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바른말고운말

KBS와 함께 배우는 바른말 고운말

입력 2010. 02. 17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5:20
0 댓글

출처 : KBS한국어능력시험 기출문제 제공 : KBS한국어진흥원(02-781-8276) (가)


한국어 시험

[1 - 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이에 전망대 밑으론 또 몇 척의 미역 채취선이 번들거리는 해초를 가득 싣고 기다리는 사람들 곁으로 귀항했을 것이다. 그녀는 오른손에 쥐었던 책을 왼손으로 옮겨 쥐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신발 끝을 바라보았다.

 ㉠ “올라오다 커…피 파는 곳을 봤어요.”
 나는 그녀를 따라 전망대를 내려왔다. 어느새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섬들은 더 검고, 바다는 눈부신 주황빛이었다. “저, 오해하지 않았음 좋겠는데… 한국에서 한국 문학하는 한국 사람들, 아무리 힘들다 해도 다…행복한 고민으로 보여요.” 그녀는 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척의 배가 물위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쓴 커피를 입술 끝에 한번 댔다가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벽에서 곰팡이 냄새가 났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적어도 제…생각엔 그렇다는 얘기예요. 일본에서 일본 문학하는 일본 사람들도 마찬가지.” 그녀의 말은 느리고, 안쓰러울 만큼 어눌했다. 그러나 뭔가 많은 말을 내게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얼굴만 보고 있으면 나는 그녀의 마음을 저절로 읽을 수 있었다. 남의 속을 꿰뚫는 재주 같은 건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녀의 얼굴은 매우 희었고, 표정은 투명했다.

 “어째서죠?” 그렇게 물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들고 있던 책을 두어 번 타르륵타르륵 넘겼다. 표지 날개에 카프카의 눈과 귀가 보였다. 그녀는 어깨까지 내려온 긴 머리카락을 등뒤로 넘기고 손가락 끝으로 귓등을 쓸어넘겼다. 작은 칠보 귀고리가 귓불에서 흔들렸다.

 “저는 어머니가 소리 없이 얻어맞는 걸 보고…소설을, 처음 썼어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나도 어떤 대답을 바라고 물은 건 아니었다. “친아버지는 제가 열두 살 때 폐렴으로…죽었어요. 어머닌 일본 남자한테 재가했는데, 이틀이 멀다 하고 주먹으로 맞았어요.” 자식들이 볼까 봐 어머니는 비명을 참았고, 의붓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주먹과 발길로 폭행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중략)

 어두워져서야 땅끝에서 떠났다. 차도 사람도 없는 깜깜한 길을 달렸다. “귀가 불편해서…어떡하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진땀을 흘렸다. 그녀를 곁에 태울 수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더욱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가 무슨 말인가를 계속해 주길 바랐다.

 “전 요즘 한 사찰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변사사건을 쓰고 있어요. 물론 백 퍼센트 픽션이죠. 불교 교리든 기독교 교리든 모두 하나의 거대한 담론일 뿐이지 않으냐는 조심스러운 접근입니다. 사람들에게 믿음이 되어버린 `말씀'의 생성과 발전과 소멸을 사회고고학적 방법론으로 다루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가 없나 봐요…사찰의 모델이 대흥사죠.”

 “아……”
 그녀는 내가 대흥사 입구의 모텔에서 아침마다 쓸쓸하게 토스트를 씹고 커피를 마시는 이유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저는 숙소와 땅끝 사이가 이렇게 먼 줄 몰랐어요. 일본 여행사에서 정해 주는 대로 왔을 뿐인데…대흥사 남쪽으론 그런 모텔조차 없다나 봐요.”

 각기 먼 곳에서 온 두 명의 남녀가, 승용차에 나란히 앉아, 어두운 저녁길을 달려, 동일한 숙소로 향하고 있다. 왠지 설레게 하는 문장이다, 라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평형감각에 장애가 올 때마다 이 문장을 생각하는 게 좋겠어.어쩌다 맞은편에서 자동차가 달려와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지나치고 나면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어 보였다.

 “전 지금까지 당신과 같은 그런 거…창한 소설 써본 적 없어요.”라고 그녀가 말했고, “거창할 것 없어요. 거창하다뇨.”라고 내가 말했다. “적어도 내겐 그런 주…제 자체가 거창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전 그저 집안 얘기를 썼을 뿐이에요.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과, 아빠 엄마가 서로 다른 형제들 얘기. 일본인 오빠에게 강…간당하는 한국인 동생 얘기…”

 “다른 걸 써볼 생각은 하지 않나요?” “전 소설을 썼던 게 아녜요. 그저 답답해서 무언가를 써냈을 뿐이지요. 무얼 쓰겠다는 생각 이전에 벌써 쓰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5년을 줄곧 써온 셈이에요.” (중략) “한국인 동생을 강간한 일본인 오빠, 그거 소설일 뿐이죠?”

 대흥사 입구로 진입해 들어가면서 내가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빨랐다. 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대답이 따라붙었던 것. “아이까지 낳았죠. 아이는 세 살 때 13일 하고도 일곱 시간 동안 지독한 독감을 앓다가 죽었어요.”
 “아, 그랬었군요.” 공연히 물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더 이상 묻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중략) 연재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훌쩍 서울로 올라온 나는, 밤 깊도록 노트북에 전원을 넣어놓고 모니터를 노려보다가 범우사판 <카프카 선집>을 집어들었다. 고향의 한 설화를 가지고 장편 하나를 쓸 때 참고가 될까 해서 다시 읽던 책이었다. 고등학교 때 의무적으로 읽었던 때와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은 독후감을 나는 아직도 갖고 있다. 그는 왜 이런 글을 써야만 했는가. 난해하고, 비정상적이고, 끊임없이 무슨 착각엔가 빠져들게 만드는 글을, 무너져 내리는 글을.

 - 구효서, ‘카프카를 읽는 밤’에서 -

1. 다음은 위 글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나는 그녀와 땅끝마을의 전망대에서 올라가서 바다를 구경하였다. ② 그곳에서 나와서 그녀는 커피를 마시면서 먼저 자신의 신상 이야기를 하였다. ③ 날이 어두워지자 나는 그녀를 태우고 숙소로 돌아왔다. ④ 돌아오는 길에 나도 현재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⑤ 얼마 뒤 나는 그녀와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2. ‘나’와 ‘그녀’의 관계, 또는 처해 있는 상황을 유사하게 표현한 것은?
 ① 두 사람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처지에 놓여 있군.
 ② 두 사람이 서로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상황이로군.
 ③ 두 사람은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관계라고 할 수 있지.
 ④ 두 사람이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입장이라고 해야겠군.
 ⑤ 두 사람은 서로 조운모우(朝雲暮雨)하는 사이로 볼 수 있군.
  
3. 위 글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적인 갈등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등장 인물의 욕심과 도덕 의식간의 갈등
 ② 등장 인물의 관념과 현실의 괴리로 인한 갈등
 ③ 이질적인 문화를 지닌 등장 인물들 사이의 갈등
 ④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등장 인물들 간의 갈등
 ⑤ 등장 인물의 욕구와 이를 제약하는 사회 제도의 갈등
 
4. ㉠과 같은 말하기 방법이 사용된 것은?
 ① A : 날씨가 매우 맑군요.
  B : 예, 아주 화창한 날입니다.
 ② A : 여기는 늘 시끄럽네요.
  B : 서로 자기 말만 하니까 그래요.
 ③ A : 순희야, 비가 올것 같구나.
  B : 네, 알았어요. 지금 빨래를 걷을게요.
 ④ A : 이 항구는 매우 아름답군요.
  B :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있네요.
 ⑤ A : 저는 냉면을 먹겠습니다.
  B : 그렇게 하시죠. 저는 밥을 먹겠습니다.
 
[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
 
㉡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김남조 ‘겨울 바다’ -

㉠, ㉡에 대한 화자의 심리를 <보기>처럼 파악했을 때 빈칸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자각
 ② 화자가 처한 시대적 상황의 변화
 ③ 새로운 종교를 접하고 이를 수용함
 ④ 시간의 경과에 따른 외부 상황의 변화
 ⑤ 지금까지 지향하던 삶의 목표를 포기함  
 
정답: 1-⑤ 2-① 3-② 4-③ 5-①


발음

뜻있는: ‘의미 있는 삶’이라는 말을 고유어 표현으로는 ‘뜻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뜻있는’의 정확한 발음은 [뜨신는]일까? 아니면 [뜨딘는]일까?

 ‘뜻이 있다’를 한 단어로 말할 때 ‘뜻’이라는 단어 뒤에 ‘있다’가 오는데, 맞춤법 규정에 따르면 이 경우에는 연음해서 [뜨시따]로 발음하지 않고 받침이 대표음인 [ㄷ]으로 바뀌어서 [뜨디따]로 발음한다고 돼 있다.

 그 외에도 ‘맛’과 ‘멋’으로 연결되는 표현들을 보면, ‘맛있다’는 [마디따]로 발음해야 맞지만, 이 경우에는 [마시따]로 발음하는 일이 워낙 많아서 실제 발음을 고려하여 [마디따]와 [마시따]를 모두 표준 발음으로 허용한 것이다. ‘멋있다’ 역시 [머디따]와 [머시따]를 모두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없다’와 연결될 때는 실제로 [마섭따]나 [머섭따]로 발음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원칙대로 발음하는 [마덥따]와 [머덥따]만 표준 발음으로 돼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