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손끝에서 6·25 전사자 명예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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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유해발굴병들이 강원 횡성 우천면 하궁리에 위치한 281고지 중턱에서 유해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타액 등이 튀어 유해 발굴 후 이뤄질 DNA 검사에 혼선 주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작업 중 늘 마스크를 착용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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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감식병들이 육군36사단 독수리연대에 설치된 감식반에서 발굴된 유해와 유품에 대한 세척작업을 하고 있다. |
지난달 29일 강원 횡성 우천면 하궁리에 위치한 281고지 중턱. 육군36사단 독수리연대가 실시하고 있는 6·25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검은색 조끼를 입은 박성희(24) 상병과 김병석(21) 일병이 작업에 한창이다.
금속탐지기로 유해 발굴이 예상되는 지점을 파악, 어느 정도 초반 작업을 해 놓은 상황에서 이뤄진 발굴에서 붓과 솔을 쥔 두 병사의 세심한 손놀림에 따라 경사지에 묻혀 있던 유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들리는 것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와 산 아래 마을의 개 짖는 소리가 전부인 산속에서 작업에 열중하다 점심시간이 돼서야 허리를 편 이들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유해발굴병들.
유해발굴병?
이름 그대로 군 생활 동안 국방부가 추진하는 전사자 유해발굴작업에 참여해 유해를 발굴하는 병사들이다. 그야말로 누구보다 특별한 군 생활을 보내는 이들인 셈. 유해발굴병은 늘 유해감식병과 함께 언급된다. 발굴된 유해를 감식, 유해의 주인을 밝혀내는 작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감식병은 야외에서 직접 유해를 발굴하는 발굴병과 달리 실내에서 감식관이 유해를 감식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유해·유품에 대한 사진촬영이나 유해 세척 등이 주된 작업. 감식병은 조를 나눠 일부는 서울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작업하고 일부는 발굴병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감식작업을 한다. 발굴병과 감식병은 선발 당시에는 유해발굴감식병으로 일괄 선발한 후 신체조건 등을 따져 발굴과 감식의 임무를 각각 받는다.
유해발굴감식병은 2007년 1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창설 후 선발하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연관 학문을 전공했거나 관련 경력을 가진 젊은이들의 장점을 살려 유해발굴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선발방법은 별도 상자기사 참조>
현장에서 간부인 유해발굴팀장의 지휘를 받는 발굴병들은 매년 전·후반기로 나눠 유해발굴 지역에 상주하며 해당 지역에 주둔하는 부대와 손발을 맞춰 작업한다.
일반적인 유해발굴 절차는 이렇다. 해당지역 부대가 발굴작업 이전에 참전자와 주민들의 제보·조사를 통해 유해가 발굴될 확률이 높은 지역을 미리 설정해 놓는다. 발굴병들은 그 지역에서 금속탐지기로 유해·유품이 있을 만한 지점을 좀 더 세밀하게 탐사한다. 이때 금속 반응이 나타나면 지역 부대의 장병들이 발굴하기 쉽도록 땅을 파는 기초작업을 한다. 이후 발굴병들이 투입돼 유해를 발굴한 후 유해·유품은 해당지역 부대에 임시로 설치된 감식반으로 옮긴다. 발굴병들과 함께 해당지역 부대에 상주하는 감식병들은 감식관의 지휘를 받아 기초적인 유해 감식을 실시한다. 이후 유해는 서울에 있는 유해발굴감식단으로 보내져 보다 정밀한 감식을 받게 된다. 이처럼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유해발굴감식에서 발굴병과 감식병은 현장에서 가장 실질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고된 훈련도 받지 않고 산과 들을 오가며 유해를 발굴한다니 왠지 편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일찌감치 꿈 깨시라. 사학과를 다니다 ‘쉬울 것 같아’ 유해발굴감식병을 지원했다는 김기윤(23) 상병은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한 구의 유해도 놓치면 안 된다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물론 육체적인 어려움도 빼놓을 순 없다. “6·25전쟁 당시 격전지가 대부분 깊은 산속에 있어 처음 입대해서는 산을 오르는게 무척 힘들었다”는 박성희(24) 상병은 “이제 등산에는 자신 있지만 궂은 날씨에 몇 날 며칠 야외에서 작업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어려움이 크기에 유해발굴감식병이 되려면 무엇보다 사명감이 강해야 한다고 병사들은 입을 모았다.
역사교육을 전공한 김병석(21) 일병은 “전문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라를 지키다 산화하신 선배 전우들의 유해를 발굴하겠다는 사명감이 중요하다”며 “사명감 없이는 발굴작업을 견뎌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려움이 큰 만큼 심리적 보상도 적지 않다. 우리 군이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데다 전공을 살려 군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을 전공, 감식병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상윤(23) 상병은 “전공을 살리고 싶어 지원했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며 “학교 선배들의 권유로 입대한 선후임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나 된 탓에 전쟁을 실감하지 못하는 우리 젊은 장병들에게 유해발굴은 또 하나의 역사교육인 만큼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후 서둘러 작업을 시작하는 유해발굴감식병들. 이들이 있기에 6·25 전사자들의 유해가 한 구도 남김 없이 햇빛을 보는 날이 곧 오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유해발굴감식병이 되려면?
유해발굴감식병은 ‘징집병’이 아니라 입대 전 병무청을 통해 지원하는 ‘개별모집병’이다. 따라서 유해발굴감식병이 되고 싶다면 입대 전 미리 병무청을 통해 지원서를 신청해야 한다. 현역병(징집병) 입영기일이 결정된 경우 그 입영기일 30일 전까지 지원해야 한다.
지원자는 접수연도 기준으로 18세 이상 28세 이하 연령에 중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 또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인정하는 동등 학력 소지자여야 한다. 신체등위 1~3급은 기본 조건. 이 외에 고고학과·인류학과·사학과·치의예(학)과·장례학과·문화재보존학과 등의 전공을 2년 이상 수료하거나 3개월 이상의 문화재·유해발굴 경력을 가진 사람이면 지원 가능하다.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는 지원할 수 없다.
유해발굴감식병과 유사하게 유해발굴 및 기록임무를 수행하는 병사도 있다. ‘유해발굴기록병’이 그들. 이 역시 개별모집병으로 지원조건은 유해발굴감식병과 유사하지만 지원가능한 전공 학과와 경력은 다소 차이가 있다. 고고학과·고고미술사학과·고고인류학과·사학과·국사학과·문화인류학과·문화재 보존학과·장례학과 등 전공 2년 이상 수료자이거나 유물·유골발굴 3개월 이상 경력자면 된다.
글·사진=김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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