속했지만 여전히 여진족의 침입이 빈번한 곳이었다.

 1432년 건주위의 추장 이만주가 침략하자 1433년(세종15) 최윤덕은 평안도도절제사가 돼 군사 1만 명으로 여진을 정벌해 사살 176명, 포로 236명의 전과를 올렸다. 또 정벌 경험을 토대로 자성군과 무창군을 설치했다. 그러나 여연·자성·무창군을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압록강 연안의 방비는 완벽하지 못했다. 1433년 여연·자성의 중간지점인 우예보에 우예군을 설치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개척한 북방지역에는 세종에서 성종 때까지 하삼도 지역의 5230호가의넘는 백성들을 이주시켰다.

 최윤덕은 4군을 개척한 공으로 1435년(세종17) 좌의정으로 승진했으며 이후 1445년(세종27) 향년 70세로 운명했다. 당대를 대표할 만한 김종서와 황희·맹사성은 최윤덕의 인물됨에 대해 “공평하고 청렴하며 부지런하고 조심해 나라 일에 힘써 바치는 사람이니 비록 수상을 삼을지라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찬사로 그의 생애를 평가했다.

 문·무를 겸비해 나랏일에 일평생을 바친 최윤덕 장군, 그의 올곧은 성품은 삶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한 번쯤 진지하게 들여다 볼 것을 권고하고 있다.

<김대중 전쟁기념관 학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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