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간 권력 다툼 바람의 나라된 唐 쿠데타 꼬리 물어
중국 시안의 성벽. 당나라 때 시안 일대에 수도인 장안이 있었다. 필자제공 |
백제와 신라의 대야성전투가 종료된 1년 후인 643년 연개소문에게 옹립된 고구려 보장왕은 당에 두 번에 걸쳐 사절단을 파견했다. 고구려의 정변에 대해 당 조정에서 어떠한 반응이 나오리라는 것은 뻔했다. 아무튼 사절단과 그 수행인원들은 입 단속을 명받았으리라. 하지만 당에서 귀국한 그들이 보고한 것은 고구려 정변에 대한 당의 반응이 아니었다.
“당태종의 황태자가 반란을 획책하다가 적발되었습니다.” 고구려 사절은 당에서 일어난 반란들을 목격했다. 나라의 뿌리를 흔들 수도 있었던 대사건이었다. 황실 가족과 군부의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연루돼 있었다. ‘정관의 치’라는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태종도 자식들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대부분 술과 놀이에 열중했고, 제대로 정신이 박힌 아들들은 권력 투쟁에 뛰어들거나 휘말렸다. 14명의 아들 가운데 12명이 비명에 횡사했다.
소식을 들은 연개소문은 만감이 교차했다. 자신이 영류왕과 대신들을 죽이고 집권한 직후에 당 황실에서 이러한 변고가 터질 줄은 몰랐다. 당나라 황태자가 그의 아비가 했던 것과 같은 쿠데타를 계획했다. 음모가 사전에 발각된 것은 태종의 또 다른 아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였다.
643년 3월 태종의 5남 제왕(濟王) 이우(李祐)가 반란을 일으켰다. 태자 이승건과 위왕(魏王) 이태는 황비인 장손씨의 소생이었지만 이우는 태종의 하녀출신인 음비(陰妃)의 소생이었다. 황위계승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왕자였다.
637년 그는 현 산동성(山東省) 제남시(濟南市)에 위치했던 제주(濟州) 도독부에 제왕(濟王)으로 부임했다. 이우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의 직위와 이익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장점은 전혀 물려받지 못했다. ‘자치통감’은 그를 경박하고 참을성이 전혀 없는 조급한 성격의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거만하고 비겁하며 난폭했으며, 개념이 없었다. 그는 매일 건달들과 어울려 놀았다. 사실을 안 태종은 직언을 잘하기로 알려진 권만기를 보내 감시하게 했다.
자연스럽게 이우의 신하들은 건달 출신의 사신(私臣)과 아버지 태종이 파견한 국신(國臣)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우는 강호의 협객인 건달들과 사냥을 하고 술을 마시고, 전쟁놀이를 즐겼다. 그러자 꼬장꼬장한 권만기가 그들을 쫓아버렸다.
하지만 건달들과 노는 재미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이우는 그들과 몰래 놀았다. 권만기는 모든 사실들을 조목조목 정리해 서신으로 태종에게 보고했다. 사태를 시정하라는 명령을 하달받은 권만기는 이우가 제남의 성 밖에 나가는 것도 막았고, 사냥 놀이를 위해 키우던 매와 개도 다 방생했다. 이우가 총애하던 건달 구군모와 양맹표가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자신의 사택에 돌이 날아들자 권만기는 구군모와 양맹표를 잡아들이고 그 일당 수십 명을 탄핵한 후 모든 상황을 태종에게 보고했다. 황제가 파견한 사람이 산동 제남으로 내려와서 사건을 조사했다. 너무나 많은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태종은 이우와 권만기를 장안으로 호출했다. 눈 앞에서 대질 심문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권만기가 먼저 장안으로 향했다.
이우의 분노가 폭발했다. 자신이 이대로 장안에 가면 모든 것을 잃고 갇혀 살아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권만기를 살려둘 수 없었다. 장안으로 가고 있는 권만기를 20명의 기병을 보내 추격하여 활로 쏘아 죽였고, 국신 위문진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다 거절하자 사람을 보내 때려죽였다. 될 대로 돼라는 식이었다.
아버지 황제의 명을 수행하던 신하들을 죽였으니 그도 무사할 리가 없었다. 이왕 버린 몸, 그는 자기 마음대로 관리를 임용했고, 국가의 창고를 열어 상을 마구 내려주었다. 백성들을 제남도독부의 성으로 몰아넣고, 갑옷과 병기와 망루와 성을 수리하게 했다. 황제군대와 맞서 싸우겠다는 태세였다.
명백한 반란이었다. 아버지 태종의 최후 서신이 이우에게 전달됐다. ‘자치통감’은 이렇게 전한다. “내가 항상 너에게 소인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경계하였는데, 바로 이렇게 되었을 뿐이다.”
이우는 아랑곳 하지 않고, 기병을 이끌고 말을 듣지 않는 관할 촌락들을 약탈했다. 제남 부근의 고촌(高村)을 약탈할 때 고군상이란 사람이 다다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왕께서 어찌 성 안에 있는 사람 수백 명을 몰아 역난을 일으켜서 황제이신 아버지를 범하고자 하십니까. 한 손으로 태산을 흔들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이우가 그를 포로로 잡았다. 하지만 부끄러워서 죽일 수가 없었다.
제주도독부 관리들이 밤에 성벽의 줄을 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성안에 볼모로 있는데도 말이다. 장안에서 온 관군이 들이닥치기 전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적으로 몰린다. 이세적이 이끄는 관군이 다가오고 있었고, 제주 주변의 다른 도독부 군대들도 출동준비를 완료했다.
불안한 마음에 이우는 건달 연홍량 등 다섯 명을 불러서 침실에서 같이 숙식을 했고, 다른 부하들을 시켜 성 내부의 병사들을 팀별로 조직하여 통솔하게 했다. 이우는 매일 밤 술판을 벌였다. 술이 들어가야 부푼 기분이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상황이 낙관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술자리는 언제나 익살스러운 불량배들이 판을 쳤다. 이우는 여자를 옆에 끼고 연홍량 등에게 둘러싸여 세상이 모두 자기 것인 양 과장스럽게 행동했다.
웃고 놀다가 들이닥칠 관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하강곡선을 그렸다. 그러자 연홍량이 말했다. ‘자치통감’에 전하는 그들의 말은 한 편의 코미디 대사 같다. “왕께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연홍량 등이 오른손에 ‘술잔’을 잡고, 왼손으로는 왕을 위하여 ‘칼’을 휘둘러 그들을 쓸어버리겠습니다.” 앞서 역심을 품은 이우를 지척에서 창으로 찌르려던 나석두(石頭)라는 인물을 연홍량이 칼로 베어 죽인 바 있었다.
한바탕 폭소가 터졌고, 그 미친 듯이 웃는 순간에 공포가 마취되었다. 입이 벌어진 이우가 맞장구를 쳤다. “이렇게 술도 같이 먹어주고 날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신하들이 있는데 내가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이우는 불량배들과 노는 그 재미를 포기할 수 없어 반란을 일으킨 것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깬 이우는 제주 휘하의 현(縣)들에 중앙군에 대항하자는 격문을 띄웠다. 어디에도 대답이 없었다. 술을 같이 먹던 주변의 건달들을 제외하고 누구도 이우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이우의 반란을 진압하려는 움직임이 제주도독부 내부에서 일어났다.
이우의 부하 가운데 두행민(杜行敏)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동료들과 상관을 체포하려는 모의를 했다. 현지 서리들도 낌새를 알아차리고 모두 여기에 동조했다. 643년 3월 10일 밤 관군의 북소리가 제주의 수십 리 밖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두행민과 그에 동조하는 서리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이우의 무리들 가운데 성 밖에 거주하는 자들을 모조리 죽였다.
두행민은 1000명의 병력을 모아 이우가 있는 성의 담장을 뚫고 들어갔다. 움직임을 간파한 이우와 연홍량 등은 완전 무장을 하고 성내에 있는 어느 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항거했다. 아침부터 전투가 시작됐다. 두행민의 병력이 그곳을 에워싸고 점심때까지 공격을 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그러자 두행민이 최후의 통첩을 이우에게 보냈다. “왕께서 황제의 아들이었지만 지금은 나라의 도적이니 항복하지 않으면 즉각 불에 타서 재가 될 것입니다.”
두행민의 수하들이 땔감을 들고 와서 탑 주변에 쌓기 시작했다. 이제 불만 놓으면 안에 있는 이우와 건달들은 모두 불에 타서 죽을 판이었다. 이우가 마음이 변했다. 문을 열고 두행민에게 부탁했다. “내가 바로 문을 열고 나갈 것이니 연홍량 형제는 죽이지 마시오.”
이우와 그 일당이 탑에서 나왔다. 그러자 연홍량 형제에게 감정이 있던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눈을 파서 땅에 던지고 팔을 부러트리고 목을 벴다.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이우는 묶여서 장안으로 후송됐다. 이적이 이끄는 중앙의 관군이 산동 제남에 도착하기 전에 모든 것이 종료됐다.
태자 이승건이 이복동생 이우의 반란 소식을 듣고 그의 측근 칼잡이 흘간승기(紇干承基)에게 말했다. “우리 동궁의 서쪽 담장은 황궁(大內)에서 스무 걸음 떨어져 있을 뿐이고, 경과 더불어 큰일(반란)을 하는데 어찌 (산동 제남에 있는) 제왕(이우)과 비교하겠는가?”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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