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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항공전력의 득과 실

김병륜 기사입력 2011. 12. 05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7:27

압도적인 美 공군 위력 북한군 사기도 꺾었다

 6ㆍ25전쟁 발발 첫해인 1950년 미군은 북한군 포로를 대상으로 사기 저하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총 825건 중 176건의 포로 심문 보고서가 사기 저하의 요인으로 꼽은 것은 다름 아닌 ‘식량 부족’이었다. 그 다음 요인으로 지목된 것은 148건을 차지한 ‘전술항공기의 공격’이었다.

6·25전쟁 첫해인 1950년 낙동강전선 일대에 미 공군의 폭격 흔적이 가득하다.                                              자료사진

◆항공전력의 위력

 당시 북한이 군대에 식량을 공급하지 못할 정도로 비축량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미군 항공전력의 공격 때문에 일선의 북한군들에게 공급이 차단된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즉, 북한군의 ‘식량 부족’은 미군 항공전력의 활약 때문에 초래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군 포로들이 사기 저하의 요인으로 답변한 식량 부족과 전술항공기 공격의 비율을 합치면 49.2%에 달한다. 즉, 북한군 포로 2명 중 1명은 미국 항공전력의 위력 때문에 사기가 저하됐다고 답변한 것이다.

 정확성에 대해 재검증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포로 진술을 토대로 북한군의 피해를 추산한 한 통계에 따르면 10여 만의 병력 중 4만9527명(47%), 트럭 780대 중 630여 대(81%), 야포 420문 중 301문(72%)이 미 항공전력의 공격으로 손실됐다는 자료도 있다.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초래된 위기 상황에서 미 항공전력의 기여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보여주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항공전력의 한계

 이처럼 6ㆍ25전쟁도 현대화된 항공전력이 전쟁 수행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지만 조금 더 냉정하게 검토할 대목도 적지 않다. 우선 이렇게 압도적인 항공전력의 우세와 전과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전이 성공할 때까지 낙동강전선에서 북한군의 공세가 계속됐다는 점이다. 50년 8월 이후 이미 국군과 미군 지상군의 규모는 북한군보다 많아졌다. 여기에 1000대가 넘는 항공전력의 우세가 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상군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더욱 냉정하게 고민해 볼 대목은 50년 12월 이후 중공군이 청천강 일대에서 38선까지 국군과 미군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도 미 공군을 핵심으로 한 미국의 항공전력이 상황을 역전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50년 12월 한 달 동안 미 공군 폭격기는 중공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철교·터널 등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특히 50년 12월 15일 발령된 제4호 차단작전계획은 북한 지역을 교통로를 기준으로 총 11개 지역으로 세분화해 반드시 파괴해야 할 목표물 172개를 지정했다. 철교가 45개, 일반교량 12개, 터널 13개, 철도조차장 39개, 보급소 39개 등이 그 구체적 내역이었다. 총 11개 지역 중 8개는 미 극동공군이 담당했고, 동해안을 중심으로 3개 지역은 미 해군이 담당했다.

 작전 진행 중 미 극동공군은 중공군이 은거할 수 있는 북한 도시와 촌락을 더 우선적으로 폭격하는 등 작전의 중점을 변경하기도 했지만 어찌됐건 폭격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한 달 동안 미 극동공군이 거둔 추산 전과는 ‘적 5개 사단 상당 병력 살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같은 병력을 살상했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었고, 51년 1월 38선을 돌파할 당시 중공군 병력은 여전히 왕성한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 공군 적 공중 차단에 주력

 비슷한 상황은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미 공군이 6ㆍ25전쟁에서 가장 자원을 집중한 분야는 후방차단(Rear Interdiction) 혹은 공중차단(Air Interdiction)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제공권 장악을 위한 공중 우세작전이 최우선시됐던 다른 전쟁 때와 달리 6ㆍ25전쟁 중 미군은 기본적으로 제공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전쟁을 치렀다. 예외적으로 미그 앨리의 공중전은 매우 격렬했지만 그 전투 범위는 한반도의 영역 중 일부였다.

 미 공군은 이렇게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을 투입해 확보한 제공권을 바탕으로 가용 전력을 1차적으로 공중 차단에 투입하고 2차적으로 근접항공지원(Close Air Support)에 할당했다. 미 공군이 수행한 각 임무별 우선순위와 비중은 출격 횟수를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쟁 기간 중 미 극동공군을 주축으로 한 항공전력은 총 72만980소티를 소화하며 임무를 수행했고, 그중 직접적인 전투임무를 위해 투입한 출격 횟수는 총 31만7243소티였다. 이중 공중차단 작전이 19만2581소티로 비율이 60.7%에 달했다.

 공중 우세작전을 위해 투입한 전투기는 총 6만6997소티를 기록해 21.1%를 차지했다. 근접항공지원은 이보다 적어 5만7665 소티를 투입해 18.2%였다. 즉, 미 공군은 우선적으로 공중차단에 집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공중차단을 위해 전력을 집중 운용한 결과 전쟁 중 미 공군·해병대, 그리고 기타 유엔공군 조종사들은 적 차량 88만2920대, 기관차 967대, 철도차량 1만407개, 교량 1153개, 건물 11만8231동, 터널 65개, 유류저장소 16개, 선박 593척을 침몰시켰다는 것이 미국의 공식 전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3년 7월까지 전선의 적은 어떤 식으로든 전투를 계속했고, 보급 능력이 완전히 고갈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항공전력은 아군의 전쟁 수행에서 매우 중요하고 개별 전투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항공전력의 우위만으로는 지상전투의 최종적 승패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는 점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항공전력의 활약상을 되돌아본다면 단순히 그렇게만 결론을 내리기에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미국 항공전력이 아군의 작전에 뚜렷하게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에 걸맞은 결과물을 확보하지 못한 또다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문제였나

 일단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요인이다. 우선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이 강제로 동원한 인력을 제한없이 투입할 수 있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강제 동원된 거대한 사람의 사슬은 폭격으로 파괴한 교통로를 최단시간 복구하고, 그조차 안 된다면 인력에 기반한 보급망이라도 가동시켜 일선의 전투부대가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보급 능력을 지탱할 수 있게 만들었다.

 미 공군의 발목을 잡은 것은 또 하나 있었다. 전쟁 기간 중 미 공군의 공중 차단은 개별 소티, 개별 작전 차원에서 항상 적지 않은 효과를 거뒀지만, 파괴할 수 있는 목표의 가치에 비해 투입 전력의 가치가 더 큰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미5공군사령부 작전부장 G. S 브라운 대령은 52년 여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채산이 안 맞는 장사를 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비싼 B-26 폭격기로 적 트럭과 거래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운 대령의 이야기는 직접적으로는 B-26 폭격기가 적 트럭과 같은 저가치 표적을 공격하다가 적의 대공포화에 격추되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지만, 값비싼 현대 첨단 공군과 보병 위주의 후진국형 군대가 대결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역설적인 현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 겨우 수백만 원 가치의 적 무기를 파괴하는 그런 역설 말이다.  

 북한군이나 중공군은 기본적으로 보병에 의존한 군대였다. 당연히 기계화된 군대에 비해 보급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적은 미 공군 폭격으로 보급로가 차단당해 기름이 떨어지면 당장 멈출 수밖에 없는 그런 현대화된 군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막강한 미국의 항공전력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목표는 북한의 잡다한 이름만의 중소 도시나 효과가 있는지도 없는지도 불확실한 보급로 파괴가 아니었다. 정치적 고려 없이 순수하게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첨단 항공전력은 제대로 된 군사공업시설도 없었던 북한 지역보다 중국이나 구 소련 본토를 지향할 때 더욱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그 방안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을 우려한 미국 정부 스스로가 포기했다. 어찌 보면 미 항공전력은 자신의 날개를 완전히 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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