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철모에서미사일까지

K-21 보병전투장갑차<24> 현수장치 개발

신인호

입력 2010. 07. 26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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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발상 전환 `ISU<암 내장형 현수장치>' 세계 첫 전력화 성공



 전투차량이 산악과 야지 등 지면이 불규칙한 험지를 달릴 때 승무원과 탑재된 정밀장비가 받을 수 있는 충격을 효과적으로 완충하고, 탑재 무장을 사격할 때에도 안정된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이 ‘현수장치’다. 궤도형 장갑차인 차기장갑차에서 현수장치는 암내장형 유기압 현수장치(ISU : In-Arm Suspension Unit), 궤도조립체, 궤도장력조절기, 범프스톱 외에 각종 휠(기동륜, 보기륜, 유동륜, 지지륜 등)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현수장치는 우리 연구진이 기술 선진국 업체의 오만한 자세를 극복하고 모험적인 사고의 전환을 통해 ISU를 세계 최초로 전력화한 분야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해외업체의 무리한 요구

 현재 우리 군의 주력전차인 K1 전차는 험지를 시속 40㎞ 속도로 주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는 토션바와 충격흡수기 형태의 현수장치를 갖춘 기존 K200과 계열장갑차 같은 궤도형 장갑차로는 따라붙기 힘든 속도다. 전차와 장갑차의 협동작전이 사실상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소요군이 차기장갑차 개발에 ‘주력전차와의 협동작전이 가능한 기동성 보유’를 요구 능력으로 내세운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연구팀이 첫 번째로 풀어야 할 과제는 ‘험지 주행속도 시속 40㎞’ 등 전차-장갑차 협동작전이 가능한 수준의 기동성 확보를 위한 현수장치 개발이었다. K1 전차에는 유체와 질소가스의 압축력을 이용한 충격감쇠장치인 유기압식 현수장치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 GDLS 사가 설계하고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었다.

또 K9 155㎜ 자주포는 영국에서 기술을 도입해 국산화한 유기압 현수장치(HSU)를 쓰고 있으나, 국내에서 독자적인 설계를 해 본 경험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K9 자주포를 개발할 때 유기압 현수장치의 국내 생산에 참여했습니다. 개발품의 내구성이 미흡해 많은 어려움을 몸소 겪었죠. 솔직히 차기장갑차용 유기압 현수장치의 국내 독자 설계라는 과제를 대했을 때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선진국 개발업체와의 기술협력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로 했습니다.”(김종수 팀장)

 연구팀이 접촉한 해외 전문업체는 프랑스 SAMM 사, 영국 LOTUS 사와 Air-Log 사, 미국 GDLS 사 등이었다. 이 중 K9 유기압 현수장치 개발을 위해 기술협력을 추진한 바 있는 영국 Air-Log 사(현 Horstman 사)를 협상 대상업체로 선정했다.

 1999년 8월에 업체 전문가를 국내로 초빙해 협상을 시도했다. 쉽지만은 않았다. Air-Log 사는 처음에는 20억 원의 기술료를 요구했다. 무리한 가격이었다. 예정된 협상기간을 초과해 2박 3일의 장시간의 토의 끝에 최종적으로 10억 원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들은 ‘설계 소유권은 절대 넘겨줄 수 없다’는 부가조건을 제시했다. 역시 수용할 수 없는 조건. 협상은 결렬됐다. 연구팀이 해외 기술협력을 통해 국내기술을 축적하려는 개발전략이 이렇게 무산됐다.

 “협상 중 느낀 점은 우리 ADD나 업체 연구원이나 너 나 할 것 없이 끓어오르는 굴욕감이었죠. 연구원으로서의 자존심이 이때 되살아났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데 연구진 모두가 국내 개발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우리 손으로 설계를 해서 선진국에 한번 수출해 보자’는 오기와 각오를 다졌습니다.”(김종수 팀장)


◆  ISU 최초 개발에 도전

 연구팀은 국내 독자개발 방안을 찾아 나섰다. 유기압 현수장치의 국내 독자개발에 필요한 세부 기술들을 정리하면서 ‘고(高) 기동성 스프링/감쇠 특성 설계기술’과 ‘고압/고내구성 밀봉 씨일 메커니즘 설계기술’을 가장 어려움이 뒤따를 핵심 기술로 꼽았다.

연구팀은 이 중 고압 밀봉 기술은 실차(實車) 주행조건을 모사할 수 있는 시험장비를 확보한 뒤 실험실 시험을 통해 해결하기로 하고 최종 개발 방안을 확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연구팀을 또 한번 고심케 한 것이 ‘경량화 설계’라는 것이었다. 차기장갑차는 수상 운행을 해야 하므로 구성품의 경량화 설계는 성능 요구조건 못지않게 필수적인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경량화를 달성할 수 있을까?’ 고심을 거듭하던 연구진들은 모험적인 일대 사고의 전환을 하게 된다. 기존의 유기압 현수장치 형태와는 달리, 보기륜암 내부 공간에 유기압 시스템을 내장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이는 해외에서 입수한 기술자료 상에 나타난 것으로 불현듯, 하지만 어떤 필연처럼 떠올랐다. 연구팀은 이내 이 아이디어를 살려 이른바 ‘보기륜암 내장형 유기압 현수장치(ISU)’를 개발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ISU는 그 당시 선진국에서도 전혀 시도해 보지 않은 시스템. 당시 유기압 현수장치에 대한 국내 보유 기술수준으로 보아 조금은 무모한 결정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구성품의 설계에서도 최대한의 경량화를 위해 하우징 재질을 강재 대신 알루미늄을 채택했다. ADD의 기본설계와 시제업체인 대우종합기계(현 두산DST)의 상세설계가 합해져 마침내 2000년 8월에 차기장갑차용 ISU 시제품이 세상에 탄생했다.

 탄생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였다. 이어지는 실험실 시험에서 구성품의 파손, 마모 등 수많은 문제점이 나타났다. 특히 실험실 시험 중 매니폴드가 파손됐을 때는 내부의 고압에 의해 파편이 30m 이상 날아가 사무실 출입문에 박히는, 전혀 예상치 못한 아찔한 순간도 발생했다. 실험실 시험 안전 대책을 긴급히 강구했음은 물론이다.

 ADD의 실험실 시험을 통해 많은 설계개선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2002년에 체계 구조시험모델(STM) 차량을 이용한 실차시험에서 구조물 파손, 밀봉 성능 미흡 등 설계 기술상의 문제점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매 순간이 피를 말리는 순간들이었다. 시험 중에 발생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세밀히 살폈다. 안 되겠다 싶어 김종수 팀장 등은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처음 시작단계부터 설계개선 활동을 수행했다.

 
◆ 문제는 계속 발생하고

 2004년 6월에 드디어 ADD 실험실 시험에서 처음으로 성공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그것은 연구진에서 짜릿하고 감격적인 순간을 선사했다. 연구팀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창원에 위치한 기동시험장에서 체계 기동시험시제(MTR)를 이용한 실차 주행시험에서도 험준한 야지를 시속 40㎞ 이상의 속도로 늠름하게 주행했다. 내구도 주행시험에서도 아무런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았다. 모든 시험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결과도 양호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우리가 해냈다!”고.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것일까. 2005년 11월에 뜻하지 않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체계 완성시제 개발시험의 일환으로 수행 중인 저온환경시험(-32°C)에서 차량이 주저앉는 문제가 발생했다. ISU의 밀봉 능력이 떨어져 생긴 누유 및 누기(氣)로 인한 것이었다. 위기의 순간임을 직감했다. 우선 가스가 새는(누기) 위치와 원인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는데, 또 한번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위기탈출을 이끌었다.

 “말씀드리기가 좀 뭐하긴 한데, 누구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누기가 예상되는 부위에 성인용 콘돔을 씌워 어디가 새는지 확인하자는 것이었죠. 지금 생각해도 궁여지책이긴 했습니다만 그 방법이 효과를 발휘했어요. 가스를 주입하기 위한 가스밸브가 저온 누기의 원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한인식 연구원)  

 
◆ 세계 최초로 전력화하다

 이 같은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암내장형 유기압 현수장치(ISU)는 이후 1만㎞ 내구도 주행시험을 거뜬히 통과하고 야지운용시험, 수상운행시험 및 사격시험을 통해 그 진가를 발휘하며 ‘개발 성공’을 확인시켜 줬다. 이는 매우 의미 있는 결과로 평가된다. ISU를 세계 최초로 전력화했다는 점이 첫째이고, 둘째 동급 장갑차 대비 세계 최고의 기동성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이는 차기장갑차와 주력전차가 명실상부하게 협동작전을 전개할 수 있음을 뜻한다.

 “ISU는 성능은 물론 내구성 측면에서도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무엇보다 뿌듯한 자부심은 병사들로부터 받았습니다. K200을 조종한 경험이 있는 한 병사가 차기장갑차를 조종한 뒤 ‘어떠냐?’했더니 ‘화물차 타다가 고급 승용차 타는 기분’이라며 매우 좋아했습니다. 연구자로서 이보다 더한 만족감은 없을 겁니다.”(이윤복 연구원)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에서 출발한 차기장갑차 현수장치 독자개발은 연구진의 피나는 노력과 철저한 개발시험과 군 운용시험 중 도출된 문제점들을 해결한 시험요원들의 치열한 노력이 합쳐진 결과입니다. 걸작품이라고 가슴을 펴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김종수 팀장)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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