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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소총으로 본 전쟁

김병륜 기사입력 2011. 12. 19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7:30

아군 `M1 개런드'는 북한 `모신나강'보다 우수

 6·25전쟁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한다면 소총수들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고 산과 계곡이 많은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이 그만큼 보병들이 활약할 만한 공간을 많이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그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 보병 소총수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것은 다름아닌 소총이었다.

 ◆ 든든했던 아군의 M1 소총

 6·25전쟁 당시 우리 군이 가장 많이 사용한 소총은 M1 개런드(Garand)다.

M1이라면 투박하고 무거운 총으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총의 역사를 살펴보면 M1 개런드는 1950년대까지도 나름대로 선진적인 소총의 하나였다. M1 개런드는 클립 방식으로 된 탄창을 일단 결합하고 나면 한 발씩 쏠 때마다 장전할 필요가 없었다.

 M1 개런드 같은 반자동식 소총은 사격 후 자동으로 탄피가 배출되고, 다음 탄환이 장전되므로 방아쇠만 한 번씩 당기면 다음 탄환을 연속 사격할 수 있다.

6·25 당시 북한군의 주력 소총이 1발 쏠 때마다 장전손잡이를 돌려 당겨야 했던 볼트액션식의 M1891/30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자동식이었던 M1 개런드는 나름대로 그 시기에는 고성능을 자랑했다.

 이 총은 미국 스프링필드 병기창의 기술 책임자인 존 켄티우스 개런드에 의해 1936년 개발됐다.

M1 개런드 소총은 군에서 주력으로 대량 보급된 제식 소총 중 최초의 반자동 소총으로 소총 역사에서 뚜렷한 위상을 갖고 있다. 다만 무게가 4.3㎏이어서 다소 무거운 감이 없지 않았다.

 1949년 7월 당시 우리 군이 보유한 M1 개런드 소총의 총량은 4만2636정이었다.

6·25전쟁 중 한국군의 병력 규모가 꾸준히 늘어났지만 미군이 47만여 정을 추가로 제공, 전쟁 내내 국군 주력 소총으로 나라를 지키는 데 기여했다.   

 ◆ 가벼워서 사랑받은 `카빈' 소총

 6·25전쟁 때 우리 군이 사용한 소총 중에는 M1 외에 카빈 소총도 있었다.

카빈 소총의 카빈(carbine)은 특정 소총의 이름이 아니라 원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기병용 소총을 의미한다. 말 위에서 긴 소총을 다루기가 불편하기 때문. 20세기 이후 말을 타는 기병이 점차 사라졌지만 일반 소총보다 길이가 약간 더 짧은 소총은 여전히 필요했다. 포병ㆍ통신ㆍ군수ㆍ정비부대 근무자들에게 휴대하기 편한 작고 가벼운 소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병과 관계없이 길이가 약간 더 짧게 만든 소총도 여전히 카빈으로 부른다.

 6·25전쟁 당시 미국의 기병총에는 M1ㆍM1A1ㆍM2ㆍM3 등 네 종류가 있었다. 이중 우리 군에 가장 널리 보급됐던 것은 반자동식 표준형이었던 ‘M1 카빈’이었다.

 1930년대에 개발된 M1 카빈의 무게는 2.49㎏으로 M1 개런드 소총에 비해 가벼웠다. 길이도 90.37㎝로 M1 개런드 소총보다 20㎝ 정도 짧다. 이런 짧은 길이와 무게 덕에 휴대하기 좋아 큰 인기를 끌었다.

 카빈과 M1 개런드 소총은 둘다 구경 7.62㎜로 동일하지만 위력 차이는 컸다. 카빈 탄환의 총구 에너지는 1074줄(J)로 M1 개런드 소총탄 3663줄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이처럼 M1 카빈은 M1 개런드에 비해 사거리도 짧고 관통력도 떨어지는 약점을 가졌지만 가볍고 휴대하기 편해 사랑받은 소총이었다.  

 ◆ 브라우닝 자동소총

 6·25전쟁 당시 우리 육군 분대에서 사용하는 총 중에는 M1918 브라우닝 자동소총(BAR : Browning Automatic Rifle)도 있었다. 미군들은 ‘바(BAR)’, 우리 군에서 30구경 자동소총으로 불렀던 이 총은 자동사격이 가능했다. 다시 말해 장전 후 방아쇠를 한 번만 당기면 연속 사격이 가능했다.

 BAR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개발, 1918년에 제식화됐다.

미국은 당시 가볍게 운반 가능한 적절한 기관총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은 참호전에 적합한 총(trench rifle)이나 혹은 가벼운 무게의 경기관총을 개발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결과 개발된 무기 중 하나가 BAR였다.

 자동소총이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대에 분대급에서 자동 사격을 지원한 점이 BAR의 장점이었다. 또 BAR가 주력 제식 소총인 M1 소총과 동일한 탄환을 사용한 것도 유리했다.

 물론 BAR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BAR는 탄창을 사용, 20여 발 사격이 가능했지만 기관총처럼 지속적인 사격은 불가능했다. 기관총과는 달리 총열 교환도 쉽지 않았고 탄띠를 사용한 사격도 불가능했다.

 무게 8.7㎏ 길이 121㎝인 BAR는 소총으로 보기에도 지나치게 무겁고 길었다. 더구나 BAR에 사용하는 7.62㎜ 30 - 06탄은 반동이 너무 커 M16 자동소총처럼 손으로 들고 사격하기 힘들었다. 결국 BAR를 손으로 들고 사격할 때는 반동을 줄이기 위해 멜빵을 어깨에 걸쳐야만 했다.

 한국은 6·25전쟁 이전에 미군으로부터 1324정을 인수했으며 전쟁 중 1만6139정을 추가로 인수해 소총분대의 자동화기 사수가 운용했다. 특히 1952년 12월 사실상 혼자서 고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해 ‘노리고지의 불사신’이라고 불렸던 육군 1사단 박관욱 일병이 휴대했던 총이 바로 BAR다. 


■ 북한군의 총기들-주력 소총 `M1891/30'<모신나강> · 기관단총 `PPSh-41<따발총>' 사용

북한이 6·25전쟁 중 보병용 소총으로 가장 널리 사용한 것은 M1891/30 모신나강(Mosin Nagant) 소총이었다.
이 소총은 1891년 러시아제국군의 모신 대령이 주설계를 맡고, 벨기에 총기 설계자였던 나강 형제가 일부 설계에 참여해 처음 개발했다.

 러시아를 계승한 소련은 1930년 M1891의 총열 길이를 줄이고, 조준기를 신형으로 교체했다. 이 개량형이 북한군 주력 소총인 M1891/30이다. M1891 계열 소총들은 반자동인 M1 개런드와 달리 볼트액션식 소총이었다.

 볼트액션식은 사격을 한 후 손으로 장전손잡이를 당겨 노리쇠를 후퇴시켜야 탄피를 배출하고 다음 탄환도 쏠 수 있었다.

북한군이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이 PPSh-41(일명 따발총) 같은 기관단총을 대량 운용한 이유도 바로 주력소총인 M1891이 연속 반자동 사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PPSh-41이 6·25를 다룬 전쟁영화나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품이기 때문에 북한군 주력 소총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6·25 개전 초반을 기준으로 북한 보병사단의 병력 1만여 명 중 권총 휴대자가 1300여 명, 보병소총은 5900여 명, 기병소총은 2150여 명, ‘따발총’, 다시 말해 PPSh-41은 2100여 명의 병력만 휴대했다.

 기관단총의 일종인 PPSh-41에는 막대형 탄창을 기준으로 35발, 원형 탄창에는 무려 탄환 71발이 들어갔다. 71발이라면 어지간한 짧은 교전에서는 탄창 교환 없이도 전투를 계속 수행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PPSh-41은 완전자동 연속사격이 가능했다.

 이런 장점 때문에 북한군은 모신나강 소총 대신 PPSh-41로만 무장한 사단 직할 자동총중대를 별도로 뒀다.

또한 연대 정찰소대 등 최일선에서 작전하는 부대일수록 PPSh-41의 무장 비율이 높았다. 주력 소총인 M1891/30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실제 보유 비율에 비해 최일선에서 PPSh-41을 좀 더 집중적으로 운용한 것이다.

M1 개런드 소총M1918 자동소총M1 카빈 소총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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