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우리군의시뮬레이터

<28>국군의무학교 인간형 시뮬레이터

이주형

입력 2011. 08. 05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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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멎은 응급 환자 신속히 소생시켜라!


군에서 활용되는 시뮬레이터라고 하면 대개 전차나 헬기·차량 등 장비 위주의 시뮬레이터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시뮬레이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보다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국군의무학교의 인간형 시뮬레이터다.

군의관 2명, 간호장교 3명으로 구성된 해군포항병원 의료진의 응급처치를 이세종
대위를 비롯한 군위관들이 지켜보며 평가하고 있다.

 지난 2일 의무학교 시뮬레이션센터 중환자실. 긴장한 표정으로 해군포항병원 의료진이 들어섰다. 수술대에서는 오늘의 응급처치 대상자가 누워 있다.

 “26세 남자 환자입니다. 가슴 두근거림이 있고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3㎞ 체력검정을 위해 무리하게 뛰다가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현기증을 느끼고 쓰러져 군 병원에 이송된 환자입니다.”

 환자의 증상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의료진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의료진은 군의관 2명, 간호장교 3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환자 상황을 보며 단계별로 응급처치를 지시하는 리더와 기도삽입 및 심폐소생, 제세동담당, 약물투입, 그리고 기록 등 미리 정한 역할로 나뉘어 임무를 시작했다.

 이날 환자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형 시뮬레이터다. 대당 1억3000여만 원에 이르는 이 시뮬레이터는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체온이 느껴지고, 맥박이 뛴다. 땀도 흘린다. 색소를 첨가하면 피가 흐르는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어떻게 조작하느냐에 따라 수백 가지 이상의 조합이 나올 수 있다. 출혈ㆍ골절 등의 각종 응급상황을 실제 환자와 동일한 조건으로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모니터에는 심전도(HR)와 호흡을 나타내는 SPO2 및 etco2의 수치가 모두 물음(?) 표시다. 심전도는 60~100이 정상, 혈중 내 산소포화도를 나타내는 SPO2는 9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그 미만이면 강제 호흡을 실시해야 한다. 리더를 맡고 있는 박원홍(29ㆍ군의39기) 중위가 계속 지시를 내렸지만 수치는 물음표시에서 요지부동이다.

 제세동기를 이용해 심장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심폐소생술도 이어졌다. ‘삐이- 삐이’ 하는 기계소리만 들릴 뿐 환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수치는 변함이 없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조금 전에 실습한 비슷한 상태의 환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소생시켰는데. 서로를 바라보는 의료진들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응급처치는 시간이 생명이다. 15~20분 내에 처치를 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화(24ㆍ간사51기) 소위가 의견을 제시했다. 약물을 바꿔보자고. 효과가 있었다. 심전도는 73을 기록했다. 다른 수치도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HR 79, SPO2 93, etco2 34. 응급상황을 겨우 넘겼다. 그제서야 의료진에 안도감이 번졌다. 성공이다.

 처치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세종(31ㆍ군의41기) 대위는 “적재적소에 대한 약 투입과 처치가 순서대로 진행돼야 하는데 당황하는 바람에 처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었다”며 “서로 간에 의견을 개진하고, 또 그것이 쉽게 수용되는 바람에 위기를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가끔은 환자가 소생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실수도 소중하다”며 “이 같은 경험을 통해 더 많은 환자를 신속하게 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간형 시뮬레이터를 이용한 교육은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됐다. 현재 격주 단위로 1박 2일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전국에 소재한 군 병원의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대상. 보통 2~3개 팀이 들어와 실습 교육을 한다.

 의료 시뮬레이션 교육의 장점은 학습자 중심의 교육환경 제공으로 문제 해결 및 대처 능력을 향상시키고 팀 단위 교육이 가능하며, 객관적이고 표준화된 환경을 재현함으로써 신뢰도 높은 평가도구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환자에게 직접적인 위험을 끼치지 않으면서 실수를 통한 반복 숙달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군 내부적으로도 실제 환자와 동일한 조건을 부여한 실습여건 조성으로 현장감 있는 교육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교육과정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다. 센터에서 이 과정을 수료한 군의관과 간호장교 3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2.7%인 306명이 만족스럽다고 답변했음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적절하다는 의견은 6.4%인 21명, 불만족스럽다는 불과 0.6%인 2명이었다.(1명은 개인사정으로 퇴소, 응답하지 않았다)

 정기영(준장·52·공사 30기) 국군의무학교장은 “시뮬레이션센터는 그동안 단순 술기나 대외병원 위탁교육으로 전문 기술을 습득하던 군 의료교육 체계를 혁신적으로 전환시켜 주는 첨단 교육시설로서 실제 인체와 유사한 시뮬레이터를 통해 실전적 의료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의무학교 시뮬레이션 센터

군 의무발전 계획의 일환으로 의무요원들의 실전적 의무지원 능력 배양, 국ㆍ공립 의료기관과 연계된 국가 응급의료 교육체계 구축, 최신 임상교리 연구를 통한 군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2008년 4월 1일 착공, 총 예산 47억3000만 원을 투입해 18개월여의 공사 끝에 2009년 11월 10일 개관했다. 연면적 2250㎡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출혈ㆍ골절 등의 각종 응급상황을 실제 환자와 동일한 조건으로 부여할 수 있는 인간형 시뮬레이터 12점과 71점의 CPR 평가용 마네킹을 보유하고 있으며 실제 상황과 같은 조건과 환경을 조성, 연간 6000여 명의 교육생이 전문 의무인력으로서 갖춰야 할 능력을 배양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 전장환경실습장

“크르륵!” 전차의 굉음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린다. 시간은 한밤중, 어두컴컴해 잘 보이지도 않는다. 피를 흘리며 고통에 겨워 신음소리를 내는 부상 장병들만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센터 1층에 위치한 전장환경실습장의 모습이다. 전장환경실습장은 군의관 및 의무병을 대상으로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전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외상처치 위주의 현장 응급처치와 대량전상자 처리 훈련 및 환자 분류 실습이 가능한 교육실이다. 오디오·비디오 시뮬레이션 환경을 구축해 현장감 있는 야전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간형 시뮬레이터는 이곳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응급실 등의 첨단 시뮬레이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어두운 곳에서 보면 사람과 매우 흡사할 정도로 세밀함을 자랑한다. 전장에서의 부상은 절단과 골절ㆍ흉부관통 등 외상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시뮬레이터도 팔ㆍ다리 등의 부위가 분리 가능하고 각각의 부위도 패이고 찢어진 부분이 고스란히 표현돼 있다.

 전장환경실습장에서의 교육은 마지막 4주차에 진행되며, 환자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관찰하며 위급상황을 확인하고 숨을 안 쉬면 인공호흡을, 심장이 멈춰 있으면 가슴 압박을,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외상 관찰, 지혈대와 부목 사용법 응급처치표 기록 등 일련의 전 과정을 다시 확인하고 습득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 박동혁 해군 병장도 이곳에서 교육받은 바 있다.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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