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병영의추억

<50·끝> 개그맨 이 하 원

입력 2011. 05. 06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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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軍생활 통해 시청자 공감 이끌어냈죠”


아름다운 마무리를 뜻하는 단어, 피날레. 그 단어를 사용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던 병영의 추억이 50회를 끝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된 것이다. 그렇다. 50번째 추억이 마지막 인터뷰다.

시간은 참 빠르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만남은 더욱 소중하다. 대미를 장식할 인터뷰. 이는 바로 개그맨 이하원이다.

현재는 화려한 연예인의 삶을 뒤로한 채 새로운 CEO의 삶을 살며 드높은 하늘을 향해 비상하고 있는 그. 쉬운 길을 택하기보다 옳은 길을 향해 나아갈 줄 아는 그는 의리가 있는 대한민국 사나이였다. 코너의 아이디어에 목말라하는 후배를 위해 밤새 고심해 유행어를 창조해내고, 존경받아 마땅한 선배를 향해 150도로 인사할 줄 아는 그. 억지로 누군가를 가르치기보다 자연스레 가르침을 받고자 갈망하는 그는 배려심 깊은 이 하하하~원이다.

군 복무 시절 휴식시간에 전우의 카메라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하원.
현재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인력아웃소싱 회사인 HNT 사무실에서의 모습.

개그맨 이하원은…   
56년 9월생.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졸업. 80년 TBC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했으며 이듬해 MBC로 옮기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 ‘일요일 일요일 밤에’ ‘청춘행진곡’ 등에 출연했다. 현재 인력아웃소싱회사인 HNT 대표로 근무 중이다.

 “오늘이 마지막 인터뷰라고요? 흠, 제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네요. 하고 싶은 말이 술술 나올 것만 같습니다. (하하) 가만있자, 입대가 언제였더라. 12741827이 제 군번이고요, 77년 3월 4일에 입대했네요. 대전에서 라디오 DJ로 이름을 좀 날리다가 교련 혜택을 2개월 받고 군 생활을 시작했답니다. 논산 입소, 28연대에서 훈련. 요즘에는 ‘입영열차 안에서’라는 노래를 듣곤 한다는데 우리 때는 최백호의 ‘입영전야’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참 힘들었는데 말이죠. 전날 따듯하게 덮었던 이불이 까칠한 모포로 바뀌는 그 순간이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했던 거죠. 울 수도 없었죠. 대한민국 남자들은 울지 못하니까요. 아니 울어서는 안 되니까요. 그렇게 교육받아왔으니까요. 태어나서 세 번 울 수 있지만, 그때는 울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덤덤하게 현실을 인정해야 했던 거지요.”

 모든 청춘에게 입대는 비장하다. 이하원이라고 해서 그 통과의례를 비켜갈 수는 없었을 터. 하지만, 그의 군 생활은 알찼다.

솔선수범했으며 선임들에게 깍듯했고 후임들에게 다정했다. 그렇게 습관처럼 인성이 굳어져 훗날 연예계 생활에도 밑거름되지 않았을까?

 “훈련을 받고 후반기 교육을 서울에서 또 받았습니다. 보안 교육대에서 말이죠. 전날까지 동기들과 함께 추억의 크림빵에 브라보콘을 나눠 먹으며 아직 무르익지 않은 햇병아리 전우애를 함께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현실의 터널을 건널 때가 온 거였죠. 새벽 기차에서 내려 용사의 집에 대기하고 있으니 버스가 한 대 도착했고, 전 서오릉으로 떠났답니다. 그때 깨달은 거죠. 나의 31개월 군 생활은 통신암호 병이구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대 배치를 대전으로 받았다는 겁니다. (하하) 3관구 사령부. 전방은 군단이라 하는데 후방은 관구로 나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대 배치 이후 그에게는 양손으로도 다 헤아릴 수 없는 병영의 추억이 넘쳐났다고 한다.

그만큼 군 생활이 즐거웠던 것이 아닐까? 식사를 마치면 선임들 식판까지 다 닦아야 했는데 부대 밖 동네 아주머니들이 공급해 주던 따듯한 물로 편하게 닦았던 기억, 그래서 감사의 표시로 치약이나 비누 등을 선물했던 기억, 라면 사 먹고 외상 달아놓았던 기억 등은 시작에 불과했다. 유난히 사람과 상황을 관찰하기 좋아했던 탓에 훗날 숱한 유행어와 코너를 휩쓸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행복했던 기억을 통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황 순경이라는 코너를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전 그때 파출소장 역할이었는데요. 사건 사고가 생겨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태연한 척하지만, 뒤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인물이었지요. 전 이 캐릭터를 군 생활 당시 진급을 앞둔 통신근무대장님을 통해서 그려냈답니다. 당시 진급 발표를 앞두고 부대원들과 대기 중이셨는데 결국 진급을 못 하신 겁니다. 그런데 앞에서는 별문제 없는 것처럼 하시고는 부대원 해산 후 혼자서 뒷산 솔밭으로 올라가시는 걸 걱정이 돼서 몰래 따라갔던 거죠. 갑자기 소나무를 붙잡고 머리를 찧으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안타까움이 몰려오는 겁니다. 그 기억이 참 깊게 남아 있었지요. 그래서 히트 캐릭터가 탄생했답니다.”

 이하원은 사람을 참으로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의리가 있고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겸손함까지 갖췄다. 먼저 그는 이메이션코리아 CEO로 유명했던 이장우 대표가 바로 밑 후임이었음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방송 촬영을 위해 당진으로 내려갔던 당시 동기 이종철을 찾게 된 기쁨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뿐 아니었다. 현재 인력아웃소싱회사를 운영하며 방문하게 되는 거래처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 중 군 시절 우정을 함께했던 많은 이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먼저 악수를 청한다고 했다.

사람을 향한 애정이 없으면 누가 쉽게 그럴 수 있으랴. 보통 군에서의 기억은 다들 지우고 싶다며 부정적 발언을 내뱉지만 이하원에게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군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다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는 것인데 왜 굳이 그 시간을 그렇게 낭비해야 하냐며 오히려 반문하는 그.

 “그래서 전 가족을 가장 우선시합니다. 내 사람부터 아껴야 다른 사람도 아낄 수 있는 거지요. 또 가정이 편해야 바깥일도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군 시절에는 내무반 사람들 모두가 내 가족이었으니 가장 우선시할 수밖에요.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아, 마지막으로 이 말 한마디 하고 싶네요. ‘청춘은 결코 썩지 않는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자 몸부림치는 시간이다’. 군대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며 자기계발에 힘쓰세요. 요즘에는 그런 시간까지 따로 만들어져 있는 거 같던데 알차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조기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iammaximus@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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