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다시쓰는6·25전쟁

<66>상감령전투의 진실

김병륜

입력 2011. 10. 10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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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서로 `승리한 전투'로 기억


지난 1월 19일 오바마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환영하기 위해 백악관에서 개최한 만찬에서 연주된 음악 하나가 논란이 된 일이 있다. 미국은 중국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랑랑 씨를 초대해 음악을 연주하도록 배려했는데, 그 랑랑 씨가 직접 선택한 곡이 바로 ‘나의 조국’이었다.

 ‘강대한 조국이여(這是强大的祖國)’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나의 조국’은 6ㆍ25전쟁을 다룬 1956년작 중국 전쟁 영화 ‘상감령(上甘嶺)’의 주제가로 사용되면서 유명해진 노래다. 결국 ‘나의 조국’이란 노래는 전쟁영화 상감령을 거쳐, 6ㆍ25전쟁 당시 미국과 중국이 맞서 싸운 상감령전투로 연결되는 셈이다. 당연히 행사 후 외교 무대에서 연주할 만한 성격의 곡이 맞느냐는 논란이 벌어지게 됐다.

중국 측의 상감령전투 선전 사진. 중국 측은 자신들이 대승했다고 선전하지만 과장된 측면이 많다.             자료사진

○ 상감령전투

 ‘나의 조국’이란 노래는 중국이 온 국력을 기울여 개최한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도 등장한 일이 있다. 그만큼 중국인에게 친숙한 노래이고, 그 노래만큼이나 상감령전투도 중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한국인들이 6ㆍ25전쟁이라면 춘천ㆍ다부동ㆍ낙동강ㆍ백마고지 전투나 인천상륙전을 떠올리고 미국인이라면 장진호 전투와 인천상륙전을 떠올린다면 중국인들은 예외없이 상감령전투를 기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6ㆍ25전쟁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고 부른다. ‘미국에 대항해 북한(조선)을 도운 전쟁’이란 뜻이다. 중국은 6ㆍ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것을 애써 무시하고 자신들이 기억하고 싶은 형태로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 기준의 6ㆍ25전쟁 인식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상감령전투다. 중국은 1952년 하반기 미군의 대대적인 공격에 맞서 상감령에서 의지와 끈기로 버텨내 결국 북한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관점에서 상감령전투는 흔했던 고지전 중의 하나가 아니라, 중국이 북한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결정적 전투였다.

 중국군사과학원에서 출간한 항미원조전사는 상감령전투에 대해 ‘1952년 10월 14일에서 11월 25일까지 43일간의 전투’라며 ‘전투가 전역(戰役) 규모로 발전되었다’고 설명한다. 또 유엔군과 국군의 전투 참가 병력은 6만 명이라고 주장하면서 기간 중 190만 발의 포탄을 쐈다고 간주한다. 포병 화력 운용 밀집도에 관한 한 제2차 세계대전 수준을 넘는 격전이었다는 것.

 이에 비해 중국은 4만 명의 병력을 투입해 포탄 40여 만 발을 소모했다고 소개하면서 ‘전에 없던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전과에 대해서는 유엔군과 국군 2만5000여 명을 살상 또는 포로로 잡은 데 비해 중공군 손실은 1만1500여 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저격능선 전투

 냉전 종식 후 1991년부터 상감령전투에 대한 중국 측의 주장이 처음으로 한국에 전해졌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상감령전투는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상감령이란 지명 자체부터 생소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감령전투가 6ㆍ25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적 전투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 

 1990년 중반부터 관심을 갖고 상감령전투를 연구한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중국에서 말하는 상감령전투는 바로 한국에서 말하는 저격능선 전투에 해당하는 전투였기 때문이다. 우리 군의 공식 전사들은 저격능선 전투에서 국군이 승리했다고 간주해 왔다. 같은 전투를 놓고 양측이 모두 승리한 전투로 기억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각해 왔던 저격능선 전투는 ‘강원도 철원군 오성산 남쪽에 있던 저녁능선에서 1952년 10월 14일부터 11월 24일까지 국군 2사단이 중공군 15군과 치열한 격전 끝에 아군이 승리한 전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일단 전투의 범위부터 분명히 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측이 말하는 상감령 전역은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우리가 말하는 저격능선 전투와 삼각고지 전투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철원 오성산(1062고지)과 남대천 사이에 상감령과 하감령 등 2개의 고개가 있다. 두 고개 사이에 남북 방향으로 산줄기가 2㎞ 간격으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데 서쪽에 있는 것이 삼각고지(598고지)이고 동쪽에 있는 것이 538고지다. 그 538고지에서 북쪽으로 연결된 고지군이 바로 한국에서 저격능선, 미국에서 스나이퍼 리지(Sniper Ridge)라고 부르는 능선이다.

 ○ 진실은 무엇?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은 1952년 10월 초 소규모 공격으로 중공군의 기선을 제압할 생각으로 공격을 준비했다. 미 7사단은 삼각고지, 국군 2사단은 저격능선이 목표였다. 소규모 고지였기 때문에 큰 피해 없이 단기간에 공격이 끝나리란 것이 미 8군의 기대였다.

 하지만 실제 전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특히 미국 언론이 “큰 의미도 없는 전투에 많은 미군이 죽어가고 있다”고 보도하는 바람에 여론이 좋지 않았고, 결국 미 7사단은 작전 개시 12일 만에 삼각고지 탈환임무를 국군 2사단에 인계했다.

 국군 2사단은 저격능선에 더해 삼각고지에서도 격전을 치렀으나 고지 전체를 완전히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아군은 11월 5일 삼각고지 작전을 중지하고 저격능선 방어에 주력하기로 했다. 즉 삼각고지에 관한 한 중공군 측이 승리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저격능선 전투의 경우 조금 더 복잡하다. 저격능선의 고지 중 A고지, 돌바위 고지는 최종적으로 국군 2사단이 점령하는 데 성공했으나, Y 고지의 경우 중공군이 점령한 상태에서 전투가 끝났다. 즉 목표의 절반이라도 탈취한 아군의 승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우리 국군의 입장에서 저격능선 전투를 승리로 기억할 만한 뚜렷한 근거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기억 전쟁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따져 본다면 과연 누가 승리한 전투이고, 패배한 전투일까. 일단 중국 측 선전이 과장된 것은 분명하다.

중국은 삼강령전투에 참전한 유엔군과 국군이 6만 명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국군 2사단과 미 7사단의 병력 합계는 2만 명 내외 수준이었다. 즉 아군 병력은 중공군 전투 참가 병력 4만 명의 약 절반에 불과했다.

 당연히 중공군 측이 주장하는 전과 2만5000명도 터무니 없는 이야기가 된다.

삼각고지 전투에서 미군의 피해는 분명하지 않으나 당시 국군 참전자들은 “미군의 사상자가 3000명 수준”이라는 증언을 남긴 일이 있다. 이 지역 일대의 전투에서 국군이 입은 손실은 4800여 명 수준이었다.

 저격능선 전투에서 국군이 거둔 전과에 대해 우리는 1만4000여 명 수준으로 보고 있는데, 중국 측은 상감령전역 전체에서 약 1만1000여 명 내외의 손실이 있었다고 자인하고 있다. 즉 아군보다는 중공군의 인명 손실이 더 컸던 것이다.

이 밖에도 중국 측이 주장하는 이른바 ‘상감령전역 영웅’들의 전공도 과장됐다는 다수 연구자들의 평가다.

 다만 전문가들도 종합적인 작전 평가 측면에서는 미묘한 구석이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우리나라의 한 연구자는 “아군은 저격능선 전투로 전초 진지 하나를 탈취하는 전과를 거뒀으나, 중부전선에서 주도권을 탈취하겠다는 유엔군 차원의 작전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한 일이 있다.

 중국 측이 상감령전투에 대해 그토록 높은 평가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약간 다른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군사편찬연구소의 남정옥 박사는 “중국은 오성산을 반드시 확보해야 중부전선을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중국은 미국의 원래 목표가 저격능선과 삼각고지를 거쳐 오성산을 탈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오성산을 지켜냈으니 스스로 대승리로 평가할 만한 여지가 있었다는 뜻이다.

 요약하자면 중국이 주장하는 전과는 터무니 없는 과장이 분명하고, 국군 2사단의 저격능선 전투는 전술적 승리로 평가할 여지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작전적으로 평가해 보면 누가 승자인지 획일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미묘하고 애매한 구석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총성이 오가는 전투는 멈췄지만 머릿속 기억과 평가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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