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국방안보

우리는 특별하다 <1>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영현소대

이주형

입력 2010. 01. 07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5:13
0 댓글

조국 위해 헌신한 선배전우 영면의 안식처로 안내 현재 인원 31명 … 전군 유일 영현업무 전담부대 6·25전쟁 60주년 맞아 임무에 대한 자부심 대단


5일 영결식이 끝난 뒤 영현봉안관을 나선 국방부 유해발굴단 영현소대원들이 영정과 영현을 모신 유골함을 들고 충혼당으로
향하고 있다. 영현소대는 전군 유일의 영현행사를 전담하는 부대다.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5일 국립서울현충원 내 영현봉안관. 영결식이 끝나고 엄숙하고 장중한 주악이 울렸다. 이제는 안치를 위해 충혼당으로 발걸음을 옮길 시간. 의장병을 선두로 고인의 영정을 든 고정빈(23) 상병과 영현이 안치된 유골함을 감싸안은 이상인(23) 상병의 뒤를 유가족들이 따랐다. 양편에서는 허재우(23) 상병과 문동주(22) 상병이 ‘받들어 총’ 자세로 영령에 대한 예를 취하고 있다. 고인이 된 선배 전우의 안장식이 열린 것. 행사에 지원된 장병들은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영현소대 장병들이다. 이들은 새해 첫 업무가 시작되는 4일부터 지원에 들어갔다. 이날 거행된 안장식은 2건. 오후 2시와 4시에 열렸다.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 행사지원이다.

 현충원 주관의 개인봉안, 총리 주관의 합동봉안, 지역 군단 단위의 영결식, 그리고 묘역안장, 위패봉안 등의 지원이 영현소대의 임무다. 개인안장식의 경우 지난해 998건을 지원했다. 월 평균 83회. 수도권과 경기도 지역에서 유해 봉송 및 안장행사가 열릴 경우 지원도 나간다. 수시로 이어지는 행사지원에 피곤할 법도 하지만 장병들의 각오는 다부지기만 하다. 일생에 한 번뿐인 군 생활을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는 영현소대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

 문동주 상병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선배 전우, 그리고 유공자들, 고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 우리 임무입니다. 특히 올해는 북한의 6·25 남침 60주년을 맞는 의미 깊은 해이기에 더욱 임무에 대한 자부심을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어딜 가나 뜻있는 임무를 수행하며 군 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있어 기쁘다는 뜻이다.

 300여 차례에 걸쳐 행사지원에 나섰던 이한일(23) 병장도 마찬가지. 그는 “지금도 영현·영정을 들고 유가족들을 인도할 때마다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며 “자기 부모와 형제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면서 애국심도 절로 난다”고 표현했다.

 현재 영현소대의 인원은 31명이다. 많지 않은 수지만 역사는 오래됐다. 1950년 9월 부산에서 묘지등록중대로 창설된 것이 시초. 1952년 9월 81영현중대로 부대 명칭을 개정한 뒤 1986년 10월 5군수지원사령부 53군지단을 거쳐 2006년 8월 국방부 근무지원단 의장대대에 예속됐다. 이어 2008년 12월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활성화되고 발굴유해 영현봉안식 행사 주관 등 효율적이고 완벽한 부대임무 수행을 하게 되면서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소속으로 변경됐다. 지난해 6월 국립대전현충원 영현 및 의장중대가 해체됨에 따라 전군 유일의 영현업무 전담부대가 됐다.

 영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까다로운 의식을 익혀야 한다. 부소대장 이계일(45) 상사는 “2주간의 제식훈련과 2개월간의 신병숙달 교육 기간을 통해 이를 완성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영정과 영현 인수하기, 절도 있는 행진 발걸음, 비가 올 때는 우산 인수와 우산 펴기, 영현을 유가족에게 인도하기 등이 포함된다. 영현을 감싸는 봉송천 매듭법도 익혀야 한다. 언제나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행사 복장도 빠질 수 없다.

 한편 영현소대에 올해 희소식이 전해졌다. 그동안 병참병과의 특기로 사무처리를 의미하던 영현등록병(2112)에서 행사지원의 영현행사병(1111)으로 직책 명칭 및 특기가 변경됐다. 전문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영현소대의 발전을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고개가 있다고 한다.

 영현소대장 최영우(29·학사47기) 대위는 “안장식과 봉안식 등 각종 행사에서 의장대와 혼합 편성되는데 과도한 신장 차이 등으로 인해 대형 유지와 행사의 품격 등이 제한된다”면서 “현재 임의로 전산분류돼 보충되는 영현병들을 의장병처럼 전산 및 면담 선발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애국애족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선배 전우들을 편안한 영면의 안식처로 안내하는 영현병들. 그들은 경인년 새해를 맞아 다짐한다. 2010년 국격(國格)을 높이는 영현 행사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 영현소대원들의 독특한 발걸음- 발끝 각도 45도로 숙여 고인에 대한 예의 지켜


영현소대원들의 행사 모습을 보면 독특한 발걸음을 빼놓을 수 없다. 어디서고 볼 수 없는 형식. 보통 걸음보다 조금 늦은 속도에 공중에서 순간적으로 멈추는 듯하다가 다시 지면을 내디디는 것을 보면 다시 한번 눈길이 간다.

 발걸음의 유래와 형식 등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1955년 국군묘소가 설립되고 의장행사가 이뤄지면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질 뿐이다.

 지금도 발의 높이는 ○○㎝, 보폭은 ○○㎝ 등 어떻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정안전부에서 펴낸 정부의전편람에도 ‘경건하고 애도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한다’고 돼 있다. 이 때문에 부대에서는 그동안 이어져 온 관례와 전통에 따라 발걸음에 대한 형식과 규정을 수립, 교육하고 있다.

 행사 시에는 발끝을 모으고 차려자세에서 시선은 전방을 주시하며 어깨는 곧게 펴고 발끝은 45도 각도로 지면을 향하게 한다. 이때 일직선으로 발을 끝까지 펴고 평소 자기 보폭만큼 일자로 내디뎌야 한다. 보폭 간 시간 차는 2초 정도. “쿵∼ 쉬고, 짝” 의 순서다. 일반 사람들의 평균 걸음이 분당 50∼60회인 것과 비교하면 그 절반인 30회에 불과하다.

 앞사람의 거리는 4보 차(의장대는 6보 차)가 기본. 행진을 마치고 도열 시에는 오른발의 무릎이 지면과 90도를 이루도록 올려준 자세를 2초간 유지한다. 발끝을 45도 각도로 숙이는 이유는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발걸음은 전입 후 한 달 동안 교육을 통해 완성된다. 개개인의 수준 차이가 있지만 이 시기만 지나면 행사를 빛내기 위한 능력이 갖춰진다. 물론 조기에 습득할 수 있는 비결도 장병들을 통해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100원짜리 동전 크기의 돌을 차듯이 발끝에 힘을 줘 쭉 밀어야 한다” “너무 높여서도, 너무 낮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 요령.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비결도 전해져 온다.

 중요한 것은 발걸음이 그동안 세월에 따라 형식은 조금씩 변모했을지 모르지만 고인들에 대한 존경을 담아 성의를 표시하고 예의에 맞게 행동하려는 마음이다.  

이주형 기자 병과와 특기로 구분되는 군의 세계는 다양하다. 보병이나 포병·기갑·공병·통신과 같은 전투부대가 있는가 하면 병기나 의무 등 전투지원부대, 그리고 전투 및 전투지원부대의 전투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각종 행정을 지원하는 인사·군수·헌병·정훈 등의 전투근무지원부대가 있다. 이 중에는 잘 알려진 부대도 있지만 반대로 이런 부대가 있었나 하고 오히려 되묻는 부대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조화를 이뤄야 군의 전투력도 한층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전국에 위치한 각군의 희소·특이부대를 매주 목요일 소개한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특별하다”고.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