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불어 나쁜 날' 무적 스페인, 영국에 대패
군함 130척·승선 병력 수만명 스페인 대함대
‘프로테스탄트 바람’에 속수무책…2류국가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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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무적함대의 침몰(이브라인즈의 그림). 스페인은 1588년 영국과의 해전에서 50여 척의 전함과 6000명의 병사를 잃었다. 사진=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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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함대의 항해 항로 및 항로상에서 만난 악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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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함대의 기함과 동일한 전함. |
“대영제국의 영예를 드높인 공로로 기사의 작위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리노라.” 일개 해적에 지나지 않았던 드레이크가 영국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로부터 귀족의 작위를 받는 순간이었다. 그는 신세계로부터 보물을 싣고 오는 스페인의 배를 공격해 보물들을 빼앗아 고스란히 자신의 여왕에게 바쳤다. 이 공로로 드레이크는 영광스럽게도 평민에서 ‘경(Sir)’이라 불리는 귀족의 지위로 상승한다.
스페인은 식민지로부터 엄청난 금과 은을 가져왔다. 그러나 드레이크가 이끄는 영국의 해적선들은 신출귀몰한 항해술과 뛰어난 전투 능력으로 번번이 스페인 상선을 공격해 금과 은을 빼앗아 갔다. 스페인의 왕이었던 펠리페 2세는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다. 그렇지 않아도 영국이 프로테스탄티즘을 표방하는 바람에 가톨릭의 대부를 자처하던 스페인으로서 용납하기 어려운 판에, 귀중한 보물을 탈취하니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드디어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는 영국을 점령하기로 결심하고 무적함대를 출동시킨다.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다음 스페인 해군은 ‘무적함대’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었다. 무적함대는 군함 130척에 해군 8000명, 육군 1만9000명, 그 밖에도 3만 명이 승선한 대함대였다. 먼저 강력한 무적함대로 영국의 해군을 제압한 후에 네덜란드 지역에 있는 스페인 육군 2만5000명을 영국에 상륙시켜 점령하겠다는 것이었다. 만일 스페인의 육군이 영국에 상륙한다면 육군이 매우 약했던 영국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될 판이었다. 이제 영국의 운명은 해군에 달려 있었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이맘때쯤 유럽 서부해안지방은 아조레스에 중심을 둔 북대서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서 대체로 온화하고 남서풍이 일정하게 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1588년에는 날씨가 고르지 않아서 겨울에 부는 북풍이 강하게 불었다.
영국의 램(Lamb) 교수에 의하면 당시 소빙기였던 데다가 아이슬란드 부근의 해수와 영국 남해안 지역의 바닷물 수온 차이가 매우 커지면서 영국 해안에 폭풍 등의 이상 기상현상이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기록에도 1580년대 내내 강한 폭풍이 영국을 강타했다고 나와 있다.
이상 기상으로 생긴 강한 북풍으로 인해 무적함대는 8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무려 두 달 걸려 도착했다. 병사들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렸다. 한편 이에 맞서는 영국 함대는 총 197척으로 배의 수효는 무적함대보다 많았지만 여왕의 지휘권 아래 있는 정식 해군함정은 고작 34척에 불과했다. 나머지 배들은 개인 소유의 배들이거나 드레이크의 ‘해적함대’들이었다.
7월 31일 드디어 영국함대는 무적함대와 마주쳤다. 영국해협은 멕시코 난류의 영향으로 연중 동쪽으로 해류가 흐른다. 그리고 겨울에는 편서풍의 영향으로 남서풍이 불지만 여름에는 북대서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북서풍이 우세하다. 그러나 그해 여름엔 특이하게도 ‘프로테스탄트 바람’이라 불리는 남서풍이 불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드레이크는 스페인의 함대가 진격해 들어오는 쪽을 가로질러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먼저 차지했다. 영국 함대는 바람과 해류를 등지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 것이다. 드레이크는 기동성과 사정거리가 먼 대포를 활용하여 적 후미의 배들에 집중적인 공격을 가했다. 스페인의 덩치 큰 배들이 좁다란 해협에서 쉽게 움직이지 못할 때 영국의 소형 선박들은 커다란 선박들 사이를 민첩하게 움직이며 무적함대를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무적함대의 가장 큰 기함이 나포됐고 11척의 전함이 침몰됐으며 많은 배가 부서졌다. 영국 함대의 승리는 노련한 해적 드레이크의 지휘 아래 신속하게 남서풍을 등지고 싸우는 진용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부터 영국을 도운 남서풍을 영국 역사에서는 ‘프로테스탄트 바람’이라고 부르게 된다.
오랜 시간 바다에서 지체하며 악기상과 싸우고 드레이크가 이끄는 영국 해군에 계속 타격을 입자 무적함대는 기진맥진한다. 이제 영국 점령은 불가능했고,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쪽으로 돌아가는 길목은 영국함대가 지키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직항로를 포기하고 영국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돌아 스페인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날씨는 무적함대 편이 아니었다. 스코틀랜드의 동해안지역에 도착한 16일에는 심한 폭풍이 불었다. 무적함대는 이 지역에서 보름이나 지체하면서 일부 전함들을 잃었다. 남은 함대는 천신만고 끝에 아일랜드 남서해안까지 진출했지만 21일에 불어 닥친 강한 폭풍우로 다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고난 끝에 스페인에 돌아온 무적함대의 모습은 처참했다. 50여 척의 전함을 잃었으며, 나머지 전함들도 대부분이 파손된 상태였고, 6000명의 병사가 사망했다. 무적함대의 몰락으로 펠리페 2세는 꿈을 접어야만 했고 스페인은 세계 역사에서 2류 국가로 전락했다. 당연히 승리한 영국은 스페인의 뒤를 이어 대서양을 지배하는 1류 국가로 발돋음한다.
TIP-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 올린 전투
영국은 철저히 나의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공격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영국의 강점은 첫째, 배들은 작지만 기동성 있는 해군이 있었다. 둘째, 신뢰도가 높은 정교한 정보망을 갖고 있었다. 약점으로는 병사의 수가 적었고 무기류도 약했으며 전쟁을 치르기 위한 돈도 적었다. 반대로 스페인은 세계에서 최강을 자랑하는 무적함대가 있었다.
재정적인 지원도 충분했고 병력의 수도 월등했으며 무기도 최신식이었다. 함대는 대규모의 육중함을 자랑했다.
영국은 스페인의 장점이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스페인의 대형 배들은 크고 무기도 많이 실었지만 속도가 느렸다. 영국은 기동성이 뛰어난 작은 배들로 스페인의 무역선을 약탈했다. 신대륙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유지되던 스페인은 재정 혼란에 빠졌다. 병력 수는 적지만 훈련된 정예병으로 육성된 영국군은 전투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바람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스페인의 무기를 무력화했다.
전쟁에서 전적으로 강한 군대는 없다. 제아무리 천하무적이라도 반드시 약점이 있다. 상대편의 약점을 철저히 이용하는 전략을 펼 경우 약한 군대라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영국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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